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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6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강만길 상지대 총장.
 2003년 6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강만길 상지대 총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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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2023년 6월 23일, 쌓인 일을 준비하고자 인터넷 창을 열었다. 이런 저런 기사를 훑어보다가 하나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고 이내 먹먹해졌다. 

근현대사 연구 '대표적 진보 역사학자' 강만길 교수 별세
'분단시대' 화두 던진 역사학자 강만길 별세


고개를 들어 고 강민길 교수가 걸어온 길을 떠올리며 그의 안식을 빌었다. 군부 독재를 비판한 지식인, 상지대 총장으로 학원 민주화에 앞장섰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으로 역사 바로세우기에 혼신을 다한 사학자. 무엇보다 강 교수는 내게 큰 가르침을 줬었던 은사였다. 

[첫 번째 만남] 유일한 다른 학과 학생... 이름을 불러주다

1967년 그해, 난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 학생이었다. 1학기 수강신청을 앞두고 관심이 많았던 사학과 강의를 듣고 싶어 강만길 교수의 '사적해제'란 강좌를 수강신청했다. 

'사적해제' 강좌는 사학과 학생의 필수전공으로 타과 학생들에게는 재미없는 매우 따분한 과목이다. 첫 강의가 끝나자 강 교수는 교무수첩을 보며 굳이 내 이름을 불렀다. 사학과 전공과목에 유일한 타과 학생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호명의 의미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나 수강신청을 취소해도 좋다는, 온통 강의 내용이 한문투성이로 학점이 짤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경고요, 좋게 말하면 수강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그런데 나는 이미 신청한 강좌를 철회할 의사는 없었다. 끝까지 "교수님 강의를 듣겠다"고 답한 기억이다. 강의실 칠판은 한글 한 자 볼 수 없었던 광개토대왕 비문 등 삼국·고려시대의 이야기가 빼곡히 들어찼다. 무척 어려웠던 전공교과였다. 꼿꼿한 자세로 강의하던 교수님의 모습, 유일한 타과 학생에게 시선을 주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때 강 교수님의 나이가 30대였다.

[두 번째 만남] "역사 이야기는 쉬워야 한다"는 가르침
 
 청산리 전적 나무비. 2023년 현재 이 나무비는 다시는 볼 수 없다.
 청산리 전적 나무비. 2023년 현재 이 나무비는 다시는 볼 수 없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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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2000년 여름. 당시 나는 책 <민족 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우리문학사, 현재 항일유적답사기)를 펴낼 때였다. 1999년 임시정부 초대국무령 석주 이상룡의 후손 이항증과 일송 김동삼의 후손 김중생의 알뜰한 지도를 받으며 경북 안동지방의 혁신 유림들의 중국대륙 항일 발자취를 더듬은 결과물이 담긴 책이었다. 

출판사는 무명의 학자가 쓴 역사 이야기가 여러모로 마음에 쓰였는지 유명 교수의 추천사를 앞에 붙이면 좋겠다고 했다. 30여 년 전에 강의실에서 뵀던 강만길 교수님을 찾아뵀다. 당시 강 교수님은 정년퇴임 하신 뒤 학교 부근에 '黎史書室(여사서실)'이란 연구실을 마련해 두고 계셨다. 참고로 강 교수님의 호가 '여사'다. 

내가 방문한 연유를 말씀 드리자 교수님은 "원고를 두고 가라"고 하셨다. 며칠 뒤 출판사에 강 교수님의 추천사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1990년대 들어와서 중국이 우리에게 열리게 됨으로써 현장을 답사하고 또 중국 쪽 자료를 이용한, 그리고 좌우익 운동을 함께 다룬 옳은 의미의 민족해방운동사가 연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은 본격적인 민족해방운동사 연구가 시작된 지 아직 일천하기 때문에 박사학위 논문을 중심으로 한 연구서들이 다소 있을 뿐, 지식인 일반이나 특히 학생들이 쉽게 읽을 만한 책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야담이나 사화가 아닌 역사를 이야기처럼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논문만을 써오던 연구자들에게서 그것을 기대하기란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미 장편소설을 비롯해서 여러 권의 책을 낸 바 있는 작가 박도씨가 중국 동삼성을 포함한 여러 지방에 산재해 있는 우리 독립운동 현장을 두루 답사한 후, 여행기이면서 또 쉽게 쓴 독립운동사라 할 수 있는 내용으로 한 권의 책을 엮었다.

박도씨는 1960년대 내 강의를 들었던 인연으로 한 마디 보태줄 것을 청했다. 그의 재학 시절은 나도 30대 신출내기 선생이라 얼마나 괜찮은 강의를 했는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그 때의 수강이 혹시 이 같은 책을 쓰게 된 동기의 일부라도 되었다면 나로서는 분외의 다행이 아닐 수 없다.(하략)" - 강만길 '여행기로 엮은 민족해방 운동사' 박도 지음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 5~6쪽

 
 
강 교수님의 추천사 덕분인지 그 책은 쇄를 거듭했고, 2000년 대에는 청소년 추천도서로도 선정됐다. 이즈음엔 <항일유적답사기>라는 제목으로 시판되고 있다.

[세 번째 만남] 감사합니다 인사에... "내가 뭘 했다고?"
 
 압록강 다리.
 압록강 다리.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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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3일. 서울 여의동 63빌딩 메인 홀에서 이희호 자서전 <동행>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강원 산골에서 주경야독하는 서생 및 반거들충이 농사꾼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이희호 여사가 굳이 초대해 주셨다. 

그날 행사장에 마련된 자리에 앉고보니 내 자리는 헤드테이블 바로 옆자리 가족석이었다. 바로 옆자리는 대통령 내외분을 비롯한 VIP석으로 주로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 당시 수행원으로 평양에 동행했던 인사들이 앉았다. 강만길, 고은, 백낙청, 장상 등 낯익은 분들이 계셨다. 

나는 일어나 옆자리로 가서 강만길 교수님께 고개 깊이 숙이면서 인사를 드렸다.

"박 선생, 자네 항일 기사들 잘 읽고 있어요. 일찍이 내가 바라던 바요. 역사는 문학가들이 써야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지요."

당시 나는 <오마이뉴스>에 중국대륙에 흩어진 '항일유적답사기', 그리고 호남의병 전적답사기 '누가 이 나라를 지켰을까', 북한 답사기 '내 조국 북녘 산하를 가다' 등을 연재했다. 곧 이어 안중근 의사 마지막 행장기 '영웅 안중근' 연재를 기획하던 중이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내가 뭘 했다고?"
"스승 없는 제자는 없습니다."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써라

돌이켜 보면 내가 <오마이뉴스>에 1000여 꼭지 이상의 현대사 관련 기사를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역사를 이야기처럼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강 교수의 가르침과 또 한 분의 스승님인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님 덕분이다. 이오덕 선생님은 뵐 때마다 내게 "글은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쉽게 써야 한다, 좋은 글은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는 글이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다.

두 스승이 떠나버린 지금, 나는 키보드 앞에서 조용히 묵상한다. 사람은 저마다 제 잘난 맛에 살 테다. 하지만 그에게는 낳아주신 부모님, 무지한 제자를 가르친 스승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우친다.

태그:#강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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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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