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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의 시간이 돌아왔다. 최저임금위원회는 5월 21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2025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논의를 본격화했다. 최저임금제도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 안정을 목적으로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데 기여할 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임금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최저임금이 본래의 취지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저임금을 받아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최저임금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노인돌봄, 마트, 학교비정규직, 콜센터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를 만나 일과 생활, 노후(미래) 준비, 최저임금의 적절성, 본인의 노동가치에 대한 보상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올해 최저임금이 2.5% 올랐지만 물가 폭등으로 실질임금이 하락해 생활이 점점 어려워진다고 하소연했다. 일상생활에서 포기하는 것도 많았다. 이들이 숨통을 좀 트고 살아가려면 최저임금은어떻게 결정돼야 할까. 실제 물가 인상률을 반영하고 가구 생계비를 기준으로 생활임금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의 일과 삶의 이야기를 통해 최저임금이 갖는 의미를 짚어보려 한다.[기자말]
전국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올려라! 최저임금” 피켓 인증샷을 찍고 있다
▲ 최저임금 인상 요구 인증샷 전국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올려라! 최저임금” 피켓 인증샷을 찍고 있다
ⓒ 서비스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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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별 후, 생계 위해 학교 청소 일 시작

변인선(64세)씨는 10년째 인천 A중학교 환경미화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그녀의 정년은 내년 8월이다. 인선씨는 11년 전 짬짬이 학교에서 배식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편과는 주말부부로 지내던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개성공단에서 일했던 남편은 2013년 개성공단 폐쇄로 더이상 일할 수 없게 돼 본사로 돌아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스트레스로 인한 고혈압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인선씨는 남편과의 사별로 하루아침에 가장이 됐다. 당장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선 고정적인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언니가 근처 중학교에서 청소할 사람을 구한다고 알려줘 운 좋게 바로 입사할 수 있었다. 당시엔 용역업체 소속으로 하루에 5시간만 일할 수 있었다.

"당시에 월급이 5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요. 살아가기엔 너무 적은 월급이었지만 50대 중반의 가정주부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어요."

함께 사는 두 딸이 생활비를 보태고 아끼고 또 아끼면서 살아야 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생계를 이어오던 중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학교에서 일하는 환경미화노동자들도 교육감 소속 교육공무직 노동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기뻤다. 금세 하루 8시간 일할 수 있고, 남들처럼 상여금도 받고 근속수당도 받으며 일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바뀌는 데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1만여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이 6월 22일 총궐기대회를 열고,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 1만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함성 1만여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이 6월 22일 총궐기대회를 열고,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 학교비정규직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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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청소 10년에 '골병'… 퇴근길, 집보다 병원을

인선씨는 매일 출근하면 넓디넓은 학교를 돌아다니며 화장실 청소를 한다. 매일 혼자 청소해야 하는 화장실 칸수는 102칸이다. 학교 신관에서 본관으로, 그리고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강당까지. 1, 2, 3학년 층을 옮겨 다니고 남교사, 여교사 화장실까지 바쁘게 다니며 하루종일 변기와 세면대, 바닥청소를 했다.

"102칸이나 되는 화장실을 깨끗이 쓸고 닦아 놓아도, 아직 어린 학생들이라 금방 어질러져요."

그가 한 번 청소를 하며 학교 전체를 도는데 2시간 반에서 3시간 정도가 걸린다. 하루에 3번은 돌아야 일이 마무리가 된다. 64세인 인선씨는 하루종일 계단을 오르내리고, 허리를 굽혔다 폈다 쓸고 닦기를 반복하고 나면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피로를 느낀다. 언제부턴가 인선씨의 퇴근길은 집보다 병원을 가는 날이 더 많아졌다.

학교 청소 10년, 그녀가 얻은 것은 고맙다며 꾸벅 인사하고 가는 손녀 같은 학생들의 감사 인사와 골병들어 못쓰게 된 무릎, 이 두 가지였다. 그는 얼마 전 양쪽 무릎 수술을 하고 쉬고 있다. 쉬는 것도 편치 않다. 주어진 유급 병가가 60일뿐이기 때문이다. 인선씨는 이미 60일의 병가를 다 썼고, 올 3월에 새로 생긴 연차며 휴가를 다 써가고 있다.

당장 이번 달은 무급으로 쉬어야 하고 7월이면 복직해야 하는데 이 몸으로 제대로 일할 수 있을지 이만저만 걱정스러운 게 아니다. 계속 아파서 쉬면 정년퇴직 후 촉탁직으로 계약을 안 해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쉬고 있는 지금도 마음이 불편하기만 하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6월 22일 오후 실질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실질임금 인상!”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6월 22일 오후 실질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학교비정규직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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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음식도 과일도 안 먹고, 악착같이 51만 원씩 저축"

이렇게 일하고 세후 19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 인선씨. 이 190만 원으로 인선씨는 노후를 준비하고, 큰딸과 함께 사는 데 드는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불안정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큰딸 또한 자신의 미래를 온전히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어, 생활비를 많이 보태주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인선씨가 한 달에 51만 원씩 4년째 저축을 하고 있다.

"제가 이 월급 받고 생활하면서 여유가 있어서 저축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년에 정년퇴직을 하는데 딸들에게 폐 끼치지 말고 살아야죠. 그래서 방법을 찾다 보니, 지금 덜 먹고 덜 써서라도 악착같이 모아서 퇴직해야겠다 싶더라고요. 진짜 절박해서 이렇게 악착같이 저축하고 있는 거예요."

내년 정년퇴직을 앞둔 인선씨의 노후 대비는 당장 눈 앞에 닥친 현실이다. 인선씨는 매달 51만 원씩 저축하기 위해 지금껏 그 흔한 배달음식도, 외식도 하지 않았다. 1년에 치킨 한 마리 먹을까 말까 할 정도로 아끼며 살고 있다. 최근 과일값이 치솟아도, 그것은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인선씨.

"안 먹어도 살 수 있는 과일 같은 것, 이미 안 먹고 산 지 오래됐어요."

최저임금 노동자인 인선씨가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모든 것을 포기하고 '덜 먹고 덜 쓰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이다.

인선씨는 퇴직 후에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몸이 건강하기를 바랐다. 사랑하는 딸들에게 손 내밀지 않고 살다가, 유일한 자산인 전세보증금이라도 온전히 남겨주고 떠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 같은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이 월급으로 불안한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선 지금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모든 것을 포기해야 가능해요. 이건 그냥 당신 같은 사람들은 사람다운 삶을 포기하고 살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나요? 크게 바라지도 않아요. 노후 준비를 하더라도 지금 이 시간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임금 정도로 올랐으면 좋겠어요."

양쪽 무릎 수술을 한 인선씨의 빠른 회복과 노후의 안녕을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전수찬 기자는 서비스연맹 마트노조 정책국장입니다. 이 기사는 <노동과 세계>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최저임금인상,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 #실질임금, #최저임금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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