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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에 면우 곽종석 선생 등 유림대표 137명이 서명하여 대한민국의 독립을 호소한 2,674자의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가 동판과 한글번역본으로 소개되어 있다.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에 면우 곽종석 선생 등 유림대표 137명이 서명하여 대한민국의 독립을 호소한 2,674자의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가 동판과 한글번역본으로 소개되어 있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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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곳곳에 산재해 있는 독립운동가들에게 한 덩어리가 되어 일제와 싸우자는 '대동단결선언'을 일구어 낸 그는 계속하여 후속 조처를 펴 나갔다.

먼저 1917년 8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만국사회당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따라 조선사회당 명의로 전문을 보냈다. 내용은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의 발칸반도문제 때문에 발발한 것이라고 전제, 한국문제로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면서, 한국의 독립으로 새로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회에서 모든 민족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조선사회당을 별도로 조직한 것은 아니고 동제사의 명칭을 바꾸어 전문을 보냈으나 대회가 무산됨으로써 독립지원 요청은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외교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이즈음에는 국제정세가 다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유리'하기 보다는 그런 방향성을 포착했다고 하겠다. 
  
민족자결론을 주창한 윌슨 대통령
▲ 미국 제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 초상화 민족자결론을 주창한 윌슨 대통령
ⓒ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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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윌슨이 1918년 1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14개조 평화원칙'에서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였다. 1년 전에는 러시아에서 레닌이 비슷한 정책을 제시한 바 있었다.

신공(申公)은 이 때야말로 한국이 독립할 천재일우의 기회라 생각하고 즉시 비밀 서신을 수십 통 써서 청년동지 방효성(方孝成)과 곽경(郭儆) 두 사람에게 맡겨 부탁하였다. 상하이로부터 비밀리에 한국으로 잠입시켜서 여러 혁명 동지들에게 연락하고 암암리에 국내에서 민중의 시위운동을 일으켜 일본 통치에 반대할 것을 계획하신 것이다.

그 밀서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상략(上略)…아우는 이미 김규식ㆍ조소앙 두 형들에게 중국 상하이로부터 파리강화회의에 가서 호소할 것을 청했으니, 여러 형들은 모름지기 때를 맞춰 국내에서 우리 겨레의 전국적 민중운동을 일으켜 일본 통치에 반대하고 독립을 요구한다는 굳은 결의를 표시하여 국제적으로 알리는데 이바지 하시오." (주석 1)

신규식은 미국에 있는 이승만에게도 편지를 보내 프랑스로 가서 각국 대표들에게 호소하여 국제적인 동정을 얻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국내에 들어왔던 두 청년은 일경에 발각되어 혹독한 고문 끝에 결국 목숨을 잃었다. 

상하이 시절 유학생 신분으로 신규식을 만나 독립운동의 길을 걷고 뒷날 그의 사위가 된 민필호는 신규식의 이와 같은 일련의 활동을 "우리 한국의 3ㆍ1운동의 선성(先聲)이었다."고 기록하였다. (주석 2) 
  
앞줄 여운홍·○·○·김규식, 뒷줄 ○·이관용·조소앙·○·○·○·○·황기환. 「통신전」 발간활동을 한 김인태의 얼굴이 없는 까닭은 그가 공식적인 단체의 대표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 파리평화회의(파리강화회의) 임시정부 대표단 앞줄 여운홍·○·○·김규식, 뒷줄 ○·이관용·조소앙·○·○·○·○·황기환. 「통신전」 발간활동을 한 김인태의 얼굴이 없는 까닭은 그가 공식적인 단체의 대표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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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파리강화회의 개최는 독립운동가들이 기다리던 절호의 기회였다. 신규식은 김규식ㆍ여운형 등과 함께 1918년 11월 28일 신한청년당을 창당하고 대표 김규식을 프랑스로 파견키로 하였다. 김규식이 파리로 떠나기 전인 1919년 1월 25일 예관 신규식과 우사 김규식은 합동으로 「윌슨 미국대통령에게 보낸 청원서」를 작성하여, 김규식이 파리에서 이를 직접 미국대표부에 수교했다.

편지는 프랑스어로 작성되었는데, 파리강화회의 미국대표단의 문서철에 신규식ㆍ김규식의 프랑스어 편지 원본과 영어 번역본이 수록되어 있다. 프랑스어로 된 편지의 발신자는 신정(Shinjhung), 김성(Kinsh ung)이며 수신자는 우드로 윌슨이다. 신정(申檉)은 신규식의 중국 이름이며, 김성(金成)은 김규식의 다른 이름이다.

신규식과 김규식은 각각 한국공화독립당(The Korean Republican Indepe ndence Party)의 총재(President)와 사무총장(Secretary) 자격으로 영문서명을 했다. (주석 3)

 
성주의 야성송씨 문중을 이끈 송준필이 1919년 파라강화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의 서명을 한 백세각(百世閣).
 성주의 야성송씨 문중을 이끈 송준필이 1919년 파라강화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의 서명을 한 백세각(百世閣).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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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식과 김규식이 「미합중국 대통령 각하」에게 보낸 청원서는 다음과 같다. 

베르사유 평화회의에 국가들이 결집해 항구적인 세계평화를 수립하려고 협력하려고 하는 이때 한국인들은 각하께 우리 요구를 고려해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4천년 이상 존재해온 한국인들은 그리스-로마만큼이나 오래된 문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기억할 수 없는 과거로부터 공포스런 역경의 바람이 우리 불행한 국가의 국민과 정부를 전복시키기 이전까지, 한국은 자유 독립국가로 간주되었습니다. 다른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유지했는데, 이들 국가들은 한국의 전권공사를 받아들이고 자국의 대표를 한국정부에 파견했습니다. 한국과 다른 국가들간에 체결된 수많은 정치  및 상업적 조약들은 한국이 대외적 주권을 완벽하게 행사했음을 명백히 증명합니다. 

대한제국정부의 태만과 무능으로 일본이 한국에 쉽게 침투했습니다. 다양한 구실을 내세워 일본은 1895년 서울을 점령했습니다. 한국의 황후는 살해되었습니다. 1904~05년간 일본은 한국정부에게 자신의 대외적 주권을 행사할 권리를 박탈하는 조약을 강제했습니다. 일본의 침략은 증가해서 1907년 제국은 소멸했습니다.

일본은 명백히 한국에 일본을 이식했습니다. 일본은 연약한 국가에 미카도(Mikado:천황)의 정부를 설치했으며 우리 풍습과 관행을 일본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공포에 질린 한국인들은 자국에 대한 일본의 음모를 무력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가장 수줍어하는 사람들, 보통 가장 쉽게 확신시킬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도 일본에게 좋은 결과를 초래하지만 우리의 국가적 열망과 양립할 수 없는 문명화를 거부하는데 동의했습니다. 한국인들의 국가적 반대는 완전히 정당한 것이며 조만간 인정될 것이며 한국은 세계 지도상에서 명백히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부정하고 부당한 조치들과 연관되어 야기된 모든 시도는 우리의 피속에 날인되어 있습니다. 어떤 동정도 어떤 용서도 없습니다. 반란군은 아마도 그들 반란의 댓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피가 새로운 헌신을 창출할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문명화로 인해 멸망되길 원치 않습니다.

외국 열강들은 일본이 한국에서 어떻게 통치하는지 알지 못하는데, 가혹한 검열로 인해 모든 뉴스가 외부세계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일본의 자애로운 보호 하에서 아마도 한국이 여전히 자유롭다고 믿으며, 우리나라가 현재 단지 일본의 식민지일 뿐이며 곧 일본의 한 지방 군현이 될 때 한국의 모든 재부를 독점하는 일본은 이것이 극동의 평화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열강들은 일본이 우리 정부를 몰락시킨 모든 조약들을 승인했기 때문에 불행한 한국인들을 위해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평화회의가 크고 작은 나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분쟁의 원인을 찾으려 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인종을 모두 조화롭게 하며 자신들의 법률과 관습에 따라 각자 살도록 허용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민족은 대통령 각하께 나아가 그들의 불행한 운명을 고려해주길 요청드립니다.

부디 평화회의가 우리 대표를 만나 자유의지에 반해 일본의 속국이 된 한국 상황을 명확히 청취해 주길 바랍니다.

부디 한국에서 분쟁의 원인들이 사라지고 극동은 물론 모든 곳에서 영구적 평화가 확보되길 바랍니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을 다시 한 번 자유롭고 독립된 민족으로 만들어 줄 국가 권리(Right of Nations)에 내재하는 정의를 확신합니다. 

한국인들에게 이 자유를 회복케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동시에 미래의 분쟁 원인을 억제하게 될 것입니다. 이리하여 영구적 세계평화의 설립이라는 목적이 획득될 것입니다. 평화회의에 우리의 겸허한 요청을 제출함으로써, 귀하께 권리를 빼앗긴 불행한 국가의 영원한 감사를 표하며, 철쇄 하에서 인사를 올립니다.

서명

한국독립공화당(The Corean Independent Republican Party) 총재 및 사무총장. (주석 4)

주석
1> 민필호, 앞의 책, 338쪽.
2> 앞과 같음.
3>정병준,「신한청년당 결성과 우사 김규식의 독립운동」,『우사 김규식 서거 70주년 추모논문집』, 105쪽, 우사연구회, 2020.
4> 앞의 책, 107~108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독립운동의 선구 예관 신규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신규식, #신규식평전, #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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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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