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2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물론,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여가부가 마뜩지는 않다. 그렇다고 여가부의 실정을 논하는 기사를 쓸 때마다 달리는 댓글 '여가부 폐지'에 찬성하냐 하면 '아니올시다'다. 여가부가 영위하는 '성평등'이라는 관점이, 곧 여가부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가부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폐지를 주장하는 현 정권이 역설적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일례로 최근 논란이 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의 여성 의사들을 향한 성차별적 발언이 그렇다. 박 차관은 지난 20일 브리핑에서 의대 증원 규모 결정의 근거 자료를 설명하면서 "여성 의사 비율의 증가, 남성 의사와 여성 의사의 근로시간 차이까지 집어넣어서 분석했다"라고 말했다. 남성 의사만큼 근로 시간이 길지 않은 여성 의사의 비율이 나날이 느는 것을 고려해 의대 증원 규모를 결정했다는 얘기였다. 이를 두고 여성 의사, 여대 의대 학생회 등의 반발이 빗발쳤다. 급기야는 7개 의대 여의사회와 동창회 등은 박 차관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박 차관의 발언은 그 자체로 여가부 존재의 당위를 증명한다. "애당초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인력으로 간주하지 않은 성차별적인 시각"(이화여대 의대 학생회)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의 그 발언은 남초 직업군에서 여성 종사자들이 마주하던 불합리한 폄훼의 시각을 그대로 갖는 한편, 사회 구조적으로 엄존하는 성차별을 지우는 말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해당 발언은 단순히 "수급추계 방법론에 대한 객관적 사실에 대한 설명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박 차관이 언급한 내용이 들어 있는 논문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인구변화의 노동‧교육‧의료부문 파급효과 전망'에는 여성 의사 인력에 대해 '출산 및 양육 부담에 따라 일시적 또는 영구적 노동시장 이탈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으며, 노동시장 은퇴 시점 및 노동시장 참여율에서 남성 의사와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라고 했다. 또 다른 자료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의료 인력 종합계획 및 중장기 수급추계 연구'에도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다. '여성 의사는 출산이나 육아 때문에 이직이 불가피하거나, 당직·야근이 어려운 상황이 많으므로 이에 대한 지원이 요구됨'.
박 차관의 발언은 이렇듯 여성 의사도 피할 수 없는 한국의 현실, '독박 육아'를 당연한 전제처럼 다룬다. 그는 보건의료 주무부처의 차관으로서 여성 의사가 처한 불평등한 현실을 타개하기보다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성 의사의 증가세를 감안해 의사를 증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사연의 보고서 등에서 여성 의사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시각이다. 이는 한국여성의사회의 성명처럼 "여성 의사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어려움과 도전을 외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성별 간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적 노력에도 역행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숨 쉬듯 살아있는 여성혐오와 이를 조직하는 백래시
이러한 박 차관의 발언은 명백한 여성혐오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작 <백래시 정치>에서 여성혐오와 백래시를 구분해 설명한다. 그는 "여성혐오는 일상적으로 미묘하게, 표식 없는 규율 양식으로 작동하는 구조화된 위계이며, 백래시에 선행한다"고 썼다. 복지부가 말하는 추계 자료 같은 '객관적 사실'은 알고 보면 성차별적 시각에 입각해 있거나, 탈맥락화된 '부조리한 현실'이다. 공기처럼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특이할 것도 없는 여성혐오다.
한편 백래시는 '여성들이 일정 수준의 성취를 이뤘다는 자각에서부터 출발한' 이에 대한 반격이다. 여가부 폐지 주장이 전형적인 백래시에 속한다. 여권의 신장으로 더 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여가부의 존재로 말미암아 남성이 역차별당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이를 없애자는 '반동'이다.
그러나 박 차관의 발언이 증명하듯, 여성혐오가 살아 숨 쉬는 한 여전히 여가부는 필요하다. 윤석열 정권이 만들겠다는 인구부처럼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로 다루지 않고, '여성도 사람'이라는 원론적이면서도 급진적인 개념을 붙들 부처의 존재는 아직도 명확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일하고도 중차대한, '투표할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