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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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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선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아래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18일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 파업에 대해 "이미 4개월간 큰 사회적 논란을 거쳐 내년도 의대생을 1509명 늘리는 방안이 확정됐다"라며 "이제 와서 재조정을 요구하는 건 명분이 없을뿐더러 실현 가능성도 없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의사들이 주장할 게 있다면 집단휴진을 할 게 아니라, 정부의 의료개혁특위에 참여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오마이뉴스>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최 위원장 인터뷰를 진행했다. 보건의료노조에는 현재 9만 명의 조합원이 가입돼있고, 이중 70% 정도가 간호사다. 최 위원장 역시 30년 경력의 간호사 출신이다.

최 위원장은 "의사 인력 확대는 필수·지역·공공의료를 개선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건"이라며 "일반 국민이나 환자들, 의료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 모두 의사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의사들만 아니라고 한다"고 했다. 최 위원장은 "정말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면 병원들은 왜 불법적으로 PA(진료보조)간호사를 쓰고 있는 건가"라며 "현재 2만 명에 달하는 PA간호사들이 암묵적으로 인턴이나 레지던트 1년차 의사들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조의 요구로 대형병원은 그나마 PA간호사들이 의사와 다른 가운을 입는 등 최소한의 구분을 두고 있지만, 일반 병원급에서는 구별도 없이 PA간호사들이 의사처럼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심지어 의원급에서는 간호조무사들이 의사 업무를 대신 보기까지 한다"고 했다.

다만 최 위원장은 정부를 향해서도 "의대 증원 하나만으로 지역·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공공의대를 설립하고 지역의사제를 도입해 지역의료를 살리고, 비급여 항목 진료로 지나친 수익을 얻는 것을 규제해 의사들이 필수과목이 아닌 피부과·안과·성형외과에만 몰리는 걸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향후 5년간 필수의료 분야에 1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역시 실제 이뤄지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수 부족하지 않다는 건 의사들뿐... 2만여 간호사들이 의사 업무"

- 17일 서울대병원을 시작으로 18일 대한의사협회가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집단 휴진에 들어갔다.

"답답하고 안타깝다. 명분도 없고 실익도 없기 때문이다. 이미 내년도 의대생은 1509명 증원되는 것으로 결론 난 상태 아닌가. 지금 이 상태에서 '전면 재조정'을 조건으로 걸면 어떻게 대화가 되겠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 집단 휴진이다. 이미 지난 2월 전공의 사직으로 4개월째 의료가 정상화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간호사 등 보건의료 노동자들도 지쳐가고 있다. 환자들 피해만 커지고 있다."

- 의대 증원은 필요하다고 보나.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노조도 작년 12월에 의대 증원이 1000~3000명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의사 수 부족은 갑자기 나온 문제가 아니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사들 요구로 의대 정원이 351명 줄었고 그 뒤로 못 늘렸다.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20년에도 400명 증원 방침이 의사 반대로 좌절됐다. 이번에 윤석열 정부가 2000명 늘리겠다고 나온 건 초강수였긴 했지만,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의사 수 부족의 증거는 차고 넘친다. 2021년 기준 OECD 평균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3.7명이지만 한국은 2.6명에 불과하다. 불법의료만 봐도 그렇다. 15~20년 전부터 현장에서 사실상 의사 업무를 보는 PA간호사가 스멀스멀 생겨났다. 자발적으로 신고하지 않으니 정확한 통계도 없다. 2018년 노조에서 이 문제를 처음 공론화했을 때 저희가 자체 조사한 바로는 PA간호사 규모가 5000명 정도였다. 지금은 2만 명에 육박한다. 서울의 유명 A 사립대병원에는 무려 PA간호사가 393명이나 있다. 환자들이 이걸 알까? 노조가 이건 환자를 속이는 거라고 문제제기하기 전까지 PA간호사들도 의사 가운 입고 인턴이나 레지던트들과 똑같은 업무를 봤다.

이번에 노조에서 4월 24일부터 5월 22일까지 113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해봤더니, 간호사가 의사 아이디·비밀번호를 받아 처방전을 대리 발급하는 '대리처방'이 이뤄지는 곳이 무려 58곳(62%)이었다. 의사가 직접 수술하지 않는 '대리수술'도 23곳(24.7%)이나 됐다. 병원급이나 의원급으로 내려가면 더 심각하다. PA간호사라는 구분도 없고, 간호조무사마저 의사 업무를 보는 곳이 많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뭔가. 의사가 환자를 다 못 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고 하는 집단은 의사들밖에 없다."
 
보건의료노조 최희선 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열린 ‘올바른 의료개혁! 공공병원 기능 회복-역량 강화 촉구 보건의료노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최희선 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열린 ‘올바른 의료개혁! 공공병원 기능 회복-역량 강화 촉구 보건의료노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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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필수의료 '10조' 약속 이행 여부가 진정성 시험대"

-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한 이유는 지역·필수의료 확대다. 실제 현장은 얼마나 심각한가.

"의사가 얼마 늘어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늘어나느냐도 중요하다. 지역 환자들이 서울의 상급 종합병원에 몰려드는 이유가 뭔가. 지역에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지역에 왜 안 갈까? 지역 병원에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는 시설이나 장비, 의사 수가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이 돼야 필수진료 과목을 포함해서 유기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지역은 그 규모가 무너진 것이다. 의사들은 있어봤자 제대로 일할 수 없는 지역을 점차 기피하고, 환자들 입장에선 시설이나 의사가 부족한 지역병원 대신 서울로 가게 된다. 악순환이다.

실제 지역에선 밤에 심근경색으로 위급한 환자가 왔을 때 심장 스텐트 시술할 의사 하나가 없는 지경이다. 이러니 지역의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이 텅텅 빈다. 우리는 '화이트 베드'라고 부른다. 침상이 정리된 채 그대로라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아무리 병원이 작아도 엑스레이나 MRI(자기공명영상), CT(컴퓨터단층촬영)를 판독하는 영상의학과 의사는 꼭 한 명 필요한데, 어느 지역병원이 아무리 연봉을 올려도 들어오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연봉 4억 원에 한 명이 채용됐는데, 83세 의사였다고 한다. 이게 지금 지방의료의 현실이다.

필수의료 문제는 2022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뇌혈관외과 의사가 없어 사망한 사건이 상징적이다. 외과 수술이 가능한 신경외과 의사 2명 중 한 명은 학회에 참석했고 한 명은 휴가였던 건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병원이 이 정도다. 다른 곳은 어떻겠나."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18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필수의료를 위해선 비급여 항목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18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필수의료를 위해선 비급여 항목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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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대 증원만으로 이 문제들이 해결되나.

"그렇지 않다. 이번에 정부가 서울 소재 의대의 정원은 하나도 증원하지 않고 지역 국립대 위주로 증원한 것도 하나의 방법은 된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하다. 일단 지역의료를 위해선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가 필요하다. 애초에 대학에서부터 지역에서 오래 일할 수 있는 학생을 뽑아야 하고, 의사가 되면 일정 기간 동안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제도화해야 한다. 일본도 9년간의 의무 기간을 정한 지역의사제를 실시하고 있다.

필수의료를 위해선 비급여 항목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지금 의사들이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 소위 '피안성'에 쏠리는 이유는 비급여 항목으로 돈을 엄청나게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민간 실손보험 시장의 이해와 맞물려있다. '피안성' 병원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실손 보험 있느냐'부터 묻는다. 환자가 있다고 하면 몇 백만 원씩 하는 주사나 수술을 권하며 '실손 보험 되니 이걸로 하세요' 한다. 그렇게 떼돈을 번다. 반면 필수의료 쪽 수가는 그에 비해 턱없이 낮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힘들게 뇌수술, 맹장수술을 하려고 하겠나.

당장 필수의료 수가를 올리기 어렵다면, 민간 보험 통제라도 시작해야 한다. 이미 많이 늦었다. 실손 보험 시장이 커질수록 '피안성' 의사와 필수의료 의사들 사이의 격차만 커질 뿐이다. 만약 월 수십만 원씩 내는 실손 보험 비용을 모두 건강보험으로 돌리면 어떻게 될까? 민간 보험을 들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비필수 과목 의사들이 과잉 진료로 과도한 수익을 올리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이건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의료개혁특위에서 구체적으로 다뤄져야만 한다."

- 2월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의료 파행이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하나.

"선배들, 교수들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파업이 더 아쉽다. 전공의들 얘기를 들어보면 복귀를 원하는 기류가 분명히 있다. 특히 전문의 취득을 목전에 두고 있던 3~4년차 전공의들이 그렇다. 의사들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책임지고 정부와 대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1~2년 고통이 더 길어질 수 있다. 당장 올해 의대생·전공의 유급이 확정되면 내년도 신입 인턴과 레지던트 1년차가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사태로 지역의료·필수의료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도는 많이 높아진 것 같다. 정부는 이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정부가 향후 5년간 필수의료에 10조 원을 쓰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이뤄질지가 의료개혁특위의 진정성을 시험할 수 있는 리트머스지라고 본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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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보건의료노조, #최희선, #의사파업, #의대증원,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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