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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만남의 명소 5곳을 소개한 1998년 12월 27일 자 경향신문.
 서울 시내 만남의 명소 5곳을 소개한 1998년 12월 27일 자 경향신문.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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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27일 자 경향신문에 실린 사진에 눈길이 머문다. 당시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였던 서울 종로서적 앞은 많은 이들로 북적거린다. 다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표정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냥 가만히 서있다. 팔짱을 끼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그저 앞만 바라보거나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있다. 

그냥 서있는 게 왜 이리 놀랍지? 나도 저 때를 살았는데 낯설다. 그 이유는 어디서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어서일 것이다.
 
스마트폰을 보며 전철 기다리는 사람들
 스마트폰을 보며 전철 기다리는 사람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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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기태는 소설 <롤링 선더 러브>에서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사람을 가리켜 "요즘 좀처럼 마주치기 어렵고 그래서 무섭게도 느껴지는 사람, 즉 '그냥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제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 사람은 이상하고 심지어 '무섭기'까지 하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스마트폰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어요?"

그러게, 어떻게 살았지? 모든 은행 거래를 일일이 지점을 찾아가 번호표 뽑아 기다렸다가 해야 했고, 처음 가보는 곳은 자동차보험 회사가 준 지도를 보고 가다가 중간중간 차를 세우고 행인에게 '실례합니다, OO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라고 물어가며 가야 했다.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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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보면 몹시 불편하겠지만 그때는 불편이라 여기지 않았다. 과거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불편하기 짝이 없기 마련이다. 훗날 사람들도 지금 우리가 불편하게 살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니 편리로만 시대를 평가할 것은 아니다. 내가 사는 시대나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나 각각의 환경이 있고 그 환경에 맞춰 사람들은 살아가는 거니까. 

다만, 지금 사는 방식이 늘 이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면 지금 이 순간이 새롭게 보이는 효과는 있다. 그 생소함이 사는 재미를 주기도 하고.

최근 나온 책 <우리가 두고온 100가지 유실물>을 보면 지금의 익숙한 삶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룬 유실물 중 몇 가지를 뽑아보면 이렇다.

지루함, 길 잃기, 티켓 분실하기, 실패한 사진, 전화, 고독, 숙면, 번호 기억하기, 인내심, 〈TV 가이드〉, 지도, 그 순간에 있기, 날씨 궁금해하기, 당신의 집중력, 눈 맞춤, 그 배우가 누군지 알아내기... 

유실물이니 되찾자고 할 생각은 없다.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것이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터.

지루함을 못 참고 스마트폰을 보고, 
고독을 느낄세라 SNS에 글을 올리고, 
그 배우가 누구였더라 생각해보기도 전에 검색해 보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이 순간을 살지 않고 그 다음에 일어날 일만 생각하고, 
필름 한 통에 20장까지만 찍을 수 있어 꼭 필요한 사진만 찍던 시절과 달리
똑같은 모습도 여러 장 찍고는 그 사진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1시간 집중은커녕 단 1분도 집중하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다는 거.

이 정도만 알아차려도, 나아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하는 의문만 던져도, 우리 삶이 조금 더 나아질지도 모르니까.

태그:#스마트폰, #유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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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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