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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농성장에서 달라지는 달의 모양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가늠한다
▲ 천막농성장에서 바라본 달 천막농성장에서 달라지는 달의 모양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가늠한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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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벌써 저만큼 갔네요."

세종보 농성천막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면 어느새 달의 모양이 달라져 있다. 농성장에서 보이는 아파트 위 반짝거리는 초승달이 예쁘다고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금세 달은 꽉 차오를 태세이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다. 이렇듯 시간의 흐름은 모든 만물의 순리 그 자체이고, 강의 흐름 또한 그 순리 중 하나이다.  

자연은 자기 자리에서 그 흐름에 맞게 살아가는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스스로를 정의내린 인간만이 그 흐름을 끊고 만물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듯하다. 강바닥을 파헤치고,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을 굳이 절단하고, 갈라내고, 막아선다. 이로인해 가로막힌 우리의 강은 생명을 빼앗기고 고여서 제 살이 썩어가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4대강 중 희망의 한 줄기 흐름이 이곳 금강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 단군 이래 최악의 토목사업으로 죽어가던 금강의 보 수문을 열어서 숨통이 조금이나마 트이나 했더니 윤석열 정권이 또다시 막겠다고 으름장이다. 순리에 따라 변하는 달의 모습과 자연스러운 강의 흐름을 왜 우리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인지.

닫혀 있는 강… 적막만이 가득하다
 
지난 4월 말, 공주보 담수로 고마나루 모래사장이 물에 잠겼다.
▲ 수문을 닫아 물에 잠긴 고마나루 지난 4월 말, 공주보 담수로 고마나루 모래사장이 물에 잠겼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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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뉴스타파> 인터뷰를 위해 공주 고마나루를 찾았다. 지난 4월 말, 공주보 수문이 닫히면서 고마나루 모래사장은 물에 잠겨 자취를 감췄다. 수풀만 우거진 강에 내려오는 이는 없었다. 환경부는 보에 설치된 소수력 발전을 시험가동한다며 수문을 닫았지만 물떼새 서식이 확인돼서 수위를 6m로만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확인했다. 

물떼새 서식이 확인됐다면 당연히 보 수위를 더 낮춰야 할텐데 수문은 아직 열리지 않고 있다. 안 그래도 펄이었던 모래사장은 또 다시 잠기고, 이미 잠겨버린 물떼새 서식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은 물떼새 서식지를 보호하지 않고 수문을 닫은 환경부장관을 야생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하기도 했다(관련기사 : 명승지 고마나루 악취진동… 환경부장관 '확신범' 고발 https://omn.kr/2912d)
 
2022년 1월에 찍은 사진. 모래사장이 넓게 회복되어 있다.
▲ 고마나루 금강변 모래사장 2022년 1월에 찍은 사진. 모래사장이 넓게 회복되어 있다.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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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밭 흙길에서 산책하던 공주시민들이 꽤 있었지만 강가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4대강사업 이후 매년 녹조가 창궐했지만, 공주보 수문이 열렸을 때에는 모래톱이 아름다웠던 곳이다. 공주시민들이 맨발로 산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래톱은 물속에 수장됐고, 그곳으로 내려가는 오솔길도 풀이 한참 자라서 접근금지의 공간으로 변했다.

세종보의 수문을 닫은 뒤의 금강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 당장 세종보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공주보로 가보면 안다. 조만간 녹조가 시퍼렇게 필 것이다. 세종보를 막아 친수공간을 마련하겠다는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새들의 울음소리 들을 수 없는 침묵의 강. 악취가 풍기는 죽음의 강. 이게 수많은 희생을 하면서 우리가 누리고자 하는 진짜 경관인가.        

수문을 닫는다… 생명을 사지로 내모는 죽음의 주문
 
할미새가 돌탑위에 앉아서 쉬고 있다
▲ 돌탑 위에 앉은 할미새 할미새가 돌탑위에 앉아서 쉬고 있다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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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진을 내가 아니면 누가 찍겠어!"

얼가니 새(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가 얼마 전 낸 기사에 등장한 돌탑 위 할미새 사진을 자랑한다(관련기사 : 물웅덩이 목욕탕으로 쓰는 참새, 매일 먹이나르는 박새… 이곳에서 삽니다 https://omn.kr/293da). 신이 났다.

강변에서 두런두런 수다를 떨 때에도 금강은 번식기를 지나는 새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흰뺨검둥오리 열두 남매의 수영연습이 한창이고 장끼와 까투리의 꺼병이들도 하중도 위를 뛰어다니느라 바쁘다. 이제 막 나는 법을 익힌 흰목물떼새와 박새 형제들은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쁘다. 
 
천막농성장 건너편 금강변에서 원앙부부가 산책을 하고 있다
▲ 원앙부부의 산책 천막농성장 건너편 금강변에서 원앙부부가 산책을 하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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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앙부부는 이제 막 태어난 아기들과 강 산책을 한다. 살아있는 존재들의 끊임없는 몸짓을 이 곳 금강에서 보고 있다. 세종시와 환경부는 "보의 수문을 닫아 정상 가동한다"고 쉽게 내뱉지만, 이토록 많은 생명들을 사지로 내모는 죽음의 주문이다. 모래톱과 자갈밭이 물에 차오르면 이 많은 생명들의 일상은 어떻게 해야할까.

적막하게 멈춰선 채 검은 물만 남게 된 금강을 앞에 두고 우리는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4대강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이 패악한 정권과 토건 자본은 심판해야 할 적폐이고 지금 천막농성장에 있는 이 시간이 바로 심판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외치는 천막농성장에서 글을 쓰는 이유다.
 
천막농성장을 찾은 할아버지 활동가가 강바람을 맞으며 쉬고 있다.
▲ 강바람을 에어컨 삼아 천막농성장을 찾은 할아버지 활동가가 강바람을 맞으며 쉬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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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바람이 에어컨보다 낫네~"

천막농성장에도 이제 더위가 몰려오고 있다. 아침 기온이 벌써 28도를 넘긴다. 가게마다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다. 농성장은 낮 시간, 다리 밑 강바람을 에어컨 바람 삼아 사람들을 맞이하고 기사도 쓴다. 화장실을 다녀오려고 위에 올라서면 벌써 후끈한 공기에 숨이 턱 막혀 얼른 천막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이다. 

예약하기 힘든 풀빌라도, 여느 호텔 리버뷰 숙소도 천막농성장만은 못한 것 같다. 강바람이 있고 아기물떼새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풍경은 여기, 흐르는 강 곁에 있다. 돈이 없어도 된다. 누구든 내려와 누릴 수 있는 금강의 진짜 경관은 온 생명이 함께 흐르는 공존의 강이다.

태그:#금강, #세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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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글쓰는 사람. 남편 포함 아들 셋 키우느라 목소리가 매우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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