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15 20:40최종 업데이트 23.06.1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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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 가운데 신체적 폭력은 9%(복수 답변 포함) 정도다. 언어 폭력이 42%, 집단 따돌림이 15%를 차지했다. 스토킹과 사이버 폭력도 각각 13%, 6%였다. 피해학생이 죽을 정도로 괴로워 했다던 정순신 아들 사건 때도 신체적 폭력은 없었다.

법무법인 경 정연순 변호사가 "학교폭력이란 말이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고 했던 건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학생들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갈등과 다툼을 모두 폭력이라고 규정하면서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고 보기 때문이다.


<슬로우뉴스>가 만난 고등학교 2학년 학생 김현지(가명)에게 학교폭력은 물리적 폭력이라기보다는 학교집단에서 친구 또래집단에서 혼자만 외톨이로 배제되는 경험이었다. 다수와 맞서는 혼자만의 '힘의 불균형' 상황에서 날마다 반복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고통은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폭력이나 상해보다 결코 작은 고통이 아니었다.  

노르웨이의 교육 심리학자 단 올베우스는 '괴롭힘'의 세 가지 요건을 첫째, 힘의 불균형이 있어야 하고, 둘째, 의도적이어야 하고, 셋째, 지속적이고 반복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학생이 겪고 있는 고통은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만 현행 학폭위 시스템에서는 처벌도 보호도 할 수 없다. 애초에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구분도 모호하다. 한국 사회에서 학폭의 범주나 대책이 근본적으로 잘못 설정돼 있다는 이야기다.

인터뷰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피해학생이 극도의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교사와 보호자 등 어른은 이 상황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래서 여기에 별로 대응하지 않는다고 피해학생이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에 따라가려는 경향이 있고 모두가 다수의 편에 서려고 하기 때문에 고립을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학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지만 "내 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당하지 않고 싸웠을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김현지 학생과 인터뷰는 전화로 진행했다.
 

"더 글로리요? 글쎄요. 우리(고2)한테는 별 타격감 없는데요?" ⓒ 게티이미지

 
"<더 글로리>요?

그냥 너무 드라마, 친구들도 다 그렇게 생각해요. 드라마 속 상황이 애초에 실제 일어날 수가 없는 게, 체육관 문 열어주는 학교가 어딨어요? 드라마적 허용이었던 것 같아요. 너무 비현실적이죠. 있더라도 전국에서 한두 건 있는 그런 사건인 것 같아요. 어른들이 그거 보고 충격을 많이 받은 건 알지만, 애들한테는 별 타격감 없어요.

드라마도 나오고 뉴스에도 많이 나오니까 학교폭력이란 말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그런 걸 볼 때마다 마음에 와닿지 않은 거예요. 왜 그런가 했더니 실제 학교에서 그런 일이 아예 안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만, 사람들이 학교폭력을 너무 심한 수위로 생각하고 있는 거구나, 이런 생각이 좀 들었고요.

사람들이 학교 폭력을 그런 정도로 이해하니까 진짜 실제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교폭력이 그러니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충분히 학교폭력이고, 힘들어할 만한데 주위(어른들)에서는 학교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해요."

현재 진행중인 따돌림 당한 경험

- 혹시, 따돌림당해 본 적 있어요?

"직접 당해본 적도 있고 친구 경험을 듣기도 하고. 원래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있었는데요. 제가 좀 바쁘고 남자친구도 생기고 하다 보니까 (친구들에게) 좀 소홀해졌어요. 친구들이 서운하게 생각할 수는 있겠다 싶었는데 친구들이 어느 순간 저를 빼고 놀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기회를 만들어서 이야기 하다가 내가 미안했다고 사과하면서 화해를 했었어요."

- 그럼 해결됐나요.

"아니요. 저는 친구들이 내가 미안하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친구들은 '쟤가 학생회 임원되더니 우리를 무시한다', 이런 식으로 받아들인 거예요. 그래서 저만 혼자 놔두고, 애들끼리 놀러 가고 이렇게 된 거죠. 자기들이 단체 채팅하는 방도 따로 만들고요. 그래서 지금은 서로 말 안 하고 서로 남남이예요."

- 어떤 게 힘들었어요?

"그 친구들의 친구들이랑 제 친구들이랑 겹치니까. 그 친구가 제 다른 친구들한테 제 말을 하고 다녀서 좀 무서웠죠. 왜냐하면 이야기가 어떻게 와전돼서 친구들한테 전달됐는지도 모르고 몇 명이나 알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어떤 사람한테 말을 걸어야 될지도 모르겠고요."

- 위클래스 선생님께 얘기해 봤나요?

"이야기해서 뭐가 달라지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뭔가 공감이나 이런 건 받을 수 있어도 거기서 실질적으로 제공해주는 뭔가가 공론화가 되지 않으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요. 비밀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비밀 보장이 된 적이 한 번도 없고, 여기에서 한 번 이야기하면 학교 전체에 소문이 난다는 소문도 너무 많이 들어서요."

- 위클래스 상담은 비밀보장 된 적이 없어요?

"네. 몰라야 되는데 위클래스 가는 시간을 수업시간에 빼서 쓰거든요. 학생이 교실에 없으면 선생님은 '얘 어디 갔느냐'고 물어보시는데, 애들은 대답을 해줘야 되니까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가정 문제 때문에 상담했는데 그걸 담임 선생님한테 말해서 담임 선생님이 다시 또 집에 전화해서 이야기하는 바람에 문제가 커졌다, 이런 얘기를 전해 들었었거든요. 또 어떤 여자애가 어떤 친구랑 불편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그게 또 선생님 귀에 들어가면서 그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이랑 이야기하고, 그런데 교무실에 학생들도 왔다갔다 하다 보니까 그걸 지나다니는 학생이 또 들은 거에요. 그렇게 또 학교 전체에도 소문나고 이렇게 됐죠."

- 위클래스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건가요…

"애들이 진짜 최후의 수단으로 찾아가는 것 같기는 한데요. 이도저도 안 될 때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은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선뜻 나서서 '위클래스부터 가보자' 이런 생각은 안 하고요.

왜냐하면 위클래스에 관한 인식 자체가 좋지 않아요. 제가 여자중학교를 나왔는데 여학교에서는 그게 진짜 심해서 위클래스를 갔다 오면 문제 있는 아이 취급받았어요. 그래서 저는 차라리 상담을 받고 싶으면 그냥 외부 청소년 상담기관이 많으니까 그런 걸 이용해볼까 하는 생각을 한두 번 해봤고요."
 

위클래스 상담이요? 비밀보장도 안 되고요. 거기 가면 오히려 문제 있는 아이 취급받아요. ⓒ 게티이미지

 
- 따돌림, 기분은 어땠나요?

"아직 진행형이지만 뭔가 우울한 것도 심하고요. 애들 관계에만 신경을 쏟을 수가 없어서 그냥 지금은 애써 신경 안 쓰고, '일단 할 일 먼저 하자, 시간에 맡기자'는 느낌으로 있고요. 근데 우울하거나 한 느낌 때문에 공부에 차질이 있는 건 좀 있어요. 틀어진 친구들이랑 겹치는 게 하도 많아서요. 일부러 학원에 자꾸 빠지고 그냥 보강하는 날 혼자 가고 이렇게 하거든요. 왜냐하면 만나기 싫으니까."

- 이런 것도 폭력이라고 느끼나요?

"친구 관계에서 팽당해버린 사람은 어디에 가서 붙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완전 혼자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어른은 혼자가 되더라도 자기 혼자할 수 있는 영역이 많으니까. 차라리 어른처럼 혼자 여행 다니고 혼자 학교 자퇴해버리고 그렇게 하기는 어려우니까요. 내가 이 친구들한테 버림받으면 도대체 누구한테 도움을 받아야 되나 막막한 것 때문에 그게 좀 힘든 것 같아요."

- 상대방은 많고, 나는 혼자?

"맞아요. 내 편이 한 명이라도 있는 거 하고, 혼자만 있는 건 느낌이 진짜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저도 혼자였어요."

- 내 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당하지 않고 싸웠을 것 같아요. 애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좀 있고 하다 보니까 억울했거든요. 근데 먼저 말하기를 포기한 이유는 그냥 제가 뭔가를 말한다고 해서 애들이 굳이 곧대로 예쁘게 들어줄 것 같지도 않고, 그리고 뭔가 애들한테 붙잡고 '제발 내 이야기 좀 들어줘' 할 정도로 걔네와의 관계가 너무 간절하고 얘네랑 친구 못하면 죽을 것 같고 이런 느낌은 아니어서 그냥 때가 되면 풀리게 놔두자는 마인드였어요."
 

내 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당하지 않고 싸웠을 것 같아요. ⓒ 게티이미지

 
- 따돌림을 주도한 친구는 누구였어요.

"분위기를 만드는 친구가 있어요. 걔가 저랑 되게 친했어요. 라이벌이었던 것 같아요. 너무 비슷한 것도 많고,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이기고 싶어 하는 느낌을 느꼈죠. 저 혼자 생각했을 때는 서로가 서로를 좀 닮고 싶어 했어요. 저도 제가 생각하는 그 친구의 강점이 있었고, 그 친구도 그 친구가 생각하는 저의 강점이 있었는데 서로 넌 대단해, 이렇게 인정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조금 더 잘해서 쟤보다 좀 잘나고 싶다는 생각이 서로한테 있었거든요.

근데 그러니까 그런 마음이 있다는 걸 서로가 조금은 알아서 가끔 진짜 속 터놓고 얘기하는 날은 그런 마음까지도 이야기할 때도 있었거든요. 근데 일상생활하다 보면 둘이 있는 날보다는 다른 친구들하고 섞여 있는 경우가 더 많다 보니까 그럴 때는 서로 그냥 이기고 싶어 했던 거 같아요."

- 화해하려고 시도해 봤습니까?

"전화할 수 있냐고 카톡을 보냈었는데 읽고 씹길래(무시하길래) 그냥 아직 생각이 없나 보다 하고 그냥 기다리고 있어요. 평소 같았으면 다음날 학교에 가서 물어보거나 할 텐데 어색한 사이가 되다 보니까 용기가 안 났던 거죠. 그냥 그 친구가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따돌림 가해자 무리에 속했던 경험

- 다른 친구 왕따시켜본 적도 있다고 했죠?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저에 대한 뒷담(화)을 까고 다녀서 제가 알게 됐어요. 그래서 쟤가 내 이야기를 뒤에서 이렇게저렇게 하고 다녔다더라고 말했더니 친구들이 공감해주면서 쟤는 중학교 때부터 저랬다, 막 이렇게 하고 그러다가 이제 속된 말로 안 좋은 나쁜 친구로 이렇게 돼버려서요. 나중에는 남자를 엄청 밝힌다더라, 이런 이야기까지 하면서. 그 아이가 왕따가 됐죠. 그러다가 또 학기 중반쯤 다 가서 화해했어요."

- 나를 위해 왕따에 가담했던 친구들이 이젠 나를 왕따시키는 상황이네요?

"네, 맞아요. 일단 뒤에서 분위기를 다 만들어 놔요. 그러니까 수업 끝나고 화장실에 다 같이 모여요. 화장실에서 '저 년이 내 얘기를 이렇게 저렇게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잡아요. '그 X 미친 거 아니야? 왜 있지도 않은 얘기로 내 뒷담을 까고 다녀?' 이렇게 얘기하다가 종이 쳐서 다시 수업을 듣고 오면 그 친구에 대해 화나는 감정이 있는 채로 수업을 듣고 다시 또 모였을 때는 또 새로운 얘기가 또 나와요. '근데 걔 사실 중학교 때부터 이상했어.' 이런 식으로요. 그걸 다 아니까 더 힘든 거죠. 얘들이 이제 나한테 이러는구나."

- 가해자 그룹과 피해자 그룹이 구별되나요?

"보통 '인싸(이 글에선 인기 있는 학생)' 친구들이 가해자가 되고, '아싸(이 글에선 인기 없는 학생)'인 친구들이 피해자가 되는데, 인싸가 되려면 공부를 잘하거나 예쁘거나 잘생겼거나 돈이 많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학교 선생님들 입장에서 되게 모범생이었던 친구들이 가해자인 경우가 종종 있어요.

왜냐하면 애초에 아싸는 (다른 아이들을) 왕따시킬 수 있는 조건이 안 돼요. 부모님이 두 분이 다 계시고, 어느 정도 살고, 친구들이랑 나가서 같이 밥 먹고 외식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데 어려움 없고, 학원도 어느 정도 다니고, 거기에 맞는 학업 수준 성취도 어느 정도 하고… 이런 친구들이 아니면 대부분 다 공격 대상이 될 수 있어요. 애들이 보통에 따라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까… 보통에서 조금만 멀어지면 이상한 애로 취급을 하거든요."
 

공격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보통은 되어야 해요. ⓒ 게티이미지

 
- 이런 문제가 있을 때 주변에서 나서서 함께 처리하는 게 좋아요, 아니면 조용히 나 혼자 처리하는 게 좋아요?

"개인적으로는 그냥 따로 조용하게 처리하는 쪽이 좋은 것 같아요. 이런 게 알려져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어서요. 왜냐하면 '쟤랑 쟤랑 뭐 있었잖아', 이런 얘기 들으면 그 후에 친구 사귈 때 어렵기만 하고 좋은 게 없어요. 도와주려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는데 이런 문제가 공론화되면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죠."

- 결국 힘이 센 쪽으로 붙는 건가요?

"네. 완전히 그렇죠. 어쨌든 힘 센 쪽에 붙고, 분위기에 휩쓸리게 되고요. 누군가가 요즘 평판이 안 좋으면 떠서 다른 쪽으로 붙었다가 다시 또 얘가 뭐 잘못됐다는 식으로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또 반대쪽 와서 붙었다가… 어른들보다도 힘의 논리에 취약한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자기가 이 무리에서 떨어지면 다음 대책이 생각나지 않으니까요. 어떻게 해서든지 붙어 있으려고 하고, 자기가 주관이 있고 소신이 있더라도 그 소신보다 힘이 먼저고, 집단의 분위기가 먼저인 것 같아요."

- 학폭 결과를 입시에 반영하면 서로 좀 조심하게 될까요?

"그럴 것 같지는 않아요, 솔직히. 왜냐하면 학교폭력 사건을 만들지 않으려고 학교에서 접거든요. 중학교 때 저희 학교 친구들끼리 심한 패싸움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학교 차원에서 막아가지고 그냥 너네끼리 화해하고 끝내라 이런 식으로 없던 걸로 했던 경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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