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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는 장면을 재현하는 모습
김재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는 장면을 재현하는 모습 ⓒ 연합뉴스
 
생식기를 잘라내는 혹독한 형벌을 당하고 옥살이를 한 중국의 사학자 사마천은 <사기>의 <임안(任案)에게 보내는 글>에서 "지면에 옥(獄)을 그려 놓아도 사람들은 그것을 피하고 나무를 깎아 형리(刑吏)를 만들어도 사람은 그것과 대면하기를 싫어한다."고 하였다. 

함세웅은 8월 30일 영등포 교도소에 다시 수감되었다. 1년 8개월 만의 재투옥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으나 당시 성당을 짓고 있어서 이것이 걱정되었다. 시설이 너무 많이 낡고 협소하여 성당과 유치원을 리모델링 하기로 결정. 1979년 3월에 모금을 개시하고 4월부터 재건축에 들어간 상태였다. 

한국사회는 요동치고 있었다. 8월 9일 YH무역 여성노동자 170여 명이 회사운영 정상화와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 등을 요구하면서 마포 신민당사 4층을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이 농성사건은 한국현대사의 흐름을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한 젊은 노동자(전태일)의 죽음으로 막을 연 1970년대는 YH노동자 사건의 또 다른 한 노동자(김경숙)의 죽음으로 종언을 고하면서 가파른 변화를 겪게되었다. 
 
신민당사에서 농성중인 YH무역 여공들 1979년 8월 10일 신민당사에서 농성중인 YH무역 여공들.
신민당사에서 농성중인 YH무역 여공들1979년 8월 10일 신민당사에서 농성중인 YH무역 여공들. ⓒ 연합뉴스
 
YH사건은 유신체제 몰락의 서곡이었다.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각계의 투쟁에 노동자들은 결코 뒤지지 않았다. 70년대 말 중화학 공업의 과잉투자로 인한 경제정책의 실패에다 제2차 석유파동마저 겹쳐 직접적인 희생양이 된 기층민중, 특히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은 반유신 투쟁과 연계되었다. 권력과 어용노총과 기업주의 결탁에 의한 노조탄압에 온몸으로 맞서 노조를 사수한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YH노동자들의 저항은 처절한 시대상이었다. 

물리력만을 믿는 박정권은 평화롭게 농성중인 여성노동자들을 새벽에 경찰 1천여 명을 투입하여 강제해산시키고 이 과정에서 사망자가 생겼다. 경찰은 신민당 의원, 취재기자 등 가리지 않고 폭력을 휘둘러 부상자가 속출했다. 공화당과 유정회 의원들은 김영삼 총재의 외신회견을 빌미삼아 국회에 징계동의안을 제출하고 10월 4일 경호권을 발동하여 제명안을 변칙처리했다. 출석의원 159명 중 159표로 제1야당 총재의 의원직을 박탈한 것이다. 
 
 1979년 8월 YH여공사건 당시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여공들과 함께 농성하다 경찰에 의해 당사에서 끌려 나오는 모습
1979년 8월 YH여공사건 당시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여공들과 함께 농성하다 경찰에 의해 당사에서 끌려 나오는 모습 ⓒ 연합뉴스
 
10월 16일 부산대생들의 시위를 계기로 부마항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의 파티장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저격으로 박정희는 절명했다. 그곳은 한태연ㆍ갈봉근ㆍ김기춘 등이 유신헌법을 만든 장소였다. 역사의 업보였을까. 

1961년 5ㆍ16 쿠데타로부터 만 18년 5개월 10일 동안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반동적 근대주의자'(전재호)는 숨을 거두었다. 그는 유신독재에 저항하는 사제 등 성직자와 민주인사들을 '환상적 낭만주의자들'(1974년 10월 1일 국군의 날 치사)이란 인식을 끝내 바꾸지 않고 사망했다. 함세웅은 영등포 교도소에서 10.26 소식을 들었다.

옥살이가 거의 2개월 되었을 때인 10월 27일 아침이었죠. 그때 몸이 안 좋아서 아픈 데가 많았어요. 그날은 재소자들이 작업을 안 나가더라고요. 교도관들은 다 군복을 입고 비상이고요. 재소자들은 작업이 없으니까 답답해서 소리 지르고 그랬어요. 저는 독방에 있으니까 '이상하다. 왜 이렇게 살벌할까' 생각했어요. 제 조그마한 창으로 내다보면 교도소장실 위에 국기게양대가 보이는데, 태극기가 조기로 걸려 있더라구요. '누가 죽었나', 이렇게 생각하고 저는 그냥 방에서 식사하고 왔다 갔다 하는데, 11시쯤 되니까 다른 재소자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저, 신부님, 2방에서 물 뜨러 나오시래요."
그래서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물통 비우고는 교도관에게 "저, 물 좀 뜨면 좋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하니까 "신부님은 가만히 계세요. 우리가 떠다 드릴게요." 하면서 내보내주지 않는 거예요. 사정사정 했어요. "무척 답답하니까 잠깐 갔다 올게요." 했더니 문을 열어줘서 2방으로 갔어요. 동아투위 기자 세분이 막 부르는 거예요. "신부님 아세요? 어젯밤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오른손 주먹을 들고 총 쏘는 시늉을 하며) 팍! 쏴서 박정희가 갔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너무 놀라서 전율을 느꼈어요. 

점심밥 받아 이불 속에 넣어놓고는 눈을 감고 한참 동안 기도를 했어요. 막 눈물이 나요. 출애굽기(탈출기)에 이집트의 노예에서 홍해 갈대 바다를 기적적으로 건넜던 모세의 지팡이와 그 기적의 이야기. '아, 기적이 바로 이것이구나. 또 바빌론 70년 유배에서 해방된 제2의 해방 사건이 이런 것이구나. 성서 해방의 이야기가 관념이 아니라 뜻밖에 이렇게 이루어지는 기적이구나.' 그것을 감옥에서 깨달았어요. (주석 13)


주석
13>앞의 책, 233~234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함세웅#함세웅신부#정의의구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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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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