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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 바닷가에 있는 굴암돈대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 바닷가에 있는 굴암돈대 ⓒ 이승숙

음력 설 쇠고 나서부터 강화도의 54개 돈대를 찾아가는 '돈대기행'을 시작했으니 벌써 석 달을 넘어 넉 달로 접어들었다. 그 사이 계절은 겨울을 지나 봄의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내가 돈대를 방문한 5월 4일은 한낮의 최고 기온이 25도를 웃돌 정도로 덥다.

그동안 둘러본 돈대가 열 개도 넘는다. 돈대들은 각각 자리 잡고 있는 위치도 달랐고 생긴 모습 역시 제각각 달랐다. 복원을 해서 말끔한 모습인 돈대가 있는 반면 다 허물어져서 터만 남아 있는 곳도 있었다.

돈대를 찾아가는 여행

담고 있는 이야기들 역시 다 달랐다. 돈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궁금해서 각각의 돈대들을 몇 번씩이나 찾아가곤 했다. 이른 아침에 갔을 때와 한낮에 갔을 때가 달랐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에 가본 돈대는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굴암돈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굴암돈대에는 바다 쪽을 향해 4개의 포대가 있다.
굴암돈대에는 바다 쪽을 향해 4개의 포대가 있다. ⓒ 이승숙
 굴암돈대
굴암돈대 ⓒ 이승숙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 바닷가 언덕에 있는 굴암돈대는 '석양'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돈대가 위치해 있는 동네 이름에 벌써 석양이 들어 있다. '하일리(霞逸里)'라니, 저녁노을이 진다는 의미가 아닌가. 더구나 하일리의 석양을 담은 신영복 선생님의 글도 있었다.

신영복 선생과 하일리 석양
 
'강화도의 서쪽 끝 하일리는 저녁 노을 때문에 하일리입니다. 저녁노을은 하루의 끝을 알립니다. 그러나 하일리의 저녁노을은 하루의 끝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이 적과 흑으로 확연히 나누어지는 산마루의 일몰과는 달리 노을로 물든 바다의 일몰에서는 저 해가 내일 아침 다시 동해로 솟아오르리라는 예언을 듣기 때문입니다. 이곳 하일리에서는 오늘 저녁의 일몰에서 내일 아침의 일출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중에서

신영복 선생이 상찬한 하일리의 석양이다. 그래서 저녁노을을 보기 위해 해가 질 무렵 굴암돈대에 갔다. 성벽에 기대어 앉아 바다를 물들이며 하루를 마감할 석양을 기다렸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해는 바다로 떨어지지 않고 석모도의 산 너머로 사라졌다.
    
 석모도 너머로 해가 졌다.
석모도 너머로 해가 졌다. ⓒ 이승숙
 굴암돈대에서 바라본 봄날의 석양. 석모도로 해가 졌다.
굴암돈대에서 바라본 봄날의 석양. 석모도로 해가 졌다. ⓒ 이승숙
    
굴암돈대에서 바라본 석양이 기대에 못 미치더라는 내 말에 돈대 인근에 사는 분이 봄에는 해가 바다로 지지 않고 석모도 방향으로 떨어진다고 했다. 늦가을부터 겨울까지는 바다로 떨어지지만 봄에는 바다를 지나 석모도 쪽으로 넘어간다고 했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지만 계절에 따라 조금씩 위치가 변한다면서 굴암돈대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해를 보려면 가을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봄의 굴암돈대에서 마음에 들 만큼의 석양은 보지 못했지만 대신 다른 것을 보았다. 아마도 굴암돈대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겨울이 아닌 봄에 우리를 불렀나 보다. 겨울이었다면 석양에 마음을 뺏겨 그 외의 것은 눈에 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숙종, 강화도를 요새로 만들다

굴암돈대는 강화도에 있는 여타의 돈대들과 마찬가지로 숙종 5년(1679)에 만들어졌다. 숙종은 46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국방력 강화에 힘을 쏟았다. 강화도에 있는 54개의 돈대 중 50개가 숙종 때 만들어졌으니, 한양 수호에 만전을 기했던 당시를 떠올릴 수 있다.
  
강화도를 상징하는 표상(심벌마크)에는 세 갈래의 물줄기가 표시되어 있는데, 그것은 강화도로 흘러오는 세 개의 강, 곧 한강과 임진강 그리고 예성강을 뜻한다. 과거, 바다와 강은 길이었고 한강과 닿아있는 강화도는 한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만약 적이 바닷길로 쳐들어와 강화도를 점령하면 한양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강화도를 지키는 게 곧 수도인 한양을 수호하는 길이었다.  

강화에는 5개의 진과 7개의 보 그리고 54개의 돈대가 있었다. 수도인 한양을 지키기 위한 방책이었다. 돈대들은 진과 보의 관할 아래 있었고, 하나의 돈대에 별장(장교) 2명과 군졸 3명이 돌아가며 수직을 하였다. 마치 지금의 해병대 2사단과 마찬가지 역할을 5진7보 54돈대가 했다.

한강하구와 강화도를 지키는 해병대 2사단
 
 굴암돈대
굴암돈대 ⓒ 이승숙
 
해병대 2사단은 해병대사령부 예하 제2상륙사단으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서부지역을 지키는 수도방위 해병부대이다. 인천광역시 서구에 사단본부가 있으며 예하 부대들이 경기도 김포시 및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다.

서울은 한강하구를 통해서도 진입이 쉬운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강하구를 지키는 해병대 2사단의 중요성은 매우 크고 막중하다. 한강 하구의 초입인 김포부터 강화도와 교동도 그리고 서해의 외딴 섬인 말도(末島)에 이르는 곳까지의 해안에 대한 경계 작전을 해병대 2사단이 수행한다.

해병대 2사단의 책임 경계 구역은 전군을 통틀어 가장 긴 255km나 된다. 실제 철책이 설치된 곳만 계산해도 100여 km에 달할 정도로 해병대 2사단이 지켜야 하는 구역은 크고도 넓다. 육군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육군은 DMZ 150마일, 즉 248km를 10개 사단을 동원해 경계한다. 즉 육군은 1개 사단이 평균 24.8km만 막으면 되는데 해병대 2사단은 홀로 그 4배인 100여 km를 지켜야 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해병대 2사단은 훌륭히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다. 그 옛날 강화도를 지켰던 군졸들처럼 해병대 2사단의 장졸들이 오늘도 한강하구와 서해 말도까지의 바다를 수호하고 있다.

강화도 인근 바다는 예로부터 간첩선들의 주요 침투 구역 중 하나였다. 강화도와 석모도 그리고 교동도 일대 해안은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 취약 지점이라 잠수정 등이 내려와도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또 강화도 서쪽 해안은 북에서 배를 타고 직선으로 내려온다면 1시간 3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이기도 하다.

간첩선의 침투 루트였던 강화도 앞 바다
 
 간첩선의 침투 루트였던 강화도 해안
간첩선의 침투 루트였던 강화도 해안 ⓒ 이승숙
 
굴암돈대 앞 바다에서 간첩선이 상륙을 시도하다가 발각되어 북으로 도주한 일도 있었다. 1998년 11월 20일 0시 55분쯤 굴암돈대 앞 해상에서 북한 반잠수정 한 척이 접안을 시도하는 것을 해병이 발견했다. 조명탄을 쏘고 박격포 및 해안포 등을 발사하며 추적에 나섰지만 썰물 때라 바닷물의 깊이가 0.5~2미터에 불과한데다 그믐밤이라 잘 보이지 않아 나포에 실패했다고 합동참모본부에서 발표했다.

강화도가 북한과 인접해 있다고 하지만 굴암돈대가 있는 서쪽 바다에까지 북한의 반잠수정이 침투했다니 놀랍다. 다행히 해병대원들이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얼마나 놀라고 혼란스러웠을까. '귀신 잡는 해병대'란 말이 있다더니 그 말이 빈 말이 아니었다. 역시 우리의 해병대다.

수도권 해안 철통 방어라는 중책을 받은 해병대 2사단은 유사시를 대비해서 상륙훈련을 꾸준히 한다. 상륙작전을 주 임무로 하는 해병부대가 사단급으로 북한과 인접한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북한에게는 큰 위협이 될 것이며 그들의 도발을 사전에 막는 예방 효과가 있다. 이렇게 중책을 맡은 해병대 2사단의 상륙작전 훈련장이 바로 강화도의 굴암돈대 아래에 있다.

굴암돈대의 규모
 
 굴암돈대
굴암돈대 ⓒ 이승숙
 
굴암돈대는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 39호로 양도면 하일리 487번지에 위치해 있다. 바닷가와 맞닿아 있는 산의 끝자락 언덕에 돈대가 자리잡고 있으며 규모는 동서 27.6m, 남북 38.6m이다. 성벽의 높이는 3.9m 내외이며 돈대 동쪽에 출입문이 있고 바다를 향한 서쪽 및 남서향 방향에 총 4개의 포좌를 배치하였다. 북쪽 성벽 중앙에는 배수시설인 누조가 설치되어 있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으나 여장(치첩) 등은 다 사라지고 남아 있는 게 없다. 

문헌자료를 통해서 본 굴암돈대의 규모는 치첩이 36개였고 둘레는 보폭으로 88보, 115m다. 다른 돈대들과 비교했을 때 크지도 작지도 않은 보통 규모의 돈대로 진무영 소속이었다. 굴암돈대에서 북쪽으로 약 2km 거리에 건평돈대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송강, 선수, 장곶돈대가 나란히 서서 강화의 서쪽 바다를 지켰다. 
           
 굴암돈대에 소풍을 온 사람들.
굴암돈대에 소풍을 온 사람들. ⓒ 이승숙
 굴암돈대에서 휴일을 보내는 사람들.
굴암돈대에서 휴일을 보내는 사람들. ⓒ 이승숙
 굴암돈대에서 휴일 한 때를 보내는 사람들.
굴암돈대에서 휴일 한 때를 보내는 사람들. ⓒ 이승숙

마니산이 있는 화도면에서 해안도로를 달려 외포리 방향으로 가다보면 바다 쪽 길 가에 굴암돈대 안내판이 서있다. 도로에서 약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돈대가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바로 앞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어 노약자들도 쉽게 돈대 구경할 수 있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변해가는 이 즈음의 굴암돈대는 아름답고 고요하다. 돈대에 들어서면 들리는 소리라고는 바닷물이 철썩이는 소리와 새 소리 뿐이다. 호젓하고 조용해서 세상사는 저만치 물러나 버린다. 그곳에서는 오로지 '쉼'만이 존재한다.

돈대로 소풍 온 사람들이 봄날의 한 때를 누리고 있다. 그 모습이 참으로 평화롭다. 강화에서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는 해병대원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 덕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돈대 아래 있는 해병부대는 오늘도 묵묵히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 하고 있었다. 

<굴암돈대 기본 정보>

. 소재지 :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 487번지에 위치해 있음.
. 별칭 : 하일돈대
. 축조 시기 : 1679년(숙종 5)
. 규모 : 너비 - 동서 27.6m, 남북 38.6m
          둘레 - 115m
          면적 - 852제곱미터
          잔존 성벽 높이 - 3.9m

. 지정 사항 :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9호
. 형태 : 반달 모양
. 현 상태 : 성벽은 보완해서 복원했으나 윗부분(성가퀴)은 불완전한 복원 상태임. 현재 토압(土壓)에 의해 성벽이 불룩하게 튀어나오는 배부름 현상이 시작되고 있음.
. 그 외 : '영문' 소속이었으며 남쪽으로 약 1km거리에 송강돈대가 있고 북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건평돈대가 있음.

덧붙이는 글 | <강화뉴스>에도 게재합니다.


#강화도여행#돈대기행#강화도돈대#굴암돈대#해병대2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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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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