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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도 중순이 넘어 가고 봄은 곧 지나갈 것이다. 5월은 계절에 여왕이란 말 답게 모든 생물들이 초록의 옷으로 갈아입고 자신을 맘껏 뽐내고 있다. 눈을 돌려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초록의 물결이다. 어느 날 초록의 이파리들 속에 아카시 꽃이 피어난다. 아카시 꽃이 필 때면 어김없이 뻐꾸기 울음을 들을 수 있고  뻐꾸기 울음소리가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아련한 추억을 깨워 준다.

보리밭 이랑으로 할머니와 함께 걷던 5월의 시골길. 할머니 돌아가신 지 몇 년인가, 기억조차 가물 가물하다. 언제나 뻐꾸기가 울고 아카시 꽃이 피면 내 감성의 기억들은 옛날 그 추억의 장소로 달려간다. 나는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뻐꾸기 울음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아련해지며 할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며칠 전부터 공원 산책을 할 때마다 아카시 꽃을 눈여겨보았다. 오늘이 알맞을까, 내일이면 어떨까? 혼자서 아카시 나무들을 바라보며 꽃 피울 날을 기다렸다. 세상 모든 만물이 정점이 있듯 아카시 꽃도 가장 예쁘고 가장 싱싱한 때가 있다. 꽃이 활짝 피면 하루 며칠 순간이지 꽃 향기와 싱그러움이 줄어든다. 더 때가 늦으면 꽃 색깔도 변하여 아이보리 색이 될 때는 꽃의 생명력은 다 한 것이다.

그때는 이미 아카시 꽃으로 싱싱함이 없어지고 떡을 찌기도 알맞은 상태가 아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말이 맞다. 아카시 꽃도 때가 되면 떨어져 길 위에 소복소복 쌓여 시들고 소멸한다. 시들어 떨어진 꽃을 볼 때면 우리 사람 살아가는 과정과 닮아 마음이 숙연해 온다.
 
꽃을 따다가 잎과 꽃을 분류한다.
▲ 잎과 분류해 다듬어 놓은 꽃 꽃을 따다가 잎과 꽃을 분류한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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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과 분류해 다듬어 놓은 꽃
▲ 다듬어 놓은 꽃 잎과 분류해 다듬어 놓은 꽃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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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늙으면 예쁜 모습이 사라지고 모든 꽃들도 마찬가지다. 꽃도 막 피어날 때와 질 때가 다르다. 예쁘지만 꽃이 질 때는 그 모습이 다르다. 아카시 꽃도 활짝 피기 전 조롱조롱 꽃 모양이 아기 버선과 닮을 때가 제일 싱그럽고 예쁘다.

꽃은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청정한 곳에서 따야 한다. 혹시 길거리나 차가 많이 다니는 길에 있는 나무라면 매연 때문에 우리가 먹을 수는 없다. 아카시 꽃은 유난히 향이 좋다. 그래서 꿀벌도 좋아하나 보다. 꽃을 따서 청도 담고 말려서 차로도 먹지만 나중에 노랗게 변해 버리는 게 싫어 지금은 꽃이 싱싱할 때 따서 떡만 쪄서 먹고 있다.

꽃을 따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이 상쾌하다. 차를 마시면서 이토록 작은 것에 기쁨을 누리고 산다. 집에 돌아오면 바로 바구니에 쏟아 놓고 꽃과 잎을 분류해서 다듬는다. 쌀을 담그고 팥을 삶기 시작하고 마트에서 단호박도 사다 놓고 떡 찔 준비를 한다. 무엇이든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 것은 신경을 써야 할 일이다.
 
꽃을 다듬어 놓고 호박도 껍질을 깍아서 자박자박 썰어 놓았다.
▲ 떡찔 준비물 단호박과 삶아 놓은 팥 꽃을 다듬어 놓고 호박도 껍질을 깍아서 자박자박 썰어 놓았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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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재료를 넣고 섞어 떡을 졌다.
▲ 아카시 꽃떡 모든 재료를 넣고 섞어 떡을 졌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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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일도 마음을 내어 실행하면 추억이 되고 기록이 된다. 우리의 삶이 더 풍성해진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계절을 맞이하듯 마음만 조금 신경을 쓰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매년 계절을 마중하듯 계절에 나오는 꽃과 나물로 봄 맞이 하면서 내 삶을 축제처럼 살아가려 한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 작은 일에 기쁘고 내 삶이 충만하다.
무엇을 더 욕심을 부린듯 무얼 하랴, 비움의 삶이 더 풍요롭다.

어느 날 무슨 일이 일어나지 모르는 나이, 오늘도 나는 남편과 축제하듯 하루하루를 살아 내고 있다. 최소한 우리가 사는 일에서 재미있는 일을 찾아 과정을 즐기는 것도 기쁨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아카시 떡,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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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설원 이숙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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