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필자는 이제까지 개인사 중심의 인물평전을 써왔는데, 이번에는 우리 역사에서, 비록 주역은 아니지만 말과 글 또는 행적을 통해 새날을 열고, 민중의 벗이 되고, 후대에도 흠모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 인물들을 찾기로 했다. 

이들을 소환한 이유는 그들이 남긴 글·말·행적이 지금에도 가치가 있고 유효하기 때문이다. 생몰의 시대순을 따르지 않고 준비된 인물들을 차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기자말]
우리나라의 첫 소설가는 누구일까? 장르의 특성상 벼갯머리 이야기나 장꾼·술꾼들끼리 즐기는 담소 형태의 '소설'이 숱하게 창작되었지만, 역사적으로 기록된 것은 신라 31대 신문왕 때의 유학자이고 교육가인 설총(薛聰)이 꼽힌다.

설총(681~692)은 원효대사의 아들이다. 정확히는 원효가 파계승이 되었기 때문에 환속하여 소성거사(小姓居士)의 아들로 태어나 신라 10현(十賢)으로 불리는 유학자이다. 그는 많은 글을 짓고 전국 각지에 그가 쓴 비명(碑銘)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화왕계(花王戒)>뿐이다. 가전체소설(假傳體小設)의 원류로 친다.

모란을 꽃 중의 왕이라는 뜻에서 화왕(花王)이라 하고 장미를 아첨하는 미인, 할미꽃을 충간하는 어진 신하로 의인화하는 풍자소설이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때는 임금인 신문왕이 무더운 여름날, 높직하고 화사한 방에서 설총을 돌아보고 말했다.

"오늘은 장마도 개고 훈훈한 바람이 좀은 시원하구나. 맛있는 음식도 구성진 음악도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유익한 얘기나 재미있는 우스갯소리로 울적한 마음을 푸는 것이 좋겠소. 그대는 반드시 기이한 얘기도 들은 것이 있을 터이니 나를 위해 말해보오."

설총이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옛날 화왕(花王:모란꽃)이 처음 올 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향기로운 동산에 심어놓고 푸른 장막으로 둘러 가꾸었더니 봄이 되자 화사하게 꽃이 피어나서 다른 모든 꽃들을 누르고 홀로 뛰어났습니다. 이에 먼 곳이나 가까운 곳에 있는 애틋이 고운 꽃이며 가녀린 어여쁜 꽃들이 다투어 달려와서 뵈오려 하고 혹 빠질까 두려워하는 것이었습니다. 홀연 한 아름다운 미인이 있어 발그레한 얼굴, 구슬 같은 이, 게다가 곱게 단장하고 맵시있는 차림으로 오더니 사뿐히 다가와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눈같이 흰 모래를 밟고 거울처럼 맑은 바다를 보며 봄비에 목욕해서 몸을 깨끗이 하고 맑은 바람을 시원하게 쐬며 한가로이 지내는 터이온데, 이름은 장미라 하옵니다. 임금님의 어진 덕을 듣고 향기로운 장막에서 모실까 하와 왔습니다마는 임금님께서는 저를 받아주실는지요?"

그런데 또 한 장부(丈夫)가 있어 베옷에 가죽띠를 둘렀고 허옇게 센 머리에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휘청휘청 걸어 구부정한 모습으로 와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서울 교외 큰길가에 살고 있으며 아래로는 넓은 들경치를 대하고 위로는 아스라한 산빛을 바라보옵니다. 이름은 백두옹(白頭翁:할미꽃)이라 하옵니다. 생각건대 좌우에서 받드는 것이 비록 흡족해서 고량진미로써 배를 채우고 차와 술로써 정신을 맑게 하며 일용물품이 많이 쌓여 있다 하더라도 모름지기 좋은 약이 있어 기운을 돋워야 하며 극약이 있어 독을 제거해야 되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비록 귀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천한 것을 버리지 말라 하였으며 세상의 모든 군자도 꼭 그 사람이기보다 아쉬워 대신하는 것이라 하였사옵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임금님께서는 의향이 계시온지요?"

옆에 있던 자가 말했습니다.

"둘이 왔으니 누구를 취하고 누구를 버리겠습니까?"

화왕이 대답했습니다.

"장부의 말에 또한 도리가 있는데 미인도 얻기 어려운 것이니 장차 이를 어찌할 것인가."

그러자 장부가 앞으로 나와 말하였습니다.

"저는 임금님께서 총명하시고 사리를 잘 아시는 줄 알고 왔사온데 지금 뵈오니 그렇지 못하옵니다. 무릇 임금님 중에는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멀리 하고 올바르고 곧은 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맹가(孟軻)는 불우하게 일생을 마쳤고 빙당랑(憑唐郞: 한나라 사람) 빙당(憑唐, 중랑서장을 지냈음)도 초야에 묻혀 늙었습니다. 예로부터 이와 같거늘 낸들 어찌하겠습니까."
화왕이 말하였습니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설총의 이야기가 끝나자 신문왕은 심각한 얼굴빛을 지으며 말했다.

"그대의 이야기에 진실로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글로 써서 임금된 자의 경계로 삼도록 하오."(김부식, <삼국사기>)


신문왕은 설총을 발탁해서 높은 벼슬을 주었다고 한다.
 

태그:#겨레의인물100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1천여 조객 참석한 영결식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