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사회부총리와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학교 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유성호
사전 설명을 해야겠다. 대통령이 콕 집어 이야기한 '비문학'을 가르친 국어 강사였기에 좀 더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겠다.
대통령이 없어져야 한다고 얘기한 '킬러문항'이란 무엇인가. 정체를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대통령 말을 빌자면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아예 다루지 않는 비문학 국어 문제" 같은 걸 말한다.
우선 비문학은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버젓이 다루고 있다. 고2 국어 교과에는 '독서'가 편성되어 있고, 대부분의 고2 학생들은 학교에서 비문학을 학습한다. 고1 국어에서도 모든 교과서는 일정한 비문학 지문을 다루고 있다.
아마 대통령은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소재'를 썼다는 사실을 언급한 듯하다. 내가 당장 수업했던 비문학 지문들의 주제만 해도 '신채호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개념', '환율의 오버슈팅', '브레턴우즈 체제', '양자역학', '바로크 음악의 특징' 등 인문·사회·과학·기술·예술을 넘나든다. 이런 것들은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비문학에서 다룰 수 있는 모든 소재를 교과서를 통해 대비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소재를 가지고 문제를 낼 수 있는 게 애초에 비문학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비문학은 본래 선행지식 없이 문제를 푸는 것이다. 모르는 내용이 나와도 글의 논리를 추론하여 답을 찾아내라는 것이 비문학에서 요구하는 '비판적 독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은행 직원보다 경제를 잘 알고 과학 선생님들보다 과학을 잘 알아서 '오버슈팅(overshooting)'이나 '양자역학' 지문을 읽고 수업했을 리 없다. 낯선 내용의 글이어도 정보를 파악하는 '독해'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능력을 학생들에게 배양하고자 비문학이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오히려 '모르는 내용'의 소재가 나와야 독해 능력 자체를 시험해 보기 더 용이하다. 만약 교과서에서 다룬 소재만을 가지고 문제를 내게 된다면 수능은 '비판적 독해 능력' 시험이 아니라 그냥 교과서 암기용 시험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물론 현행 수능엔 문제가 많다. 특히 수능 '인플레'가 너무 심해졌다. 영어가 절대평가로 빠지고 탐구 영역은 만점 싸움이 되면서, 사실상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과목이 국어, 수학만 남았다. 수학 난도를 더 올리기엔 문제가 많으니 국어 난도가 아득히 올라갔다. 소위 '불수능'을 넘어 '마그마 수능'이라 불렸던 2019년 수능 국어 만점자의 표준점수는 150점이었다. 수능이 만들어진 이래로 학생들의 국어 점수가 가장 낮았던 시험이었다.
이를 부추긴 건 다름 아닌 '정시 강화' 정책이었다. 입시에서 수능의 영향력을 높일수록 변별력 확보를 위해 시험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킬러문항' 출제는 필수 불가결하다. 그러나 나는 똑똑히 기억하는데, 정시 강화를 추진한 건 문재인 정부였지만 조국 사태 이후 '입시 불공정' 논란이 일어나면서 정시 강화, 심지어 수능 100%로 입시를 바꿔야 한다고 독촉한 건 바로 현 정부·여당의 정치인들이었다.
모두 예견된 것이다. 내가 사교육에 종사했던 바로 그 시점에 정확히 학생들에게 주문했던 것이 바로 '킬러문항 대비'였다. 학교 내신 공부에 매진했던 학생들이 수능 대비 학원으로 쏠리게 된 것도 바로 그때였다. 정시 강화를 외쳤던 자들은 이리될 줄 몰랐단 말인가. 그때는 여론에 조응해 '정시 강화', '공정 수능' 따위를 목 놓아 부르짖던 자들이 이제 와서 '킬러문항 삭제', '이권 카르텔'을 운운하고 있으니, 나로선 '바보이거나 사기꾼, 둘 중에 하나'라고밖에 얘기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사기꾼'이라는 것에 조금 더 무게를 싣고 있는 중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뜨거운 아이스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