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TV 모니터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유성호
주위의 숱한 반대와 강렬한 저항에도 개혁을 성공시킨 대통령,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은 여당과의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여당의 총선승리보다(심지어 차기 대선보다) 역사적 대통령이 되는 자신의 목표가 더 우선순위에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돌이켜보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후보가 될 고민도 했었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그에게 국민의힘은 대통령을 만들어 줄 수단일 뿐이었다. "공직 생활을 할 때부터 대통령이 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운 길을 가지 않았"다는 발언은 설령 여소야대 국면이 계속 이어지더라도, 당을 위한 타협이 자신의 목표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의지로 읽힌다.
따라서 단지 여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정책 중 가장 국민적 지지를 높게 받았던 의료 개혁을 포기할 리 만무하다. 많은 이들이 의료 개혁이 총선용 정책이라 비판했지만, 사실 윤 대통령의 그림은 총선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갈등의 조짐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장 대통령만큼의 의료 개혁 의지는 없어 보이는 여당 의원들은 대담 직후 다양한 불만을 쏟아내고, '국민의 요구'라는 모호한 말을 빌려 양보를 촉구하기도 했다. 함운경 후보처럼 대놓고 탈당을 요구하는 일이 아직은 드물지만, 궁지에 몰린 후보들이 또 어떤 목소리를 낼지 모를 일이다.
주목할 것은 조금씩 대통령실로부터 독립하고 싶어 하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행보다. 한 위원장은 지난 3월 31일 선거 유세에서 총선 이후 윤 대통령에게 쫓겨날 것이라는 세간의 예측을 의식한 듯 "총선 이후에도 제 역할을 하겠다"며 "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과의 갈등설이 사실이 아니라면 '저희 사이좋습니다'라거나, '헛소문'이라고 일축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러나 '만만하지 않다'고 말한 것은 갈등이 실재하고,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현재 권력의 성공에 집착하는 윤 대통령과 미래 권력에 깊숙한 이해관계를 가진 한동훈 위원장은 어느 순간 결별할 수밖에 없는 운명처럼 보인다. 둘 중 하나가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야당은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가
논리적 정당성으로 무장한 대통령의 독선이 외려 개혁을 더디게 만들고, 여당은 지지율에 급급해 자중지란에 빠지고 있다면 의료 개혁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이 대목에서는 야당의 태세가 아쉽다. 이번 총선이 윤석열 정부의 중간평가이며, 정권 심판을 핵심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의료 개혁이라는 국민적 과제에 총선 유불리만을 고려한 평론가적 입장이나 트집 잡기 수준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담화에서 언급한 한국의 의료 현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고, 의료 개혁의 필요성은 의료 현장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역대 어느 정부도 정치적 유불리 셈법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이렇게 방치되어, 지금처럼 절박한 상황까지 온 것"이라는 윤 대통령의 지적은 인정하기 싫더라도 사실이며, 가슴 아프게 새겨야 할 평가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연합 의료개혁특위에서 '민·의·당·정 의료개혁 4자협의체'와 의료개혁 10년 로드맵을 제안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혼란을 조속히 마무리 짓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의사단체 등 갈등 당사자만이 아니라 국민과 정당 등 더 넓은 주체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의대 정원 문제에 가려진 의료 개혁 과제를 점검하는 것도 미룰 수 없다. 의대 증원이 목표대로 되더라도 가뜩이나 연구개발(R&D) 예산이 삭감된 마당에 당장 이공계의 의대 쏠림은 한층 더 강화될 것이고, 확대되는 인원수만큼 공공의료의 공백을 확실하게 채울 수 있을 것인지도 여전히 모호하다. 의도는 정당하고 방향은 옳으나 독선적 방식이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면, 더 잘할 수 있는 대안을 보여줘야 한다.
대안 없는 비판과 묻지마 심판은 환호 뒤에 절망이 뒤따르는 악순환으로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다. 남일 보듯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총선 승리가 목표가 아니라, 승리 뒤의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진정한 전략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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