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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문화해설사 설명을 듣고 있다.
 창경궁 문화해설사 설명을 듣고 있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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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은 고등학교 동창들과 '고궁 가는 날', 등산보다는 한적한 고궁을 걷기로 하고 분기별로 약속한 날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레 체력 부담이 적은 모임을 선호하고 있다.  

오전 11시, 창경궁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고궁에서 한참을 보냈다. 한 친구는 "해설사 말에 이렇게 열심히 귀 기울였으면 진작에 역사선생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라 농쳤다. 또 한 친구는 "고궁은 소풍 때나 가는 곳으로 지겨웠는데 이제와 친근한 곳이 될 줄은 이해불가"라며 창경궁을 예찬했다. 차 한 잔을 곁들이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갑작스러운 자리 양보

그런데 이날 고궁 산책보다는 함께 경험한 두 장면이 더 기억에 남았다. 그 하나는 약속 장소인 창경궁으로 가던 중 지하철 2호선을 환승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일요일 오전이지만 지하철 파업이 예고되고 배차가 늦어지면서 차량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차량에 올라타 다소 비좁은 입구 근처의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데, 한 여성이 자기 자리에 앉으라며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사양하기도 전에 나는 그만 덜컥 자리에 앉히고 말았다. 얼떨결에 감사하다는 말도 잊었다. 나는 속으로 여성이 왜 내게 자리를 양보해 주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사양하기도 전에 나는 그만 덜컥 자리에 앉히고 말았다.
 사양하기도 전에 나는 그만 덜컥 자리에 앉히고 말았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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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서 있던 그 여성은 얼마 후 자리가 나자 내 옆에 앉았다. 나는 그때 비로소 그녀에게 정식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가볍게 목례로 답한 중년의 그녀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 독서 모드에 돌입했다. 이것이 자리 양보 1탄이다.   

2탄은 고궁 관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발생했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50세 전후로 보이는 여성이 내게 자리를 양보하고는 버스 뒷자리로 서둘러 이동했다. 이번에도 사양할 틈도 없이 자리에 앉고 말았다. 처음과 달리 이번엔 그 여성에게 감사인사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모두가 자기 일에 바쁘고 남을 배려하는 것에 인색한데, 하루에 두 번이나 기습적으로(?) 자리를 양보받다니.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니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두 번 겪은 모양이었다.
     
대부분 70대인 내 친구들에 물어보니, 누군가 자리를 양보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는가 하면 아예 처음부터 사양하기도 한단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민폐를 주지 않으려고 스스로 노력한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한 친구는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지하철을 탄 부부가 나에게 자리를 양보하더라"며 "그런 깍듯한 예절을 오랜만에 접했다"라고 말했다. 지하철에서 젊은 외국인이 자신에게 친절하게 자리를 양보한 것이 두고두고 생각난다는 친구도 있다. 그는 "그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우리 예절을 따로 배우고 익혔을 것"으로 추측했다. 
   
반면 또 다른 친구는 "자기보다 나이 든 사람이나 연로한 노인을 배려하는 문화가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면서 "자리 양보는 애당초 기대하지도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노인 공경 예절을 배우고 자란다. 어딜 가나 노인들에게 인사부터하고, 먼저 자리를 비워주거나 건강하라는 말까지 덧붙여 존대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예상치 못한 배려에 크게 감동한 것도 과거의 향수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인을 보면 머리를 숙이고 기피하는 일부 젊은이들이 가끔 논란이 되기도 하지만, 이를 두고 무조건 버릇없다고 치부하는 것도 잘못이다.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아르바이트나 고된 노동 등 그만한 사정과 연유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지하철에서 실감하는 고령화 사회 

60세가 넘어가면서 부지불식간 사람들로부터 자리를 양보받을 때마다 나는 늘 어색하고 쑥스럽다. 지하철에서 간혹 나이를 앞세워 자리 다툼하는 노인들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요즘 70세 전후 '베이비부머'들은 과거처럼 자리에 연연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만큼 건강하다는 뜻이다. 전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내 친구들은 대부분 지하철 '노약자석'을 멀리 하고 있다. 설령 자리가 나더라도 주위를 살피면서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편이다. 아직은 체력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그날 나는 허리와 어깨를 다시 곧추세우고 몇 번이나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러나 슬프게도, 아무리 애써도 남들은 나를 분명 노인이라고 판단한 게 틀림없다. 나는 기쁘면서도 어딘가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70세 밖에(?) 안 된 내가 자리를 양보 받을 정도의 노인으로 보인 건 아니었나 싶어서 말이다.

한국이 고령화 사회로 간다는데, 나는 이 빠른 고령화 속도를 특히 지하철에서 실감한다. 내후년이면 우리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1000만 명을 돌파하는 '초고령사회'를 맞는다고 들었다. 

귀가해서 그날 겪은 상황을 아내에게 전하니 아내는 답은 내 머리에 있다고 단언했다. 모자를 쓰고 젊은 척 해도 삐져나온 흰머리는 속일 수 없다며, 그걸 보고 사람들이 내게 자리를 양보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아내는 당장 내일부터 머리를 검은 머리로 염색하라고 충고했다. 아내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동안은 흰머리를 애써 무시했는데 고민 끝에 예전처럼 다시 염색해볼 작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자리양보, #지하철경로석, #연로자석, #자리배려, #초고령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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