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씨앗공을 빚고 있는데 나비가 앉았다.
▲ 씨앗공에 앉은 나비 씨앗공을 빚고 있는데 나비가 앉았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관련사진보기

 
"와, 나비가 앉았네!"

예쁘게 빚은 '씨앗공'(황토 속에 씨앗을 담은 공) 위에 나비가 살며시 앉았다. 참 예쁘다. 생명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동글동글하게 만든 씨앗공은 강과 산, 우리 주변 어디로든 찾아가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위한 희망의 씨앗을 심을 것이다. 땅에 떨어진 꽃을 주워서 씨앗공에 꽂아보고, 그 위에 나비가 앉은 모습에 감탄하면서 세종보 천막농성장에서의 한 나절을 보냈다.

세종보에 물을 채운다면 수장되는 곳에 위치한 천막농성장. 많은 비가 내려도 위태로운 건 마찬가지이다. 비가 온다는 소식에 걱정하는 이들이 주말 저녁에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인천에서 김밥을 싸오고, 꽈배기와 커피도 가져왔다. 살구와 자두를 함께 나누어 먹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니 슬며시 밤이 찾아왔다.

웃고 울고 가슴 졸이며 이렇게 한차례 비도 잘 보냈지만 이제 본격적인 장마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또 이 시간을 어떻게 함께 버티고 나누면서 흘려보낼까.

강이 죽어가는 지금 행동해야… 다음은 없다
 
장철민 국회의원이 농성장을 방문했다
▲ 농성장을 방문한 장철민 국회의원 장철민 국회의원이 농성장을 방문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관련사진보기

 
24일, 한국환경회의 활동가들과 22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 보좌진이 국회에서 만났다. 여러 환경 현안을 공유하고 해결 방향을 고민하는 소통의 자리였다. 우리쪽에서는 임도훈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 간사가 참석해 물정책 정상화와 세종보 싸움의 의미에 대해 전했다. 물정책 졸속변경에 대한 국정감사, 4대강 자연성 회복 관련 포럼 등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요청했다.

장철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대전 동구)도 이날 오전에 천막농성장을 찾았다. 문재인 정부가 강 자연성 회복을 위해 거쳐온 지난한 과정을 윤석열 정부가 순식간에 졸속으로 뒤집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를 다시 정상화시키려면 야당이 끈질기게 문제제기를 하면서 세종보 재가동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간혹 환경운동가들조차 "다음 정권에서 뒤집으면 된다"는 안이한 말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문재인 정부 때 무엇을 했는지, 되묻고 싶다. 또 우리에게 다음이 있는가, 다음은 어떤 의미인가? 뻔히 강이 죽고 그 곁의 생명이 죽을 것을 알면서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다음이 아니라 지금을 말해야 한다. 지금 하지 말아야 하고, 지금 행동해야 한다.

세종보 재가동…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회귀
 
졸속으로 보 처리방안을 삭제하는 공청회 취소를 요구하며 항의하는 활동가들
▲ 물관리기본계획 공청회에서 항의하는 활동가들 졸속으로 보 처리방안을 삭제하는 공청회 취소를 요구하며 항의하는 활동가들
ⓒ 대전충남녹색연합

관련사진보기

 
문재인 정부의 물정책 성과가 있다면 물관리 일원화와 물 거버넌스 구축, 보 개방을 통한 금강 영산강 자연성 회복 사례 마련, 그리고 보 개방을 통해 보 처리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성과가 무엇인가? 

물관리 일원화는 국토부 하천과가 그대로 환경부에 편입되면서 환경부 내에 국토하천부가 생긴 꼴이 되었다. 4대강 보 운영과 관련된 모든 거버넌스는 중단되었다. 이름만 있을 뿐, 회의나 소통이 되지 않는 껍데기만 남았다. 보 처리방안은 윤석열 정부의 '재자연화 안 해!' 이 한마디에 맥없이 취소됐다. 

그 틈에 공주보마저 닫혔고, 4대강 16개 보 중에 세종보 하나만 열려있다. 세종보까지 닫히면, 정말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 당시로 고스란히 회귀하는 것이다.

4대강 16개 보 처리방안을 마련하고, 우리 강 자연성을 회복하는 일은 우리 인간뿐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다. 그 과정을 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일이며, 기후위기로 당면한 기후 재난을 대비하는 일이다. 인간이 이 자연의 일원으로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이다. 

지금 이 정부는 모두가 최악으로 치닫는 '세종보 재가동'이라는 빨간 버튼을 누르려 한다.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온 강을 파헤치던 그때로 우리를 되돌리려고 한다. 바로 지금, 이 버튼을 누르지 못하도록 최대한의 힘을 끌어 막아내야 하지 않을까?
 
금강을 바라보며 쉬고 있는 시민들
▲ 강을 즐기는 시민들 금강을 바라보며 쉬고 있는 시민들
ⓒ 대전충남녹색연합

관련사진보기


"그냥 궁금해서 왔어요"

그냥 궁금해서 오는 분들이 많다. 세종에 산다는 아빠와 딸이 천막농성 이야기를 들어본다고 찾아왔다. 아이는 듣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의 이야기가 마음에 닿았길 바란다. 한 가족이 또 강변으로 가서 돌을 던진다. 아빠의 몸짓에 아이는 재밌는지 웃음소리가 크다. 전날 농성천막을 찾은 세종시 관계자는 비가 와서 위험하니 아래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 관계자는 여기 이렇게 강을 찾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리튬전지 제조업체 공장 폭발 사고로 스물두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대개 파견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위험에 대비하지 못한 화약고에서 일했던 그들을 보호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자본'과 '이윤'이라는 악마. 애도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 일어나지 않게 했어야 할 일이다.  
 
참새들이 천막농성장 앞에서 모래목욕을 한다. 참새 한 마리도 귀한 생명이다.
▲ 참새 하나도 귀한 생명 참새들이 천막농성장 앞에서 모래목욕을 한다. 참새 한 마리도 귀한 생명이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관련사진보기



불의의 사고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며 술렁거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종시가 추진하는 '비단강 금빛 프로젝트'의 귀결도 폭발 사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종보에 채운 썩은 물에서 지역 경제가 살아날 리 없을 텐데, 장밋빛 환상을 부추겨 토건 자본의 뱃속만 채우려는 속셈이다. 수많은 생명들이 수장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다시 씨앗공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씨앗을 품은 황토가 강바람에 굳고 있다. 더 멀리 날아가기 위해 더 단단해지고 있다. 오늘 내가 지키는 강을 바라본다.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세상이다.

태그:#금강, #낙동강, #영산강, #세종보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환경운동가, 글쓰는 사람. 남편 포함 아들 셋 키우느라 목소리가 매우 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