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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협 선생이 만든 지팡이 .
류인협 선생이 만든 지팡이. ⓒ 최미향
 
"한광석 신부님께 '이 지팡이를 해미성지에 놓아주십시오'라고 했어. 내가 주면 한낱 나무깽이로 보이겠지만, 신부님이 주시면 보물로 보일 거 아녀. 그래서 신부님께 나눠주라고 했지."

지난 3일 해미성당 류인협 신자(남, 81세)가 나무지팡이를 만들며 들려준 말이다. 나무지팡이를 둔 곳에는 이런 글귀가 쓰져 있었다.

'주님 기도하고 반드시 사무실에 말씀하고 가져가세요. 환자이거나 90세 이상여야 해당됨. 일인당 1개만 허용.'

지팡이 130개 기증한 류인협 선생 "누군가 내게 지팡이라도 안겨줬으면 싶었다"

충남 서산시 해미면에 거주하는 류인협 선생은 해미순교성지에 위치한 해미성당에서 '염(殮, 죽은 사람의 몸을 씻긴 뒤에 수의를 입히고 염포로 묶는 일)' 봉사로 평생을 보내신 분이다.

지난 2019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전국경제투어 11번째 일정으로 서산시 해미읍성을 방문하기 며칠 전, 해미읍성 돌 틈에 난 잡초를 뽑기 위해 7m가량 높은 사다리 위에 올라 풀을 뽑다 그만 사다리가 넘어지는 바람에 바닥으로 떨어져 큰 중상을 입고 말았다.

특히 엉덩이 부분이 돌담을 비추는 화경에 부딪친 충격으로 인해, 약 3주간 무의식 속에 살던 선생은 4개월 10일 만에 겨우 퇴원한 이력이 있다. 당시 선생은 입원 뒤 침대와 바닥을 번갈아 바라보며 '겨우 20cm밖에 안 되는 이 높이를 못 내려가다니... 누군가 내게 지팡이라도 하나 안겨주면 조금이라도 쉽게 걸음을 뗄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늘 가슴에 안겨있었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병원에 있을 때 나를 문병 온 50여 명 중 내가 살아나리라 생각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어. 그런데 죽을 사람이 살아난 거야. 그건 내 뜻이 아닌 거 같아. 밥만 먹고 살라고 살려놓은 것 같지는 않더라 이거지. 뭔가 그래도 뜻이 있는 일을 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

비가 오면 나면 축축하니까 쭉쭉 미끄러질 때도 있고 걷기가 불편할 때가 많아 지팡이를 놓게 됐다는 그는, "벌써 한 130개 정도 갖다둔 거 같어. 현재 집에도 사포질해서 색깔까지 칠해놓은 게 40여 개 된다"며 "얼마 있으면 어차피 저세상으로 갈 건데 남은 인생, 우리 해미성지를 찾는 많은 관광객에게 편안히 걸으며 관광할 수 있도록 아픈 걸음에 힘을 보탤 예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해미성지#지팡이기증#류인협천주교신자#나무지팡이#해미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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