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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부터 높은 곳을 좋아했다. 카페에 가면 2층 창가자리에만 앉았고 학교 쉬는 시간엔 옥상에 올랐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세상은 언제나 아름답게 보였다. 그런 내가 서울 종로구 뒷산의 와룡공원을 좋아하게 된 건 당연한 일이다. 와룡공원에서는 종로구와 성북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으니까. 친구에게도 아름다운 서울 풍경을 볼 수 있다며 호들갑을 떨며 와룡공원을 소개했다.

우리는 성북구 쪽을 바라보는 돌계단에 자리 잡았고, 실제로 한 폭의 그림 같은 전망이 펼쳐졌다. 좁고 경사진 도로를 지나는 마을버스와, 시멘트 벽 위에 주황 파랑 지붕을 얹어 지은 작은 집들이 멀리서 보였다. "꼭 동화 구름빵에 나오는 동네같다, 그지?" 성북구에 대한 애정을 담아 한 말이었다. 작은 집들을 찍고 있는 내 옆에서 친구는 짧게 대답했다. "우리는 위에서 보고 있으니까." 스치듯 한 말이었지만 이상하게 찝찝함을 남기는 말이었다.

세모녀 사건의 비극이 일어난 곳 

친구와의 만남 며칠 뒤 뉴스에서는 세 모녀가 빈곤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성북구 세 모녀' 사건이라고 불린 비극이었다. 또 다른 뉴스에서는 영화 <기생충>이 성북구에서 촬영됐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부자동네로 알려졌지만 사실 서울의 몇 남지 않은 낙후 지역이 있어 빈곤을 다루는 영화 배경지로 선정됐으며, 재개발이 멈춰 빈집이 수두룩하다고 말이다.

기사의 자료 사진 속에는 주황 지붕 시멘트 집의 금간 벽과 녹슨 창살이 찍혀있었다. 문득 나는 내가 동화 같다며 카메라에 담은 작은 집들 중에, '세 모녀'가 살던 집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제야 때로는 현실을 낭만화하는 것도 특권 혹은 폭력임을 깨달았다.
 
 지난 8월 8일 밤 폭우로 인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빌라 반지하에 살던 모녀(47, 13)와 발달장애인(48) 세 식구가 숨졌다. 9일 반지하 집 앞에 널브러져있던 토끼 인형.
지난 8월 8일 밤 폭우로 인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빌라 반지하에 살던 모녀(47, 13)와 발달장애인(48) 세 식구가 숨졌다. 9일 반지하 집 앞에 널브러져있던 토끼 인형. ⓒ 김성욱
 
카메라의 발명은 세상에 없던 시각을 사람들에게 선사했다. '높은 고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도 카메라가 창출해낸 새로운 시야다. 이때 흥미로운 점은, 시각-카메라의 고도는 보는 사람의 권력을 뜻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수직적인 방향으로 벌어진 거리는 필연적으로 정보의 불균형을 수반한다. 높은 곳은 낮은 곳의 사람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으나 반대는 그러기가 어렵다.

그래서 왕은 항상 단상 위 왕좌에 앉는 반면 신하는 고개를 조아린다. 봄과 보임의 관계에서, 보는 자는 보이는 자보다 높은 위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 고도의 차이가 극한으로 벌어질 때 '폭격기의 시선'이 등장한다. 폭격기 조종사에게는 지상의 사람들의 삶이, 현실이 그저 하나의 덩어리지고 아득한 '풍경'으로 보인다. 그들이 핵을 투하할 수 있는 이유는 수직적 거리가 만들어내는 현실의 '추상성' 때문이다.

말을 '투하'하는 정치인들, 그 공감능력의 부재 

몇몇 정치인들의 말을 들을 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또 말을 투하하고 있네...' 하는 생각 말이다. 이를테면 화물차주들의 생존권 투쟁을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로 치부하는 말, "일주일에 120시간 바짝 일해야한다"는 말,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은 없다"는 말과 "경찰 배치로 해결됐을 문제는 아니"라던 망언 말이다.
 
이태원 참사 사흘 만에...고개 숙인 이상민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태원 압사 참사 발생 사흘 만인 11월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공식 사과했다.

이 장관은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보고에 앞서 "국가는 국민의 안전에 대해 무한 책임이 있음에도 이번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최근 언론 브리핑에서 이번 사고의 원인과 관련,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예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데 대해서는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슬픔에 빠진 국민의 마음을 미처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며 "다시 한 번 깊은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태원 참사 사흘 만에...고개 숙인 이상민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태원 압사 참사 발생 사흘 만인 11월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공식 사과했다. 이 장관은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보고에 앞서 "국가는 국민의 안전에 대해 무한 책임이 있음에도 이번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최근 언론 브리핑에서 이번 사고의 원인과 관련,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예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데 대해서는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슬픔에 빠진 국민의 마음을 미처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며 "다시 한 번 깊은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 남소연
 
생각해보면 발언에 공통점이 있다. 모두 발언자가 그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그 자신이 노동자가, 여성이, 유가족이 아니라서, 아니어야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즉 멀리 떨어진 상공에서 추상적 현실만을 관측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는 이 말들에 '시선의 고도'를 성찰하지 못한 자의 폭력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하늘 위 자신과 땅을 기는 소수자를 분리하여 사고하는 자의 오만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어떤 세상인지 그 현실을 보기 위해서, 골목 골목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삶과 대면하기 위해서, 정치인들은 우선 시선의 고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과 같이, '공감능력 없음'을 누구나 알 수 있으며 하늘에서 투하되듯 쏟아지는 '폭탄발언들'은 아마도 계속될 것이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가영이 엄마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정조사특위위원 간담회에서 오열하자 조은희 의원이 위로하고 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가영이 엄마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정조사특위위원 간담회에서 오열하자 조은희 의원이 위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망언#시선의 고도#이태원 참사#화물연대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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