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 수정 : 4월 6일 오전 10시 20분] 

코로나19 장기화로 문 닫는 회사들이 부쩍 늘었다. 2월 통계청이 발표한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1년 새 사라진 국내 일자리는 약 100만 개에 달한다. 특히 2020년 12월부터 상향 조정된 거리두기 지침이 발표된 이후 대면 서비스 업종의 일자리 감소폭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한 일자리 잠식 현상은 '대면 교습'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원가에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 발길이 끊긴 지 벌써 1년째이니 농부로 치면 한해 농사를 속절없이 망친 셈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몰려드는 수강생들로 '나홀로' 호황을 누리는 곳도 있단다. 다름 아닌 자동차운전학원이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코로나 시기 자동차운전학원이 성업하게 된 주원인은 다음과 같았다. 여러 분야에 드라이브스루 방식이 도입되면서 자가용 필요성이 증가한데다가, 불특정 다수가 밀집하는 대중교통을 꺼리게 된 사람들이 이참에 운전면허를 따려는 것도 운전학원 수강생이 늘어난 배경이라는 것이다.

방역수칙 강화가 대면 노동의 기회를 대폭 줄이고 그 여파로 없어진 일자리도 수두룩한데, 효과적인 방역수단으로 자가용이 각광받아 운전학원에 인파가 몰린다니 그야말로 역설적인 상황이다.

'잘 나가는' 운전학원이 갑자기 문을 닫았다

느닷없이 자동차운전학원에 대해 궁금증이 인 까닭이 있다. 얼마 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소재한 '뉴대성자동차운전전문학원' 기능강사들의 해고 투쟁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2019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운전면허 소지자는 3264만 명이다. 운전면허증을 소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자동차운전학원에서 연수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동차운전학원에서 자동차의 올바른 취급 및 조작 방법을 교육하는 사람'이 바로 기능강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학원에서 일하던 기능강사, 검정원 등 30명에게 계약해지 통보가 날아든 건 지난 2020년 7월이었다. 역시나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던 시기 발생한 정리해고였다. (근로기준법 제24조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사용자의 해고 회피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대상자 선정 △근로자대표와의 성실한 협의라는 네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만 '적법한 정리해고'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코로나 휴·폐업으로 인한 정리해고가 당연시되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충격이 무색할 정도로 '잘 나간다'는 자동차운전학원에서 돌연 해고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농성장 한 켠에 걸려있는 뉴대성지회 천막농성 투쟁 현황판 모습.
 농성장 한 켠에 걸려있는 뉴대성지회 천막농성 투쟁 현황판 모습.
ⓒ 임용현

관련사진보기

 
해고 된 운전학원 기능강사들이 농성 중인 장소로 찾아가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뉴대성자동차운전전문학원의 실질적인 사업주이자 토지주인 이아무개씨가 거주 중인 일산동구 백석동의 한 아파트단지 정문 앞 인도에 작은 비닐 움막이 차려져 있었다. 두 평 남짓한 이곳에서 지난 5일 전국자동차운전학원지부 이정원 지부장과 뉴대성자동차학원지회(아래 '뉴대성지회') 조합원들을 만났다. 이정원 지부장이 입을 열었다.

"저희(노동조합) 요구는 간단합니다. 토지주가 현재의 학원 부지에서 자동차운전학원 운영을 재개할 계획이라면 고용승계와 단체협약 승계를 보장하고 노동조합을 인정하라는 겁니다."

뉴대성자동차운전전문학원의 운영자는 송아무개씨였다. 그동안 멀쩡하게 운영해오던 학원을 무작정 폐업하겠다며 기능강사 30명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한 것도 그이였다. 그런데 송아무개씨는 속된 말로 '바지사장'에 불과하다고 이 지부장은 말한다. 애초 학원영업권(전문학원지정증)도 학원 부지도 전부 토지주 이아무개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이아무개씨는 2002년부터 현재의 학원 부지에서 자동차운전학원을 직접 운영하다가 이듬해인 2003년부터는 영업권과 땅을 제3자에게 빌려주는 방식으로 사업을 계속해왔다. 학원 문을 닫기 전(2020년 6월)까지 거둬들인 수익이 매달 2천여만 원에 이른다고 했다. 노는 땅에 운전학원 시설을 짓고 다른 이에게 임대해 다달이 큰 수익을 가져갔으니 말 그대로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이었다.

이아무개가 17년간 운전학원 임대차 사업을 이어오면서 운전학원의 운영자(임차인)는 두 차례 바뀌었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학원장이 새로 온다 하여, 또는 학원 이름이 바뀐다고 해서 덩달아 일하는 사람과 장소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운전학원 기능강사들은 토지주와 학원 운영자(임차인), 노동조합 '3주체' 간 합의를 통해 지난 17년간 고용이 차질 없이 승계되었다.

노조탄압 위장폐업

"2020년 7월 15일 학원이 폐업한 뒤에 노동조합은 이아무개 앞으로 내용증명을 세 차례 발송했어요. 향후 토지주가 직접 운영하거나 제3자에 임대차하는 방식으로 재개원 시에는 고용승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으로요. 당시 토지주는 학원 부지에 대한 추후 사용 또는 처분 일정이 불투명하다는 취지로 답변했고요."

토지주 이아무개는 임차인과의 이해갈등이 불거져 2020년 7월 학원 부지 임대차계약을 해지했다.  급기야 작년 10월에는 경기북부경찰청에 '뉴대성자동차운전전문학원'을 '호수자동차운전전문학원'으로 변경 신고하고, 새로운 임차인을 학원 운영자로 등록하는 절차까지 마무리했다. 폐업을 빌미로 기능강사들의 일자리를 없애더니, 어느새 재개원을 위한 작업까지 진행한 것이다. 

명백한 위장폐업이었다. 영업 종료와 계약해지 통보로 일터 밖으로 밀려난 노동자들, 그리고 노동자들의 울타리였던 노동조합을 이번 기회에  지워버리겠다는 꼼수였다. 더 이상 처우개선과 고용안정을 외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무권리의 일터'로 운전학원을 새단장하겠다는 뜻이었다. 
 
 해고된 뉴대성자동차운전전문학원 기능강사들이 '호수자동차운전전문학원'으로 재개원이 임박한 학원 앞에 고용 및 단체협약 승계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해고된 뉴대성자동차운전전문학원 기능강사들이 "호수자동차운전전문학원"으로 재개원이 임박한 학원 앞에 고용 및 단체협약 승계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 이정원(전국자동차운전학원지부 지부장)

관련사진보기


"작년 12월 13일 토지주 이아무개는 뉴대성지회 노동조합 사무실 주변에 철조망을 둘러쳤어요. 게다가 사무실 앞 노조 현판을 절취하고 출입문 자물쇠를 임의로 바꿔 달아 저희가 방송용 앰프와 플래카드, 그 외 각종 사무실집기를 반출하지 못하도록 막아놓았죠."

이정원 지부장과 뉴대성지회 조합원들은 토지주를 건조물 침입 및 노동조합 업무방해, 절도, 재물손괴 혐의 등으로 일산동부경찰서에 고소고발했다. 이 지부장에 따르면 노조 사무실로 사용하던 컨테이너는 이미 15년 전부터 학원 운영자와 뉴대성지회가 체결한 '노동조합 사무실 제공(편의 제공)' 조항에 따라 적법하게 점유 중인 건물이었다. 따라서 이아무개가 단지 토지주라서 노조가 점유한 시설 및 건조물에 대해 함부로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음은 명백했다.

사건을 맡은 일산동부경찰서 담당 수사관은 고발인(노동조합)의 신청 내용을 '혐의 불충분'으로 기각했다. "원래 내 소유인 건물에 들어갔으니 주거침입죄가 성립될 수 없다"는 토지주 이아무개의 진술을 받아들인 것이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경찰이 토지주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노동자들의 호소를 한 귀로 흘려듣는다는 사실이. '노조할 권리'를 탄압하는 부당노동행위는 둘째 치고, 남의 물건을 훔쳐가는 도둑 잡는 일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경찰의 첫째 임무 아니던가?

'사회공교육기관'이라는 허상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은 자동차운전학원 노동자들의 근무 실태에 가닿았다. 전국자동차운전전문학원연합회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전국에는 현재 350여 개의 자동차운전학원이 있고 기능강사, 검정강사, 행정사무 등 관련 종사자는 1만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 중 약 80%는 촉탁 및 기간제 계약직으로 임시 고용형태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해고된 30명의 뉴대성자동차운전전문학원 기능강사 중 정규직은 20명, 단기계약직(아르바이트)은 10명이라고 했다. 불안정 노동이 만연한 전국 자동차운전학원의 상황에 비하면 조금이나마 나은 여건이라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뉴대성지회 양성식 사무국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말이 좋아 정규직이지 10년, 2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만 받는 형편이에요. 매일 잔업과 토요일 특근으로 간신히 입에 풀칠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요새는 자동차운전학원이 워낙 흔해서 운전면허 취득을 위한 교육도 일종의 사교육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도로 주행 기능검정은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된 사항이기에 애초 국가가 직접 관장하는 '직영' 업무였다.

경제성장에 힘입어 1990년대 '마이카' 열풍을 타고 운전면허를 취득하려는 사람이 급증했고, 국가운전면허시험장의 (응시자) 적체 해소를 위해 1995년 운전전문학원제도가 도입되었다. 본래 지방경찰청장이 관장하던 운전기능 검정권을 민간에 위탁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 것이다. 이때부터 자동차운전전문학원들의 난립과 경쟁은 날로 극심해졌고, '사회공교육기관'은 민간 사업자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토지주 자택이 있는 경기도 일산동구 백석동의 한 아파트단지 정문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전국자동차운전학원지부 뉴대성지회 조합원들이 피켓 시위 중이다.
 토지주 자택이 있는 경기도 일산동구 백석동의 한 아파트단지 정문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전국자동차운전학원지부 뉴대성지회 조합원들이 피켓 시위 중이다.
ⓒ 임용현

관련사진보기


2000년대 초반 전국의 운전학원 노동자들은 16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고작 100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받았다. 이처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2001년 노동자들은 '전국자동차운전학원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도처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가운데 운전학원 사업주들은 해고와 폐업으로 응수했다. 2001년 노동조합이 출범하고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전국 46개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지만, 이 가운데 무려 9개의 사업장이 문을 닫는다.

뉴대성자동차운전전문학원의 경우 운전전문학원제도를 시행한 1995년도에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학원명은 '대성자동차운전전문학원'이었다. 실은 이번 폐업 사태가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2003년 3월에도 위장폐업 전력이 있었다고 한다. 노동조합 설립이 당시 폐업의 근본적인 이유였다. 물론 이때에도 토지주는 문제의 이아무개씨였다. 대성자동차운전전문학원 노동자들은 위장폐업에 맞서 6개월간 똘똘 뭉쳐 싸웠고, 끝내 이를 철회시켰던 소중한 경험을 간직하고 있다.

그로부터 17년의 세월이 지났다. 또다시 토지주는 학원을 폐업하고 새로운 학원 이름과 운영자를 내세우며 재개원 절차를 밟고 있다. 그것도 기존에 근무했던 기능강사들의 고용승계를 거부하면서 말이다.

유독 자동차운전학원에서 폐업이나 휴업이 빈번한 까닭은 허술한 법제도와 소극적인 행정처분의 문제가 무엇보다 크다. 특히 뉴대성자동차운전전문학원의 노조탄압 위장폐업 사태는 운전학원에 대한 지도‧감독 권한을 가진 관할 지방경찰청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근절에 가장 앞장서야 할 고용노동부의 책임 방기도 사태 장기화에 일조했다.

"(운전전문학원) 인가증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멋대로 영업권을 사고팔고 정당한 사유도 없이 휴폐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나요? 우리는 고용승계를 쟁취하는 날까지 싸울 겁니다."

노조 혐오에 찌든 사업주 한 사람 때문에 뉴대성자동차운전전문학원 노동자 30명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누구라도 억울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사업주의 첫 번째 위장폐업에 맞서 싸웠던 2003년 그때처럼 힘겹지만 꼭 이겨야만 하는 싸움을 다시 결심한 것이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내 삶을 지켜야 할 자격과 권리가 있다. 자동차운전학원에서 20년 가까이 일했던 기능강사들이 250여 일째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는 까닭도 바로 노동자'로서' 노동자'답게' 살기 위함이다.

시민기자는 지난 3월 31일 해당 기사에 대한 뉴대성자동차운전전문학원 토지주의 반론 입장을 유선 연락을 통해 청취했습니다. 토지주 이아무개씨가 주장하는 바의 요지를 다음과 같이 알립니다. 

첫째, '실질적인 사업주이자 토지주'인 이아무개씨와 '바지사장'에 불과한 송아무개씨라는 구도 설정은 애초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아무개씨는 "실제로 학원운영에 관여한 사실이 없음에도 고용승계의 책임을 자신에게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습니다.

둘째, "토지주와 학원 운영자(임차인), 노동조합 '3주체' 간 합의를 통해 지난 17년간 고용이 차질 없이 승계되었다"는 부분 역시 사실무근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이아무개씨는 "지금까지 고용승계와 관련하여 3주체 간 합의를 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위장폐업'의 행위 주체 역시 사업주인 바 토지주는 법적으로 고용승계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뉴대성자동차운전전문학원#전국자동차운전학원지부#공공운수노조#부당해고철회#고용승계보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