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7 15:31최종 업데이트 24.06.2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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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과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를 모색해 나갑니다.[편집자말]

이인재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훈님, 저는 요즘 최저임금 때문에 서울과 세종을 오가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5차 전원회의부터는 최저임금 차별적용을 논의 중입니다. 특정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삭감하자는 위헌적 주장이 진지하게 논의되는 현실에 자괴감이 듭니다.

최저임금법 4조 구분적용은 감액이 아니라 확대적용 위한 수단

'최저임금법 4조 구분적용'의 입법취지를 보면 사용자들의 최저임금 삭감주장이 얼마나 근거가 없는 얘기인지 알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은 모든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처음부터 모든 사업장에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법 4조에 구분적용을 만들었습니다. 최저임금위원인 이미선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최저임금법을 논의한 보건사회위원회(지금은 환경노동위원회) 회의록을 찾아내 6월 25일 5차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소개했습니다. 이미선 부위원장이 찾아낸 1986년 11월 27일의 기록을 함께 읽어봅시다.

"우리나라와 같이 직업별 산업별 성별의 임금격차가 심한 경우에는 최저임금제 도입이 저임금의 해소에 있음을 감안한다면 적용대상을 가장 임금이 낮은 부문부터 적용하여 점진적으로 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습니다. 즉 처음에는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실시한 다음 이렇게 해서 업종간의 임금격차 폭을 축소 시킨 후 다시 지역별 최저임금으로 유도하여 지역 간의 격차 폭을 줄이고 종국에 가서는 전국 전 산업에 일률적으로 최저임금을 실시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사료됩니다."(손윤목 전문위원)   

최저임금법 4조 구분적용의 입법취지는 확대적용을 위한 근거이지 차등적용을 위한 수단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1일 국회 입법 조사처도 사용자의 지불능력을 근거로 한 최저임금 삭감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사용자들이 최저임금 차별적용의 유일한 근거로 제시하는 게 최저임금 미만율입니다.

이에 대해 국회입법조사처는 "최저임금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이유가 단지 업종별 지불능력 차이에 있다고만 설명하기에는 명확한 근거가 없고, 사용자의 법 준수 의식의 차이, 기업의 규모 등도 그 차이의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올해 최저임금 심의를 위해 최저임금위원회가 채택한 <2024 임금실태 등 분석 보고서> 미만율 통계를 보면 사태가 투명하게 보입니다.

경총이 신봉하는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를 토대로 한 최저임금 미만율은 여성이 18.7%로 남성 9.5%의 두 배입니다. 19세 이하 미만율은 59.6%, 24세 이하는 30.3%, 60세 이상 미만율도 35.5%입니다. 고졸 노동자의 최저임금 미만율은 23.7%로, 대졸 이상 4%의 6배 가까이 됩니다. 사용자의 지불능력이 아니라 성별, 연령, 학력에 따라 차별적으로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새로운 을들의 연대, 음식점 사장님과 배달라이더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가 지난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6.21 배민항의행동, 배달라이더 X 배달상점주 플랫폼 갑질 규탄대회'를 열었다. 라이더유니온과 공정한 플랫폼을 위한 전국사장님 모임 등 '6.21 배민항의행동' 참석자들은 "배민-쿠팡 등 거대플랫폼이 라이더-상점주와 같은 '을'들을 과도하게 착취하고 있다"라고 성토했다. ⓒ 이정민


사용자들은 최저임금이 급격히 상승했기 때문에 업종별 차등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렸다고 믿습니다. 사람들의 신념과는 달리 문재인 정부 시절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은 7.2%로, 박근혜 정부 7.4%보다 0.2%p낮습니다. 

사실 '최저임금 1만 원 운동'은 최저임금 1만 원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경제생태계를 만들자는 거였습니다. 그 속에서 피어난 게 바로 을들의 연대입니다. 을들의 연대를 상징했던 건 임대료와 대형프랜차이즈에 맞선 편의점 사장님과 알바노동자의 연대였습니다. 2018년 7월에 제가 기고한 '최저임금 때문에 힘들다고요? 편의점주님들, 솔직해집시다' (https://omn.kr/ryrz)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산업과 노동이 변했습니다. 2024년 6월 21일 국회 앞에서 라이더유니온과 배민 음식점 사장님의 연대집회가 열렸습니다. 음식점주들은 이제 플랫폼에 입점하지 않으면 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건물주뿐만 아니라 디지털 건물주인 배민과 쿠팡에도 임대료를 내야 합니다. 음식점만이 아닙니다. 신발, 의류, 과일, 핸드폰 등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모든 자영업자들이 대형 플랫폼에 입점해서 디지털 임대료를 냅니다.

뿐만 아니라 알 수 없는 알고리즘과 별점에 의해 가게 노출과 매출이 좌우되고, 통제할 수 없는 플랫폼 노동자에게 배송서비스를 의존하게 됐습니다. 그때그때 플랫폼이 일방적으로 바꾸는 계약조건에 무엇이 유리한지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플랫폼 노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AI가 실시간으로 임금을 결정하고, 마음대로 근무조건을 바꿉니다. 이를 인식한 자영업자들은 배달노동자들과의 싸움이 아니라 독점 플랫폼에 맞선 연대를 선택했습니다.

사용자 단체가 정말로 소상공인을 위한다면 시대착오적인 최저임금 차별적용이 아니라 플랫폼 규제를 위한 을들의 연대를 모색해야 합니다. 최저임금 1만 원 운동 시대에 을들의 연대가 편의점 알바노동자와 편의점 사장의 연대였다면, 2024년 을들의 연대는 플랫폼 횡포에 맞선 사장님과 플랫폼 노동자의 연대인 겁니다. 

경총과 사용자위원은 늘 600만 자영업자를 위해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통계청이 작성한 올해 2월 고용동향을 보면 전체 자영업자 551만 5천 명 중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43만 6000명에 불과합니다. 최저임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는 자영업자의 숫자는 경제활동인구 2895만 7000명에 비하면 소수입니다.

반대로 최저임금을 받아야 하지만 최저임금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점점 늘고 있습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3.3%의 세금을 떼는 인적용역사업자들의 숫자가 847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인적용역사업자들은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작가, 학원강사, 배달노동자 등 플랫폼 프리랜서 특고노동자들입니다.

이중에서 자신이 정말로 사장이라고 생각해서 사업자 등록증을 가진 사람들은 단 2만 5000명에 불과합니다. 제대로 된 자영업자 보호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최저임금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노동자와,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할 자영업자를 제대로 분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특고 플랫폼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보장을 위한 최저임금법 5조 3항 논의가 뜨거웠던 이유입니다. 최저임금 1만 원을 위한 경제생태계에서 최저임금 확대를 통한 경제생태계 구축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최저임금 1만 원 요구 이제 폐기해야
 

2017년 6월 21일 만원행동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철폐, 노조할 권리 보장, 6.30사회적 총파업에 함께하는 만원행동 기자회견’을 연 모습. ⓒ 권우성


'최저임금 1만 원'은 이제 폐기해야 할 구호입니다. 140원 만 오르면 최저임금 1만 원을 돌파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산업구조 변화와 기업의 경영전략에 따라 노동법 보호를 받지 못하는 특고 플랫폼 비임금 근로자가 늘어나 최저임금이 모든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합니다. 최저임금 상승이 모든 노동자의 임금상승을 의미하지 않게 됐습니다.

둘째로 최저임금 1만 원은 기후위기와 전쟁으로 인한 물가폭등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낮은 금액이 되었습니다. 최저임금 1만 원 운동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전 세계에 불었던 최저임금 두 배 운동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습니다. 금융위기를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상승을 통해 극복하려고 했던 시도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노동법 밖으로 추방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최저임금 1만 원은 이주노동자 혐오와 모든 차별에 맞설 수 있는 구호가 아닙니다. 2023년까지의 차등적용은 경영계 주도로 편의점 음식숙박업 택시 3개 업종의 최저임금을 삭감하자는 주장이었습니다. 올해는 대통령과 장관 주도로 이주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진행 중입니다.

정부는 개인 간 거래를 통해 외국인 가사 노동자를 이용하면 최저임금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홍보 중입니다. 최저임금을 우회해 차별적용을 실현시키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여성, 청년, 노인에 대한 차별은 반드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주노동자의 시신을 화성화재현장, 농촌 비닐하우스에서 발견하고 있으며. 성별임금격차 1위와 낮은 출산율, 세계최고의 노인빈곤율과 청년문제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노동자의 차별 없는 임금 인상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특고 플랫폼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논의를 올해 최저임금위원회가 끝나자마자 시작해야 합니다. 특고노동자들의 희망이었던 안전운임제 부활은 물론, 26일부터 열리는 공무원보수위원회, 복지제도의 준거가 되는 기준중위소득을 정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생활임금까지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최저임금 1만 원이 아니라 차별 없는 임금 인상 운동이 우리의 대안이 되어야 합니다.    

편지를 쓰다 보니 최저임금위원회를 마치고 황폐해진 마음이 조금은 추슬러집니다. 우리의 편지가 우울한 현실을 묘사하는 걸 넘어 희망과 위로가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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