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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치서핑 커뮤니티를 통해 세계 각지의 여행객을 집에서 재워주고 있습니다.  때로는 공동육아가, 때로는 고민상담이, 때로는 별 것 없는 게스트와 호스트의 관계가 생각보다 재미있고, 생각보다 영감이 되는 경험으로, 만 6세 아이와 둘이 살며 방구석 세계여행을 하는 이야기를 씁니다.[기자말]
'카우치 서핑'의 호스트가 되어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프로필의 내 상태를 'Accepting Guests'(손님 받아요)로 바꿨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첫 게스트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우리 집 첫 손님은 러시아에서 온 두 여성. 키가 크고 얼굴이 환한 두 여인은 조금 피곤한 기색이 있었지만 약속한 시각을 맞출 수 있었다는 안도감이 커 보였다. 호스트와의 약속을 어떻게든 지키려고 노력한 그들의 모습에 우리의 동거가 꽤나 기분 좋게 흘러가겠구나 싶어 안심이 되었다. 이내 잠을 청해야 하는 우리는 얼른 방과 화장실, 먹을 물 등을 안내하고 '굿 나이트'를 알렸다.

둘째 날 아침엔 아예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힘 뻗치는 여행객에게 밤 아홉 시까지 들어오라고 하는 것이 열 시가 되면 문을 걸어 잠그는 모 대학 기숙사와 다를 게 뭐가 있나 싶었다.

아이를 재우고 일을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내가 자고 있지 않아 약간 놀란 기색이었지만 이내 우리는 식탁에 앉아 누구는 맥주, 누구는 녹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에는 편견이 없었고 벽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대화에는 호기심이 있었고 응원과 지지가 있었다.
 
카우치서퍼들은 대부분 여행 시작 전에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
▲ 러시아에서 온 초콜릿 카우치서퍼들은 대부분 여행 시작 전에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
ⓒ 김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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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 : "러시아에서 왔다고 해서 좀 불안하지 않았어? 외국에선 러시아라고 하면 다들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더라고."

나 : "유튜브에 'South Korea에 여행 간다 했을 때 엄마의 반응'이라고 찾아봐봐. '한국? 너 붙잡혀 가는 거 아니니, 거기 아직도 전쟁 중이라는데!'라면서 벌벌 떨어. 딸이 좀 과장해서 만든 영상이겠지만 어떤 나라에 대한 인식이 쉽게 바뀌진 않는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난 너네가 러시아에서 왔든 중국에서 왔든 아무 상관이 없었어."

게스트 : "어, 맞아! 러시아도 그냥 사람 사는 곳이야. 뉴스에서 말하고 보이는 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크게 관계가 없을 때가 많아. 우린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거든. 세계 어딜 가봐도 사람 사는 건 비슷하잖아. 환경이 좀 다를 뿐이지."

나 : "어쩌다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어? 혹시 BTS 팬이야?"

"하하, 팬은 맞는데 그거 때문만은 아냐. 사실 내가 한동안 우울증 때문에 힘들었던 때가 있었어. 그때 우연히 한국 드라마를 보게 됐는데 그 이야기에 묘하게 힐링을 얻었어. 그래서 그때부터 한국을 좋아하게 됐어."

게스트 : "어떻게 아이가 있는데 이런 걸 할 생각을 했어?"

"사실 내가 '카우치서핑'을 알게 된 건 오래 전이야. 혼자 스페인 여행을 할 때 게스트로 머물렀었고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그런데 아이를 낳고 여행을 못하다가 작년에 아이와 둘이 태국 여행을 다녀오면서 내가 좋아했던 여행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 그러다가 매번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여행객을 초대해서 이야기하면 여행 간 기분일 것 같았어. 그래서 호스트를 해보자 하게 됐지.

아이가 있는 건 방해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신선한 모험이야. 아이에게도 나름 재밌는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해. 당장 영어 한 마디 하지 못하더라도 넓은 세상에 대한 아이디어는 얻을 수 있잖아? 나중에 커서 '그때 우리 집에 러시아 누나들이 왔었는데. 러시아는 어떤 곳일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게스트 : "와... 정말 그렇네. 나중에 꼭 러시아 놀러 와야 해! 러시아도 사계절이 있어. 날씨 좋을 땐 얼마나 좋다고! 근데, 여기서는 길거리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데이트 신청하는 게 흔하지 않아? 다들 쳐다보기만 하고 막상 눈 마주치면 핸드폰을 보더라. 하하. 대체 여기선 사람을 어떻게 만나?"

나 : "너무 웃기다. 눈을 피해? 문화가 다른 것 같아. 길거리나 클럽같은 데서 만나기도 하지만 소개팅을 많이 해. 그래야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게스트 : "소개팅으로 만난다고 그 사람을 미리 아는 건 아니잖아?"

나 : "어 맞아. 하지만 중간에 소개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 역할을 믿는 거지.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 하는 일, 성격 등을 듣고 만나게 돼. 생각해 보니 사람에 대한 신뢰가 그런 걸로 쌓이는 게 좀 웃기다."

게스트 : "부산에 갔는데 어떤 남자가 다가와서 연락처를 물었어. 근데 그 남자 내가 스물세 살인 줄 알았대! 나 서른셋인데. 하하."

나 : "그래서 연락처 줬어?"

게스트 : "인스타그램 아이디 줬어. 그 사람 건물 주래! 한국에선 건물주가 최고라며?"

나 : "하하, 건물주가 최고라고들 해. 그럼 그 건물 방 하나에서 좀 재워달라고 하지 그랬어!"

게스트 : "아 그럴 걸!"


짧고 얕은 언어가 주는 깊고 달콤한 자유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젤리맛이었다. 러시아 젤리!
▲ 러시아에서 온 젤리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젤리맛이었다. 러시아 젤리!
ⓒ 김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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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대화가 그리웠다. 어떤 사람들은 외국인과의 대화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답답하고, 피상적인 대화만 하게 되어 지친다고들 하지만 나의 경험으론 언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물론 언어를 어느 정도는 해야 가능하지만, 더 중요한 건 대화의 내용이다. 

말이 통해야 한다. 알고 싶어 해야 한다. 그 다음엔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고 나면 몇 안 되는 외국어 단어로 기어코 마음을 표현할 때에도, 수백수천 가지의 단어를 사용하며 모국어로 찬란하게 마음을 표현할 때만큼이나 깊고 달콤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내가 외국어로 이렇게 마음이 닿는 대화를 할 수 있다니' 하며 햇살 같은 뿌듯함에 광대승천 자신감도 얻는다. 그 투명하고 잣대 없는 공감의 대화는 단지 짧은 시간일지라도, 매일 붙어 지내는 친근한 사람과의 쉴 틈 없는 대화보다 훨씬 더 강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

나에겐 그런 대화가 일상의 영감이 되고 고난에서 튀어 오를 수 있는 한줄기 빛이 되기도 한다. '정말 잘했어. 이 대화, 이것만으로 이번 호스팅은 백점 만점이야!'.

"You are very cool one! I wish we could spend more time together. Good luck to you finding new amazing job!(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이야! 나는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으면 좋겠어. 당신이 새로운 일을 찾는 데 행운을 빌어."

마지막 메시지에 그녀는 또 하나의 응원을 남기고 떠났다. 내가 직장을 구하고 있다는 말을 잊지 않고. 고마워, 언젠가 또 만나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부켓웹매거진에도 실립니다.


태그:#카우치서핑, #여행, #배낭여행, #세계여행, #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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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물건의 이야기를 듣고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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