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 정미소
최문희
책 속 문장처럼 대다수 경비원의 근로 계약 기간은 3개월에 그친다. 계절마다 강제 홍역을 치른다. 최근 경기도가 발표한 '아파트 노동자 인권보호 및 컨설팅 지원사업' 실태조사만 봐도 6개월 이하 단기 근로계약 비중이 2022년 기준 49.9%에 이른다.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22년 5월, 부산노동권익센터가 부산지역 경비원 615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이 3개월 이하 초단기 계약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공정한 계약조건 속에서 '갑질'로 경비원을 죽음으로 내몬 사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수위가 비교적 낮은 저자의 한 가지 경험을 예로 들어 보자. 경비원의 고용 구조를 잘 아는 입주민 중 한 사람은 매일 그를 매의 눈으로 감시했다. 야간초소 근무 중 깜빡 졸고 만 그를 발견한 입주자는 훈수를 두고 사과를 받은 직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좋은 의도에서 얘기하는 겁니다." 좋은 의도란 세상에 없다. 애초에 좋은 의도는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
이 책은 단순한 직업 에세이가 아니었다. '살아 있음' 가운데 찾아오는 부당한 치욕을 투명하게 고백하는 삶의 조각들이었다. 그 조각은 청년과 노년의 노동을 구분 짓지 않았다. 경비원의 일과는 대개 새벽 5시부터 새벽 5시까지 이어지는데, 기상해서 외등을 소등한 이후 다시 동틀 때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장소는 '재활용품 수거 공간'. 음식물 쓰레기를 검은 비닐에 내다버린 횡포와 매번 만난다.
실외에 주차장이 있는 오래된 아파트에 근무하는 경비원의 경우, 고도의 주차 정리를 하기 위해 입주민에게 연거푸 양해를 구해야 한다. 초소마다 걸린 업무 매뉴얼만 보더라도 경비원의 하루 업무 스케줄은 족히 서른 가지가 넘는다. 큰 골칫거리인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부착하지 않는 입주민과 씨름하는 날들 속에서 저자는 "하루하루 어, 어, 하고 보내는 것이 아까워서 생각날 때마다 써 두었다." 근로와 고통을 구체적으로 종이 위에 써 내려갔다.
아파트에는 '피와 살이 도는 근로자'가 있다
"전에는 보이지 않고 알지 못했던 타인의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특히 그 거울 앞에 선 나의 모습 또한 눈에 들어온다. 몸이 낮아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나의 눈높이가 움직인다. 나의 한심함을 뼈저리게 통감하면서 지금 나의 처지가 나의 선생이 되었음을 느낀다."
'시련이 있었으나 극복했습니다' 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들이 종종 있다. 저자가 겪은 통증이 단순히 과거 차원에 머문 채 뭉뚱그려질 때, 그의 일부는 독자의 눈을 가려 그늘이 드리운 신체조각이 되고 만다. 저자는 자신의 아픈 신체를 보여 준다. 시련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미국서 '케니 로저스'로 불리며 사업가로 탄탄대로를 달리며 팝송을 부르던 젊은 시절의 향수를 담담히 소환한다. 화려했던 시절을 묘사한 문단 이후, 곧장 나오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2021년 1월 현재, 나는 경비원 복장을 하고 방역 마스크를 쓴 채 아파트 경비원 초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 고백은 강하고 투명해서 누구에게나 찬란한 시절이 있음을, 나의 통증을 발화하는 순간이야말로 한 인간의 찬란함을 드러내는 일임을 직감하게 한다. 스스럼없이 자신을 내보이는 용기가 어떤 자랑보다 단단함을 알게 된다. 나아가 그가 겪은 통증을 목격했거나 겪은 적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반경은 넓어질 것이다. 저자는 그 반경을 넓혀 준다.
이윽고 그는 오늘의 아파트가 '돌아갈 수 있게' 지키는 주변 사람들을 비로소 눈에 들였다고 한다. 환경미화원, 택배기사 그리고 이따금 소주병이나 폐휴지를 수거하려고 발을 동동거리며 생계를 유지하고자 간청하는 어르신들까지. 아파트에는 입주자만 있지 않았다. 자기만의 서사를 지닌 수많은 시민들이 횡단하는 곳임을 저자는 구체적인 세계로 직조해낸다.
그림책 <가로등을 밝히는 사람>에는 저자와 닮은 주인공이 나온다. 어둠이 내리면 말없이 집집마다 가로등에 불을 밝히는 주인공은 부잣집 문 앞, 가난한 집 창가를 구분없이 지나가며 불을 밝힌다. 일하는 아빠를 기다리는 어린이, 아픈 아내를 돌보는 남편, 홀로 사는 이주민, 애인을 기다리는 청년, 노부부에게 편지를 전하는 그는 도시의 안녕을 잇고 아침을 열어 준다. 소임을 다하며 이웃의 일상이 가능할 수 있게 조력하는 그는 '밤의 선생', 수많은 건물을 지키는 오늘의 경비원과 닮았다.
그리하여 당연한 사실이지만 쓸 수밖에 없겠다. 경비원의 유니폼 속에는 피와 살이 도는 신체가 있다. 누군가 내민 따뜻한 잉어빵 한 봉지에 또 다른 이웃에게 베품을 실천하는 마음이 있다. 저자가 생애주기를 관통하며 써 내려간 빛나는 문장들이 많아서 밑줄 그은 대목들이 많지만, 유독 알리고 싶었던 문장을 한 구절 옮긴다.
"빈 줄 알고 치킨 종이 상자를 거꾸로 들었다가 와르르 쏟아지는 닭 뼈다귀에 경비원의 마음도 무너져 내린다." 부디 치킨을 먹고 나서 닭 뼈다귀는 별도의 쓰레기종량제 봉투에 넣자. 이는 경비원의 일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당신이 할 일이다. 각 아파트 세대의 대형폐기물 운반도 더 이상 경비원의 업무가 아니다. 2021년 10월 시행된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단지 내 나무 심기, 건물 내 청소는 경비원의 업무가 아님을 명심하자.
사실상 '쪼개기 계약'에 따른 경비원의 초단기 근로 형태를 고치는 법안이 보강되지 않으면 우리가 잠드는 곳에서 일 미터도 채 되지 않은 곳, 소등하고 초소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계속 생겨날 것이다. 그는 방금까지 숨이 붙어 있던, 반세기가 넘는 삶의 이야기를 품은 이력의 소유자다. 가로등 불빛을 밝히는 사람이 무사히 귀가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양심 수칙을 기억하자. 나의 안전은 나를 지키는 사람의 안전이 담보될 때 지킬 수 있는 것이니까. 그것은 간단히 하지 않으면 되는 한 가지, 바로 '군림하지 않기'다.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
최훈 (지은이), 정미소(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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