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연구개발(R&D) 지원 개혁 방향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박상욱 수석은 "정부 R&D 지원 방식의 개혁을 진행해 완수해 나가면서 동시에 내년 R&D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대통령이 민생토론회에서 약속한 정책을 모두 입안하려면 약 901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의 주장이다. 이것도 민생토론회 17회까지의 추정치이고 24회까지 약속한 정책은 더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할 것이다.
2024년 국가 예산은 656조 6000억 규모다. 24차례 민생토론회에서 대통령은 국가 1년 예산을 훌쩍 넘어서는 규모의 정책을 약속했다. 그리고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에서 검토보다는 속도 있는 추진을 다그친다. 국가 1년 예산을 넘는 사업들을 적절성 검토나 예산 의결권을 가진 입법부와 한마디 상의 없이 대통령 홀로 결정하고 속도 있는 추진을 재촉한다. 이건 법치주의와 상식을 넘어서는 횡포이고 월권이다.
지난 3일 대통령실은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R&D 예산을 전년 대비 4조 6000억 원(14.7%)이나 삭감한 정부였다. 과학계 카르텔 운운하며 예산 삭감에 팔 걷어붙인 정부가 1년 만에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하겠다는 이유는 비효율적인 부분에 많은 조정이 이뤄졌다는 설명이 전부다.
불통독주 국정운영의 전형이다. 국가 예산을 대통령 주머니 쌈짓돈 정도로 생각하는 발상이다. R&D 예산에 큰 증액이 필요하다면 역대 최대 규모로 줄인 올해 예산 편성에 대한 사과부터 있어야 한다. 정부 마음대로 줄이더니 이제는 다시 선심 쓰듯 늘리겠다는 예산. 법과 시스템보다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좌우되는 국정운영 난맥상의 생생한 증거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초부터 긴축재정을 천명해 왔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미국발 금리 인상에 대응한다는 논리였다. R&D 예산은 물론 일자리안정자금, 지역화폐 예산 등 국민 생활과 직접 관련된 예산마저 크게 줄였다.
그러나 국가재정의 건전성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씀씀이를 줄이는 것 이상으로 부자와 기업에 세금을 줄여줘 세수가 크게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불경기에 서민 예산을 줄이면 내수 침체와 저소득층 빈곤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에도 후대에 빚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며 긴축재정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랬던 정부가 갑자기 국가 1년 예산 이상이 소요되는 사업들을 민생토론회에서 남발하기 시작했다. 긴축재정이 곧 재정건전성 확보라는 주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런 약속을 재정지출을 늘려 경제 침체를 막으려는 확장재정이라고 볼 수도 없다. 긴축재정이나 확장재정, 그 자체만으로 어떤 정책이 낫다 평가할 수는 없다.
윤석열 정부의 재정정책은 긴축재정에서 확장재정으로 바뀐 게 아니라 처음부터 서민들에게는 허리띠 졸라매기를 강요하고, 부자와 기업에는 불로소득으로 부를 축적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재정 정책이었을 뿐이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삭감이 되고 늘어나는 주먹구구식 예산, 이런 나라 살림을 '엉망재정' 말고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국민 혈세가 대통령 쌈짓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