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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쓰는 군에 보낸 아들 이야기다. 지난번 아들에게 쓴 손편지 이야기에 이어 요즘 아들이 군에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아들은 5월 14일 화천에 있는 제7사단 신병교육대에 24-9기 훈련병으로 입대했다. 이번에 제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사고를 당한 훈련병과 같은 기수다. 요즘 군에 있는 아들을 둔 부모들은 '더 캠프' 게시판에 분노를 쏟아내고 있으나 이상하게도 언론에 눈에 띄는 후속보도가 없다. 국방부 누리집에도 별다른 관련 소식이 없다.

1991년 내가 군에 가던 해

내가 군에 가던 시절 이야기이다. 입대일 전날 어머님과 동네에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졌다. 원주에서 멀지 않은 춘천에 있는 102보충대로 입대하는데 굳이 부모님이 동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입대 전날 저녁 작정하고 술을 마시기로 약속한 친구도 많았다.

하지만 집 앞에서 아들을 떠나보내고 어머님은 크게 마음이 아프셨던 모양이다. 아들이 떠난 날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많이 드시고 고생하셨다고 한다. 내가 입었던 옷과 신발이 소포로 돌아온 날도 소주를 많이 드시고 실수하셨다는 이야기는 손주들이 군에 갈 때마다 가족 모임에서 단골로 나오는 이야기다. 신병교육대에서 집으로 편지를 여러 차례 보냈으나 답장은 없었다. 부모님께서 글을 잘 모르시기 때문에 딱히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들에게 편지를 많이 쓸 계획이다. 이번에 새롭게 안 사실인데 요즘은 우표를 파는 곳이 따로 없다. 우체국에 가서 겨우 우표를 정확하게는 '선납일반통상'이라고 쓰인 바코드를 20장이나 샀다. 아들 군 복무 기간이 18개월이니 매월 하나씩은 쓸 생각이다. 두 번째 편지를 보냈는데 아직 받지 못했다고 한다. 딱히 할 말은 없어서 옛날 신병교육대 시절 이야기를 썼다. 같이 훈련받는 동기들과 잘 사귀라고 적었다.

옛날 내가 경험한 신병교육대 퇴소식은 상당히 크고 중요한 행사였다. 퇴소식은 마치 요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학예회처럼 배운 것을 보여주는 행사였다. 신교대 훈련은 주로 총검술이나 분열처럼 퇴소식에서 보여줄 것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1월, 살을 에는 찬바람 속에서 펑펑 쏟아져 발목까지 쌓인 눈을 치우고 '전방에 차려총'을 했었다. 다행스럽게 요즘은 퇴소식을 간단하게 치르는 모양이다.

2024년 아들이 군에 간 해

오늘 아들이 보낸 소포를 받았다. 예상한 대로 아들이 입고 갔던 옷과 신발이 들어 있다. 이미 올 때가 됐는데 오지 않아 기다리던 참이다. 어머님께서 느끼셨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궁금했다. 사진을 찍고 소포를 뜯어 보니 아들이 입었던 옷과 모자 그리고 신발이 나왔다. 조금 묘한 느낌은 있으나 어머님처럼 큰 상심은 없다. 내가 어머님처럼 다정다감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휴일마다 아들과 통화를 하는 시대라 옛날과 같은 애틋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들의 소지품이 담긴 소포
 아들의 소지품이 담긴 소포
ⓒ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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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입대할 때 입었던 옷가지
 아들이 입대할 때 입었던 옷가지
ⓒ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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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오늘도 주말이라 아들과 통화를 했다. 이번 주는 체력 측정을 했다고 한다. 3km 달리기를 했는데 상위권도 꼴찌도 아니고 그런대로 통과한 모양이다. 다행이다. 아들이 체력이 강한 편이 아니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낙오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옛날처럼 총검술 훈련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주에는 화생방과 사격훈련을 했다고 한다. 요즘은 가스실에서 방독면을 벗고 싶은 사람만 벗게 하고, 사격장에서 '전진무의탁' 일명 '피알아이'는 없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전진무의탁'도 이젠 전설 속에나 있는 용어가 됐다.

아들이 보낸 상자에는 면마다 글귀와 사진이 있다. 윗면에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육군, 그대들이 있어 든든한 대한민국입니다' 그리고 옆면에는 '장병 여러분의 소중한 꿈(Dream)을 대한민국 육군이 응원합니다'와 '자랑스러운 승리하는 육군'이라는 글귀가 적혔다. 게임에나 나올 듯한 온갖 멋진 장비를 착용한 사진도 있다. 정말 상투적인 글귀로 느껴진다. 자랑스러운 군인이 오히려 처벌받는 시대라서 그렇다.

이쯤에서 대한민국 육군에 바라는 점을 한 가지 적고자 한다. 1991년과 2024년 군대는 많이 달라졌다. 물론 대한민국 군대 많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과연 이게 최선인가는 따지고 싶다. 아들과 통화를 나누며 훈련 강도는 많이 낮아졌음을 확인한다. 다행히 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벌어진 부당한 학대 정황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일과를 마치고 씻는 시간이나 빨래를 하는 시간은 매우 부족한 모양이다. 속옷은 샤워할 때 빨아서 해결하지만, 훈련복은 단 한 벌만 받아서 빨지도 못하고 땀에 찌든 옷을 그대로 입고 지내고 있다. 1991년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아들이 훈련복 하나로 5주를 버틴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다. 요즘 아이들 대부분 어제 입었던 땀에 찌든 옷을 다시 입는 일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이다. 찢어진 훈련복을 받은 훈련병도 있는 모양인데 우리나라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것은 아니다. 세탁기는 있는데 시간이 없고 빨래를 널어 말릴 공간도 부족한 모양이다. 이제는 군대에 건조기를 보급하기를 바란다. 생각해보니 청소기도 보급해야 한다. 아들이 있는 신병교육대는 아직도 침상을 쓰고 있다는데 청소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1991년에는 기상과 동시에 천둥 소리를 내며 침상을 무서운 속도로 닦는 침상조가 따로 있었다. 진공청소기와 스팀청소기도 보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복도나 화장실을 청소하지 않는다. 따로 그 업무를 보는 분들이 고용돼 일하기 때문이다. 군에 간 친구들은 학생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 이등병 월급이 65만 원이니 내가 받던 6000원보다 정말 많다. 하지만 군에 가지 않은 이들을 생각하면 65만 원은 보잘것없는 보상이다. 침상 청소까지는 몰라도 화장실 청소는 용역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1991년에는 똥 푸는 일도 사병이 했다. 당번병으로 부르던 이른바 지휘관을 위한 '따까리'는 없앴는지 궁금하다.
 
대북방송 실시 대비 실제훈련에서 확성기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대북방송 실시 대비 실제훈련에서 확성기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 합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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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이야기

제발 쓸데없는 대결로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말자. 인공지능이 대세인 시대에 한심한 인간이 '삐라(전단)'를 풍선에 달아 북으로 날리고 북에서는 오물을 매단 풍선이 날아온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고작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다는 헛소리가 나온다. 2024년에 삐라와 대북 확성기라니 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군대를 가지 않은 자들이 이상하게 대북 강경책을 논한다.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줄행랑을 칠듯한 자들이 말이다. 우리 아들은 제7사단으로 자대배치를 받아서 꼼짝없이 철책 근무를 해야 한다. 이 땅의 아이들을 위험하게 만드는 어떤 정책도 단호하게 반대한다. 

군에 가자마자 감기에 걸린 아들이 몇 주째 기침이 그치지 않고 있어서 너무 안쓰럽다. 상급자에게 아부만 하지 말고 지휘를 맡은 사병의 건강도 세심하게 챙기는 지휘관이 승진하는 군대라야 승리하는 군대가 될 것이다. 쓸데없는 군기를 강조하고 부하를 위험에 빠뜨리는 지휘관은 정리돼야 한다. 박정훈 대령은 살리고 임성근 소장은 정리해야 한다.

태그:#육군, #신병교육대, #대북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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