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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닥터 김사부3’ 공식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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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닥터 김사부>라는 드라마 시리즈의 주요 배경은 '돌담병원'이란 종합병원이다. 드라마 속 강원도 정선군에 있다는 돌담병원은 한 사립대학 재단에 소속된 작고 낡은 시골의 2차 의료기관이지만, 응급 및 외상환자 치료 등 소위 양질의 필수의료를 제공하면서 나중에는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된다.

그러나 현실 속 강원도 정선군에는 종합병원이 없다. 병원급 의료기관이 2개 있지만 외과, 정형외과, 내과, 소아청소년과, 영상의학과, 직업환경의학과만 운영되고 있다. 게다가 전문의가 2명 이상 있는 과는 단 하나도 없다. 돌담병원은 현실에서는 판타지에 불과하다.

지역의료의 현실

강원도 정선군만 종합병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국 82개 군 중에서 종합병원이 있는 지역은 17개 군에 불과하다. 이중 양질의 포괄 2차 의료기관인 3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이 있는 군은 8개뿐이다. 8개 군 외 지역의 주민들이 이곳을 이용하려면 거주지를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군 지역은 2차 의료의 취약지다. 이러한 현상은 특정 지역이나 의료전달체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20년에 수행된 한 연구에 의하면 1차 의료 취약지는 총 172곳의 읍·면·동이었는데 이중 158곳이 비수도권이었고, 여기에는 중소도시도 포함돼 있다. 비수도권의 의료 취약 문제는 농촌 지역을 넘어서 도시 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비수도권의 의료 취약 문제는 인구 고령화, 인구 위축과 함께 심화한다. 인구 고령화는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문제이지만 비수도권·비광역시 군 지역이 가장 심하고 비수도권 중소도시, 비수도권 광역시, 수도권 순으로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또한 정부가 2021년 지정한 89개 인구감소지역은 노인인구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였고 이 중 85개는 비수도권이었다.

지역의료는 어떻게 취약해졌나?

비수도권의 고령화와 인구 위축은 한국 자본주의 축적 과정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국가주도의 수출공업화 및 중화학공업화를 통해서 급속도로 발전한 한국 자본주의의 근간에는 젊은 농업 노동력의 도시 유출과 저임금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저곡가 정책이 있었다. 이는 농촌 지역의 고령화와 내부 식민지화를 초래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특히 1990년대부터는 비수도권 광역시에서도 인구 감소 현상이 나타났고,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는 비수도권 광역시의 수도권 이주자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다. 이 시기는 수도권 중심으로 지식 및 첨단기술산업의 집중이 강화되고 대규모 신도시 개발이 이루어지는 때였는데 이 기간에 발생한 두 차례의 경제위기는 제조업 및 첨단산업의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켜 비수도권 인구 감소와 인구 고령화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비수도권은 인구가 적고 상대적으로 가난한 노인들이 많아 총 수요가 적다. 그러므로 시장이 위축되고, 심한 경우 붕괴된다. 이윤추구적인 민간 부문이 주도하는 의료시장도 마찬가지다. 기존에 존재하던 의료 기관은 더 나은 수익이 보장되는 곳으로 이동하고 의료 인력도 따라서 이동한다. 그리고 신규 의료 기관의 진입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진다. 그 결과가 지역의료, 지역 필수의료의 공백이다.

이와 같은 공백은 국가권력-경제권력 연합에 의한 수도권 중심의 자본 축적 전략과 이윤추구적인 사적 보건의료 체계가 낳은 필연적 산물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역의료의 위축은 실효성 있는 균형발전 정책과 자본 축적을 위한 공간 전략의 근본적 변화, 그리고 보건의료 체계의 공공성 강화 없이는 해결하기 힘들다.

하지만 균형발전 정책과 자본주의 성장 정책은 자본 축적에 도움이 되거나 위기를 극복하는 돌파구가 될 때에만 양립할 수 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등 자본 축적의 위기가 도래했을 때 국가권력이 선택한 길은 어김 없이 수도권 규제 완화를 통한 자본과 산업의 수도권 집중 전략이었다. 그러므로 자본 축적의 위기를 새로운 공간적 조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균형발전 정책에 의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완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의 지역의료 강화 대책 평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023년 10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지역 및 필수 의료 혁신 이행을 위한 추진계획 관련 브리핑을 시작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023년 10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지역 및 필수 의료 혁신 이행을 위한 추진계획 관련 브리핑을 시작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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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의료 이용의 지역 간 불평등을 결정하는 근본 요인은 수도권 중심의 자본 축적 전략을 강화하고 구조화하는 사회경제적·정치적 맥락이다. 지역의료체계의 사적 성격은 이런 맥락을 더욱 강화하고 지역의료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의료를 강화하는 또 하나의 전략은 지역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의료를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대책은 이런 방향과는 크게 어긋난다. 정부는 지난해 10월에 발표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 혁신전략'에서 공공병원 확충 위주의 접근 방법을 지역의료 위기 극복의 장애물로 평가했다. 또한 지역에 필수의료를 제공하는 '지역책임의료기관'은 '필수의료 혁신전략'에서 사라졌다.

반면 정부가 주요 재정 수단으로 제시한 '공공정책 수가'는 의료수요가 많은 대도시와 수도권의 민간의료 기관에 집중되는 구조여서 오히려 지역의료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또한 국립중앙의료원이 아닌 서울대병원에 지역의료 네트워크를 총괄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서울대병원은 자체 공공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는 기관이다.

뿐만 아니다. 정부는 권역책임의료기관으로서 지역의 필수의료 공급을 책임지는 국립대병원에 대해 규제 완화, 산학협력단 설치, 기부금품 모집 허용 등의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는 필수의료 공급 체계의 공공성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권역책임의료기관과 지역 공공병원 간 협력 모델 중 하나로 위탁운영을 제시했는데 권역책임의료기관 중에는 사립대 병원도 포함돼 있어 지역의료 체계의 사적 성격이 오히려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지역의료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를 주장해왔지만, 이들을 지역의료에 투입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상태이다. 공유형 인력 운영, 지역의료 교육과정 신설 및 확대, 지역의료 수련 확대, 입학정원 연계 지역 전공의 배정,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지역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이미 효과가 없다고 진단된 것들이다. 이런 대안으로는 현실에서 결코 '돌담병원'을 만날 수 없다.

현실판 '돌담병원'이 가능하려면

드라마 속의 '돌담병원'은 사실 독립적인 역량만으로 양질의 필수의료를 제공한 것이 아니다.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지만 사립대 재단의 재정적 지원과 역량 있고 헌신적인 의료진 파견이 있었다. 또한 강원도의 지원과 지역 병원의 협력이 있었다.

지역의료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 축적 전략의 수정과 실질적인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해소'를 위한 국가균형발전정책의 지속적인 추진이 필수다. 더불어 지역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와 공공 부문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역의료에 직접 종사할 수 있는 의사인력을 공공보건의료자원의 일환으로 양성하고, 수가에 한정되지 않는 재정과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책임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료 협력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분권적이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및 추진 체계를 확립해 지방정부와 지역 보건의료자원, 지역의 시민사회가 위기를 제대로 진단하고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참여와 협력에 기반한 지역의료 체계를 구현하도록 해야 한다. 이때쯤, 어쩌면 우리는 드라마 속의 돌담병원을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글 정백근 경상국립대학교·시민건강연구소.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4년 5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태그:#의료대란, #지역의료, #돌담병원, #낭만닥터김사부, #공공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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