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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 사상을 설파하는 김지하씨
▲ 남조선 사상을 설파하는 김지하씨 남조선 사상을 설파하는 김지하씨
ⓒ 조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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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나의 시의 표제어는 불이었다. 그러나 오늘 그것은 물로 바뀌었다. 조용한 물."

그의 정신적ㆍ사상적 변화의 물꼬는 이 한마디에 압축되는 것 같다. 굳이 동양의 오행설(五行說)을 꺼내지 않더라도 불과 물은 상극 또는 상치되는 개념(물질)이다. 물론 오행상생설도 없지 않다. 

실제로 김지하의 생애를 조명하면 학생운동에서 유신반대 투쟁의 선봉장 역할을 할 때는 활활타는 불, 그것도 잉걸불이었다. 하여 저항시인이 되고, 이로 인해 극심한 탄압을 받았으며, 자칫 사형수가 될 뻔 했다.

출옥 후에는 많이 달라지는 모습이다. '급진진보'계열에 대한 그의 인식이다.

나는 그들과는 너무나도 멀리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설령 그들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맞다 하더라도 내 눈엔 이미 한없이 시대에 뒤떨어진, 소수의 편벽된 담론일 뿐이었다.

때는 이미 생명과 영성의 시대로, 안과 밖, 명상과 변혁의 상호 보완시대로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었고, 그 길에서 동서양 사상의 새로운 종합, 고대와 미래의 쌍방향적인, 탁월한 통합이 요구되고 있었다. (주석 1)

그 시기 문화계 진보의 상징이었던 계간 <창작과 비평>에 대한 그의 인식이다. 

왜 '창비'와 나는 항상 일치할 듯 하면서도 서로 비켜 나가는가? 아마도 그들은 시사 평론가들이요 나는 원론 탐색가이며, 그들은 근거지에 머무르는 현실주의자들인데 비해 나는 항상 먼 길 떠나는 나그네이기 때문인 듯하다. 견해의 차이라기보다 그것은 일종의 숙명일 게다. (주석 2)

그의 자신을 '원론 탐색가'라는 호칭은 변명이거나 변화의 조짐일 듯 하다. 그는 치열하게 시사를 평론하는 담시의 작가였다. 

유신정권과 5공권력의 '병법적(兵法的) 차이'와, 자신에게 "껍데기 대장 노릇을 하라고 우겨댔고, 늙은이답게 젊은이를 위한 선동연설이나 하라고 덤볐다." (주석 3)는 운동권 일부의 언행 등에서 이들에게 극심한 반감을 사게 되었을 지 모른다. 사족이라면, 그 역시 사람인 이상 자기를 못살게 한 유신정권과 풀어 준 5공정권이 비교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나는 도적>의 '고백'에서 "출옥 후 5공 관계자들이 여러 번 술을 샀고, 갈비짝을 보내고 사과 짝을 보냈다. 나는 거물 의식까지 즐기며 태연히 받아 먹었다. 역시 도적놈이다." (주석 4)

그는 생명사상을 탐구하면서 시인기디보다 학자나 사상가적인 면모를 보인다. 언론인 출신으로 두레출판사 대표 신홍범은 1985년 김지하 이야기모음 <남녘땅 뱃노래>를 펴내면서 <생명사상의 전개>라는 주제로 원주에서 그와 7시간 대담했다. 책의 소개글 <편집자의 말>에서 이를 요약한다. 
김지하 시인은 "생태계 오염, 괴질 등이 잇따르는 대혼돈 시대에 '남조선 사상'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김지하 시인은 "생태계 오염, 괴질 등이 잇따르는 대혼돈 시대에 "남조선 사상"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지하 시인은 "생태계 오염, 괴질 등이 잇따르는 대혼돈 시대에 "남조선 사상"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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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은 '생명의 세계관'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죽임의 세력들에 의해 모든 생명이 짓밟히고, 찢기고, 부서지고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 생명을 죽임으로부터 해방시켜 그 본성대로 생명답게 꽃피우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이야말로 가장 존귀한 것이며 시작이요 끝이기 때문에 생명이라는 기초 가치관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총괄적으로, 전면적으로 다시 묻고 다시 대답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사상도 생명현상을 지닌 것이기에 그의 세계관 역시 생성 변화 발전하는 과정을 밟아왔을 것이고 또한 앞으로도 변화해갈 것이다. 그의 생명사상의 씨앗은 언제 어떻게 생성되어 전개돼 온 것인가. 다음의 〈문답〉(인터뷰)은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김지하 시인의 사상적 모색과정, 즉 사상적 생애를 알아보기 위해, 그리고 그의 생명사상에 대한 여러 의문들을 풀어보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많은 의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답은 그의 사상적 전개와 관련된 것들에만 제한되었다. 

이 문답에서 그는 전부터도 살아 생동하는 것, 역동하는 것, 뜀뛰는 것, 흐르는 것에 대한 추구가 강했던 만큼 생명사상에 대한 씨앗을 갖게 된 것은 오래 전부터였던 것 같다고 말하고 다만 자각적인 형태로 그것을 추구하게 된 것은 감옥생활에서였다고 밝혔다. (주석 5)


주석
1> <회고록(3)>, 74쪽.
2> 앞의 책, 76쪽.
3> 앞의 책, 71쪽.
4> <뭉치면 죽고 헤치면 산다>, 36쪽.
5> <남녘땅 뱃노래>, 341쪽, 두레, 1985.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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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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