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14 09:57최종 업데이트 24.06.1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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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 [편집자말]

지난 8일 공공운수노조에서 개최한 콜센터 노동자 집회에서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김금영씨가 발언하고 있다. ⓒ 공공운수노조

 
"고객센터에는 경력 단절 여성, 한부모가정, 여성 가장의 비율이 높습니다. 물가는 폭등했지만 상담노동자들의 실질 임금 상승은 오히려 하락했고 그저 최저임금에 맞춘 최저 생계만이 가능 합니다. 10년, 20년을 다녀도 임금은 오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평균 출산율 0.6명(지난해 4분기 출산율 0.65명)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여성 노동자들의 대우가 바닥을 치는데 어떤 이가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는 삶을 영위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8일 공공운수노조에서 개최한 콜센터 노동자 집회에 참여한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김금영씨의 발언입니다. 지난주에 정훈님이 저출생문제에 대한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그에 대한 노동자의 답장을 이 발언으로 축약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MZ 세대는 미래를 위한 저축보다는 버는 대로 써버린다고요? 

저는 요즘 최저임금 노동계 위원으로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회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회의장에는 정말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 오고 가지만 공개하지 않고 있어 국민들이 알기 어렵습니다. 지난 2차 회의 때 한 사용자 위원은 'MZ 세대의 경우 미래를 위한 저축보다 버는 대로 다 써버리는 소비습관이 있는데, 이를 고려한 생계비 통계를 산출할 수 있는지'를 연구위원에게 질의하였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2025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해서 2023년 비혼 단신근로자 실태생계비를 조사합니다.

23년 실태생계비는 평균 246만 원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사회보험 연금 조세, 경조비 등의 비소비 지출이 46만 7738원, 주거, 음식, 교통, 식료품 등 소비지출 199만 2031원이었습니다. 이걸 본 사용자위원은 MZ 세대는 펑펑 쓰기 때문에 청년들의 생계비를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참고자료로 삼을 수 없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하도 황당해서 "저도 MZ인데 최저임금 위원이 그런 편견에 가득 찬 발언을 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생활비 199만 원이 과소비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1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제3차 전원회의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노동조합 활동의 가장 큰 매력은 노동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겁니다. 최저임금을 받는 여성노동자들은 부족한 생계비 때문에 야간 편의점 알바를 뛰기도 하고, 아이를 낳고 싶으나 많은 시간과 돈이 드는 난임치료비가 부담스러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남성노동자 역시 정훈님과 제가 가지고 있는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안정적인 주거와 소득이라는 물질적 조건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새로운 생명을 낳고 양육하는 책임은 성별을 불문하고 모든 부모에게 주어집니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의 보장은 소득만으로는 확보할 수 없는 사회적 문화적 영역입니다. 사람들은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해 점심시간 포함 하루 9시간 노동 한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출근하는 데 1시간, 퇴근하는데 1시간 식사 준비와 설거지와 뒷정리까지 생각하면 일을 하고 다시 일을 하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만 12시간 정도 됩니다. 


연차, 육아휴직 등이 보장되는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면 마음 편히 아이를 돌볼 수도 없습니다. 출산전후휴가나 육아휴직을 쓰면 동료들의 업무량이 늘어나는 작은 사업장에서는 임신 출산 육아가 미안한 일이 됩니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특고플랫폼노동자들은 고용보험이 일부직종에 보장되긴 하지만 출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실제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과 출산의향의 동태적 연구분석>에 따르면 '청년층의 고용 안정성을 높여, 우리 청년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봉착할 수 있는 불확실성을 경감시켜 줄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돌봄과 생계활동을 철저히 분리해서 분업화해 가정을 공장처럼 돌리는 게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배우자 한 명이 일을 해 가족을 부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불공정한 시대가 되었고, 한쪽이 독박육아를 하는 것도 불공정한 시대입니다. 사회는 아이를 낳고 키우지 않는 이기적인 젊은 세대를 비난하지만, 돌봄노동을 배우자에게 전적으로 맡기거나 생계비를 전적으로 배우자에게 맡기는 것만큼 이기적인 행위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공생하기 위해, 서로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지 않기 위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돌봄과 관계의 상품화와 탈상품화 
 

사진은 한 베이비페어에서 참관객들이 출산 육아 용품들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임신·출산·육아는 소위 가성비가 나오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딜레마를 마주합니다. 그동안 양육과 돌봄의 가치는 제대로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주로 여성들이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랑의 마음으로 그냥 하는 무료노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성들의 노동이라고 여겨진 양육과 돌봄이 집 밖에서 상품으로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소풍날 싸주는 엄마의 김밥은 '김밥천국'에서 판매됩니다. 청소, 요양, 육아, 요리 등이 상품으로 변했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모든 아이들이 학원으로 이동하는 현실에서 친구를 사귀고 놀고 사람을 사귀는 것 역시 사교육시장에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아이의 사회생활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요즘은 놀이터도 아파트 단지 안에 있어 아파트 구성원이 아니면 함께 놀 수도 없습니다. 안전하고 흙놀이가 가능한 놀이터를 찾아 헤매야 합니다. 돌봄과 관계 모든 것이 상품화됐습니다. 

양육과 돌봄을 상품으로 만드는 일은 국가 주도하에 진행 중입니다. 돌봄서비스의 상품가격을 낮추기 위해서 돌봄서비스 노동자를 값싸게 수입하자고 대통령과 장관이 나서고 있습니다.

이제 돌봄이 무역상품이 되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공적돌봄기관인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서사원)을 폐지해 버렸습니다. 어린이집은 민간위탁으로 돌리고 돌봄 노동자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오세훈 시장은 서사원 폐지 며칠 후 저출생 대책으로 정관난관 복원 수술비 지원 사업에 예산을 책정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돌봄의 상품화'가 잘못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저출생 문제를 언급하면서 육아 부담을 줄이고 국가책임을 강화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말과 행동이 다릅니다. 

젊은 세대에게 사랑과 돌봄의 가치를 돈으로 계산하지 말라고 엄숙하게 훈계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이유입니다. 

상품화된 돌봄과 양육을 탈상품화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돌봄과 공적 인프라가 필수적입니다. 돌봄과 관계의 탈상품화는 과거 여성이 임신·출산·육아를 모두 책임지는 시대로 돌아가자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시간이 임금으로만 교환되지 않도록, 우리의 하루가 돌봄과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노동환경을 바꾸고 공적돌봄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2023년 연봉킹은 롯데 신동빈 회장입니다. 시급 848만 5247원, 23년 최저임금의 882배입니다. 출근해서 점심먹으러 갈때쯤엔 최저임금노동자의 1년치 연봉을 받습니다. 누군가의 반나절이 누군가의 1년과 같은 시간격차를 방치한다면 우리사회의 미래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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