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곳곳에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는 메시지와 국화가 놓여있다.
연합뉴스
참사가 벌어진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서, 우리 사회에서는 마음 아픈 일들이 많이도 일어났다. 최근에는 두 명의 꽃다운 젊은이를 잃는 일이 있었다. 한명은 자신이 일하던 초등학교에서, 한명은 자신의 군복무 중에. '한국사회의 고질병'인가 싶어 가슴을 툭툭 쳤다.
이태원 참사와 이름만 다를 뿐, 모두 같은 사건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안전불감증 사회가 만든 안전에 대한 무지함, 그런 무지함을 가진 자들이 지도층이라는 사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진심으로 알지 못하는 극한 이기주의와 엘리트주의, 무엇이든 덮고 보면 좋을 것이라는 착각, 그리고 그것이 아이들을 위한 방패라고 생각하는 위선, 신중함과 중립이라고 둘러대는 오만과 편견과 아집, 아이들을 위한다는 핑계, 사회 전체를 위한다는 핑계 삼아 애도를 막고, 슬픔을 거부하는 것.
그리고 누구 하나 뚜렷하게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함. 여기에 아이를 위하고 사회를 위한 마음은 없다. 그저 보기 불편해서 덮어버리고 싶어하는 마음들만 있을뿐.
세상은 참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느낄 뿐인 현시점에서, 생존자로서 감정이 다 말라버렸다고, 분노할 여력도 없었노라고. 사실은 기대도 안 했다고 말한다면 너무 자조적일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죽어야만 보이는 비상식에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여전히 '나는 잘못한 게 없다' 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태반일 터.
그럼에도 내가 왜 또 글을 쓰며 나서는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나는 현재에 대한 기대는 없어도, 미래에 대한 믿음만은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이 세상이 비상식이기에 지금은 비상식적인 결과와 무책임이 난무하지만 먼 훗날에도 같은 모습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아이들이 제일 무섭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아무것도 책임 안 져도 되던데요?' 하고 과거의 비상식을 그대로 학습해 미래에 비상식의 어른이 될까 봐, 그것이 무섭다. 학습은 힘이 세다. 특히 악한 학습은 강하고, 전염력마저 높다.
당장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생각은 애초에 없지만, 적어도 아이들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비상식이라는 것쯤은 지속적으로 말해줄 누군가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래야 먼 미래에 당도해서는 조금 다른 세상을 구경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힐스버러 압사 사고, 그리고 이태원 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