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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이다. 그리고 위안이 된다. JTBC 무명가수전 <싱어게인>에 출연 중인 30호, 이승윤이라는 가수의 등장이. 이 밤에 잠 못 자고 흥분하여 토론하게 만든 30호 자체가 새로운 장르다. 공연을 넘어 그의 생각에 고무되어 글을 끄적거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몸짓, 생각, 말 모두가 노래였다.

그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풍기는 아우라가 비범하면서도 솔직했다. '나는 배 아픈 가수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이 옹졸한 나의 마음에 쏙 들었다. 자신의 재능은 재능이 있는 사람을 시기하며 질투하는 것이라고 덧붙이는 말에는 웃음이 터졌다. 암. 그렇고말고. 왜, 새해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의 전화번호를 지우라고 하지 않던가. 

'스타의 냄새'가 풀풀 나는데, 정작 본인은
 
 오디션을 보러 나온 것이 아니라 심사위원에게 자신의 음악 세계를 선보이러 나온 듯한 느낌을 주었던 30호 가수 이승윤.
 오디션을 보러 나온 것이 아니라 심사위원에게 자신의 음악 세계를 선보이러 나온 듯한 느낌을 주었던 30호 가수 이승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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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천재성을 가진 뮤지션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보석이 나타났다며 열광한다. 해당 뮤지션은 처음에는 얼떨떨하다가도 이내 드디어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은 듯한, 확신에 찬 표정을 지으며 큰 소리로 심사위원들께 "감사합니다!" 하고 '야호' 하며 내려간다.

한국인으로서 오디션 짬밥이 몇 년인가. 아, 또 다른 슈퍼스타가 탄생했구나. 마침내 무대에서의 긴장이 풀리고 환희에 빛나는 눈빛. 나를 알아봐 주었다는 기쁨. 오디션 프로그램이 주는 짜릿함은 바로 그런 아티스트들을 보며 대중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에서 오는 것일 테다.

그런 그들의 특별함과 비범함은 그 자체로도 빛나지만, 예술가로서의 자기 확신이 보이기에 더 돋보인다. 내 길을 아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잘난 것을 알 수밖에 없다. 내가 택한 방향으로 열심히 나아가다 보면 무언가 있을 거라는 희망, 그 희망이 그 사람을 빛나게 한다.

평범하기 그지없고, 나를 믿어본 적 별로 없는, 나에게는 그 모습들이 항상 부러웠다. 물론 그들 나름의 고생과 노력이 바탕에 있었기에 기회가 왔을 때 재능이 꽃피운 것이었겠지만, 발아할 씨앗조차 없는 사람으로서 씁쓸한 마음이 들곤 했다. 가진 것은 뭣도 없으면서 시기, 질투의 화신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그의 무대영상을 처음 보았을 때의 전율을 잊지 못한다. 오디션을 보러 나온 것이 아니라 심사위원에게 자신의 음악 세계를 선보이러 나온 듯한 느낌. 마이웨이인 아웃사이더가 언더독으로서 판을 바꾸니, 한 '이상함' 하는 나도 나를 곱씹어보게 되었다.
 
 이승윤은 좀 달랐다. 칭찬을 어색해하고, 자기 요행이 생각보다 길다며 어리둥절해 한다.
 이승윤은 좀 달랐다. 칭찬을 어색해하고, 자기 요행이 생각보다 길다며 어리둥절해 한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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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서 '스타의 냄새'가 풀풀 났다. 그런데 이승윤은 좀 달랐다. 칭찬을 어색해하고, 자기 요행이 생각보다 길다며 어리둥절해 한다. 특히 김이나 심사위원이 "본인이 애매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애정이나 인정을 받아주시면 훨씬 더 멋있어질 것 같다"는 말에 눈물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엔터계에서는 적지 않은 나이이기에, 그리고 인디에서 오래 활동해온 그의 배경을 짐작해 볼 때 여러 사연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서태지, 국카스텐이 오르내리는 심사평을 듣는 사람이 보이는 이런 반응은 그의 음악세계 마냥 낯설었다. 

그는 이 방송 인터뷰에서 "제 인생에 있어서 칭찬을 받아들인다는 건 쉽지 않은 영역이다. '내 깜냥을 잘 알고 있다, 이것 이상으로 욕심부리지 말아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좋은 말에 항상 거리감이 있었다. 조언을 듣고 어쩌면 내 그릇이 조금 더 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넘어 근래 본 가수 중 가장 신선한 물음을 던졌던 그의 퍼포먼스를 생각해보면 어울리지 않는 반응이다. 평소에도 끼가 넘치고 장난기 많을 것 같은 매력적인 사람이 이런 반응이니까 신선하다. 이 사람 뭐지.

그런데 그래서 마음에 든다. 닮은 거라고는 애매함, 석 자뿐이면서 동질감을 느낀다. 그의 빛나는 재능과 다른 의미로 그의 생각과 철학이 반짝반짝하다. 그의 모호한 음악세계가 나와 같은 무수한 경계선에 걸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지점이 아닐까.

경계선에 걸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가수 이승윤

애매함, 이 단어는 어감부터가 잔인하기에, 회색지대는 더 추울 수밖에 없다. 분명하지 않고 꺼름칙한 느낌. 이것인지 저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계륵같은 말. 애매함이란 뭘까.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애매하게 잘난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인지에 대한 것이다.

나는 꽤 애매한 사람이었다. 현재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공부는 과목의 구애 없이 웬만큼 했으나 딱히 좋아하거나 재능이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림을 그려도, 글을 써도 그냥저냥. 이 길이 맞다고 해서 따라가기는 하는데 다른 길은 없나 자꾸만 두리번거리는.

전형적인 실력은 없으면서 어쩌다가 다른 길을 간 사람이 잘 되면 배 아파하는 작은 그릇이 바로 나다. 잘 봐주면 평균 이상, 냉정하게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스페셜리스트를 꿈꾸는 제너럴리스트는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

아주 짧게나마 눈이 반짝했던 것도 같긴 한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내가 모호한 위치에 있게 된 것은 보편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적당히 모범적이면서 집단에서 튀지 않을 수 있는 변신술은 어느 순간부터 내 본연의 색이 무엇인지 잊게 만들었다.

여기저기 눈칫밥으로 내 위치를 가늠하며 내가 여기 서도 되는가. 내가 이곳에 있어도 되는가. 의심하는 삶. 나로 오롯하게 서 있기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가. 내게 맞는 옷을 입기까지가 얼마나 험난한 사회인가. 다듬어지지 않는 원석이 보석이 되기보다 빛이 꺼진 돌멩이가 되는 것이 더 일반적인 이곳에서.

그런 면에서 나와는 결이 다르지만 30호에게, 이승윤에게, 호감이 간다. 그가 어느 때는 담담하게 어느 때는 눈물을 보이는 것을 보면서 아, 그가 음악을 하며 느꼈을 의심과 외로움, 우울이 고스란히 다가왔기 때문이다.

경계에 서 있고 개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평은 예술인에게는 무엇보다 가혹한 말이었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은 외로움이다. 이질감이다. 특히 이를 본인이 느끼고 있다면 그 자체가 상처 입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싱어게인>에서 음악을 길을 먼저 간 사람들에게 '너의 그 애매함이 모든 영역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너의 장점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만감이 교차한 듯 했다.

극찬을 들으면서도 희열보다는 의심과 당황이 공존하는 그의 표정을 보면서 이 예술가가 진심으로 잘됐으면 좋겠다고, 그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하길 바란다고 응원하게 되었다. 바로 그 순간에 내 감정을 조각이 보였기 때문에, 나도 내 모양을 잠시나마 되돌아볼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입이 쓰다. 하지만 위로가 된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만큼 나도 나라는 사람이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어느 순간 나도 나의 애매함에 볕이 들기를 바란다. 그러면 비로소 내 존재가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더이상 튀어나온 못이 아니라 반짝반짝하고 넓은 스펙트럼으로 자신감있게 음악 생활하길 응원한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 '30호' 가수에게 배가 아프다던 그, 그의 바람대로 이승윤으로서의 음악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즐기시기를 바란다.

##싱어게인##이승윤##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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