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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아이들에겐/ 똑같은 임금 평등한 세상을 물려줘야 합니다/ 이 우주엔 차별이란 별은 없습니다/ 차별은 인간들이 만든/ 쓰레기별입니다 여러분."

진보정치 활동하는 정혜경 시인이 펴낸 시집 <을들의 노래>(사유악부 간)에 실려 있다. 진보당 창원의창지역위원장인 그는 이번에 '을'들의 이야기를 담은 시 58편을 묶어 시집을 냈다.

맨날 투쟁 현장에서 팔뚝질만 하는 '투사'로만 여겨졌던 그가 비정규직·여성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세상의 차별과 억압에 맞서 온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시집이다.

"한국OO전자 라인 비정규직/ 일은 같았고 신분은 달랐다/ 일은 같았고 월급은 절반/ 일은 같았고 한 달에 한번 재계약/ 일은 같았고 5년간 60번의 재계약/ 일은 같았고 끝내는 해고/ 일은 같았는데/ 일은 지금도 같은데." (시 '2002_2006' 전문)
 
 
2002년과 2006년 이야기일 거 같지만 지금도 '그런' 차별이 있다. 비정규직이 5년간 일하면서 60번을 재계약했다고 하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 신분과 임금, 계약기간이 달랐다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시인은 대학 졸업 후 마산자유무역지역 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로, 여성노동조합,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로 살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과 분노, 차별과 아픔을 담담하게 시로 풀어냈다.

"남들은 월급 받을 때/ 우리는 시급// 수당과 밥값을 달라고 하면// 내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적힌다// 마치 흑판에// 오늘 떠든 사람/ 이름 적히듯이// 가을 하늘이 수미터 높아지고/ 코스모스가 하늘거려도// 이제 거창한 꿈은/ 꾸어지지않아// 우리가 꾸는 꿈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고용안정/ 노동조합 할 권리/ 이 세가지다."(시 '일과 꿈' 전문)
 

"거리에서 살고 거리에서 죽겠다는 노숙자의/ 말에 쓴 소주 한 잔 마셨다/ 집이 있는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고/빌린 집이 있는 사람도 집으로 돌아가지만/ 집이 없는 사람은/ 거리가 집이고 거리가 사회이고/ 거리가 국가이다/ 권력자 부자 고위관료/ 그들은 거리로 나오지 않는다/ 거대한 집에서 웃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하지만 언젠가는."(시 '거리' 전문)
 
 
"처음 노조를 만들어 파업 투쟁을 했어요/ 사측은 물량 배달을 직접 하더라구요/충격이었어요/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나온 거리/ 우린 투사니, 이념이니 이런 거 몰라요/ 해맑은 청년들의 눈빛이 분노로 바뀐 것뿐/ 우린 특수고용 노동자/ 근로기준법에 없는 노동자/ 노동절에도 일합니다."(시 '택배노동자' 전문)

다소 직설적인 표현들이 있어서 그런지 그만큼 '을'들의 이야기가 더 가슴에 와닿는다. 시를 읽으면 학교 다닐 때 떠들어 한번이라도 이름이 칠판에 적혀 본 사람이라면 노동 현장의 블랙리스트를, 택배노동자가 모든 노동자를 위한 날인 세계노동절에도 일해야 하는 처지를 알 것 같다.

그런데 세상은 어둡기만 한 게 아니라 꽃처럼 환한 웃음을 주기도 하는 일도 있다. 시인은 "세상에 이런 분도 있더라"라고 소개했다.

"카페가 아니라 빵집에서 만나자고 하더라/ 마침 빵 살 일이 있다고// 계약서와 빵과 우유를 테이블에 놓고/ 갑인 회사 대표가 을인 나에게 이렇게 말하더라// 갑과을 대신에 동과 행을 쓰는 게 어떻겠느냐고// 세상에는 이런 분도 있더라// 창밖 그때까지 안 보이던 벚꽃들이/ 내게 다가와 꽃을 펑펑 터뜨리더라."(시 '갑을과 동행' 전문)
 
 
정혜경 시인은 "을들이 사는 삶의 이야기들이 세상에 울러 퍼져나갔으면 좋겠다"며 "시도 특출한 정치인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것이 상식인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박관서 시인은 추천사에서 "시집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차별과 억압으로 얼룩진 우리의 현실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며 "노동시가 탄생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경상국립대 법대를 나온 정혜경 시인은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남지부에서 일하며 창원주민대회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오는 12월 13일 창원에서 <을들의 노래> 시집 출판기념회를 연다.
 
정혜경 시인 시집 <을들의 노래>.
 정혜경 시인 시집 <을들의 노래>.
ⓒ 사유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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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들의 노래

정혜경 (지은이), 사유악부(2023)


태그:#을, #정혜경, #을들의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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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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