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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례에서 벌을 키우며 영상을 만드는 청년 유튜버 위대용 씨
구례에서 벌을 키우며 영상을 만드는 청년 유튜버 위대용 씨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전남 구례,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이 질문에 비단뱀처럼 반짝이는 섬진강과 노란 봄 편지와도 같은 산수유마을을 꼽는다면, 그는 어느 한때 구례를 잠시 스쳐 지나간 관광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거기서 몇 달이라도 몸 붙이고 살아본 이는 어떨까. 동네를 에워싸고 있던 들판의 색채며 자주 들르던 카페의 커피 향, 마실 삼아 한 바퀴씩 돌곤 하던 오일장의 시끌벅적한 소음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3년째 구례 '주민'으로 살고 있는 위대용(35)씨는 그런 단계를 모두 지나 이제는 같은 지역에서 일상을 꾸려가는 이웃들과 그들이 빚어내는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간다. 무엇보다 자기 또래 청년들의 생각과 고민, 지금 하는 일과 앞으로의 계획 같은 것이 궁금했던 그는 올해 <구례잇톡>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진행해왔다. 지역 청년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이른바 '본격 향토 청년 토크쇼'이다. 

향토 청년들의 신개념 토크쇼, 구례잇톡  

"내가 원해서 시골에 왔지만 그래도 겪게 되는 어려움은 있거든요. 당장 집 구하는 게 힘들고 먹고살아야 할 일도 막막하고. 이런 얘기를 도시에 사는 친구나 가족들과 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러게 누가 가랬어? 이런 소리나 들을 게 뻔하잖아요(웃음). 그런데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는 공감대가 형성되더라고요. 나도 그랬어. 나도 어려웠어.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거죠. 그럴 땐 이렇게 해봐, 하고 서로 조언도 해주고요. 이런 얘기를 더 많은 청년들과 나누고 공유하면 좋겠어서 시작한 게 구례잇톡이에요."

올봄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의 지원사업으로 선정된 구례잇톡은 현재까지 모두 네 편이 제작됐고 그중 세 편이 업로드되어 있다(마지막 회는 연말에 올라갈 예정이다). 호스트인 대용씨와 고정 패널로 등장하는 청년 두어 명이 함께 초대손님을 맞이하여 대화를 나누는 이 토크쇼는, 생각보다(?) 재미있고 발랄하다. 시골에서의 창업, 지역 환경과 공공미술 등 다소 심각해질 수 있는 주제를 한없이 진지하지도,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도 않게 풀어가는 솜씨가 엿보인다고 할까. 

구례잇톡 시청자 중 귀농·귀촌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농촌의 다양한 창업 교육과 지원에 관한 정보가 나오는 대목에서 유독 귀를 쫑긋 세울만하다. 하지만 집과 땅을 구하기 어려워 '내년에도 내가 여기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고백이나, 시골의 자연환경은 아름답고 완벽한데 정작 생활권 내 구조물은 회색 콘크리트로 도배되고 있다는 자조 섞인 한탄도 역시 허투루 흘려듣기엔 아까운 진실이다.  

"잘린 얘기가 훨씬 많아요. 영상이고 게다가 지역이 좁다 보니까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게 있죠. 그 때문에 초대를 거절하신 분도 많고, 나오신 분들도 처음엔 가면 쓰면 안 되냐, 목소리만 나가도 되냐 할 정도로 걱정이 많았어요. 막상 해보면 아무도 신경 안 쓰고 아무 일도 안 생긴다는 걸 알게 되지만(웃음). 그래도 말할 때나 편집할 때 수위 조절을 안 할 수는 없더라고요."

미디어의 역기능이 문제로 떠오르는 현대 사회에서 신상 노출은 누구에게나 불편한 이슈일 수밖에 없다. 하물며 익명 보장은커녕 어느 집에 숟가락 몇 개 있는지까지 다 안다는 시골에서는 어떨까. 하지만 대용씨가 영상을 제작하며 수위 조절에 신경 쓰는 이유가 꼭 그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조심스러움은 '뭐든 쉽게 발설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영상 문화를 경계하는 태도에 더 가까운 듯.  

"이쪽에서는 쉽게 말해도 저쪽의 입장은 또 다를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우리는 '공원을 왜 이렇게 만들었어?'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알고 보면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던 나름의 이유가 다 있더라고요."
   

양봉과 '잇' 시리즈, 그리고 반달곰스튜디오                 

구례잇톡의 만듦새를 보면 짐작하겠지만, 그는 이전부터 <구례잇티비>라는 채널을 운영해온 유튜브 경험자다. 2019년 3월에 문을 연 구례잇티비의 초기 영상을 보면 텃밭에 감자를 심고 원두를 볶아 커피를 내려 마시는 등, 이제 막 귀촌한 청년의 평범하면서도 조금은 낭만적으로 보이는 일상 풍경이 담겨 있다. 

그 이후 4월부터는 '구례잇허니'라는 제목을 달고 올라오는 양봉 콘텐츠가 주류를 이룬다. 영상 속에서 그는 벌통을 설치하고, 아까시 꽃 필 무렵이면 그 향기를 좇아 한밤중에 벌통을 옮기고, 종종 벌에 쏘여 비명을 지르는가 하면 강풍에 벌통이 날아가거나 지리산 반달곰에 의해 양봉장이 훼손되는 시련도 겪는다. 이쯤 되면 슬슬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많고 많은 '업' 중에서 그가 양봉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지가. 

"구례잇톡 1회에 모셨던 분들처럼 저도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를 통해 구례에 정착했어요. 2018년 봄부터 겨울까지 센터에 머물며 다양한 강의도 듣고 농사도 배웠죠. 양봉도 그때 처음 접했고요. 양봉을 강의로 들을 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직접 현장에 가서 보니까 자연 속에서 다른 사람과 부대낌 없이 혼자 일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마음에 들더라고요. 또 양봉은 초기자본 없이 벌하고 내 몸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거든요. 돈 없는 나 같은 사람이 해도 괜찮겠다 싶었죠."

체류 생활을 끝내고 독립하면서 양봉업자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앞으로 생산할 꿀에 '구례잇허니'라는 이름을 붙여 브랜드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유튜브에 도전했다. 그때야말로 영상 촬영과 편집에 완전 초보였는데도 일단 시작해 보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일하는 재미가 붙어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고.

"양봉은 6월에 밤꿀까지 따고 나면 거의 끝나니까 나머지 시간엔 영상 작업을 주로 했어요. 그러다 보니 차츰 외부에서 일이 들어오더라고요. 거기다 구례잇톡까지 하게 되면서 결국은 올여름에 '반달곰스튜디오'라고 사무실을 하나 냈어요. 운 좋게 전남청년창업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았죠."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대신 내 길을 만들며 간다                       

위대용씨가 여러모로 농촌 청년을 대상으로 한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고, 그는 이 점을 다행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현재 시골에서 이루어지는 청년 지원 정책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엔 아쉬움이 가득하다. 알맹이를 튼실하게 채우기보다는 보여주기식에 그치고 있다는 게 그 이유.    

"일례로 일자리가 그래요. 전남도에 기업이 청년 인력을 고용하면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그런데 이걸 경험한 청년들이 하나같이 얘기하는 게, 공짜로 사람을 써서 그런지 아무 일이나 막 시킨다고.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뭐 따고 풀 깎고 그런 일만 하다 보니까 끝날 때쯤 되면 다들 얼굴이 새까매져서는(웃음). 그런 일이 힘들고 단순해서 피하는 게 아니라, (일을 시키는) 이 사람이 정말로 나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게 느껴지니까 하기 싫죠. 또 배움도 없고 자기 커리어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데 누가 그 일에 만족하고 계속하려 들겠어요?"
      
청년을 지원하겠다면서 정작 청년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으려고도 않는 현실에 몇 번 부닥치다 보면, 이게 뭔가 싶어 기운이 빠지고 변화에 대한 기대나 열정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대용씨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아직은' 낙관적이다. 뭐든지 촘촘하게 짜인 도시에서는 '정해진' 길만 가야 할 것 같고 실제로 대부분 그 길을 따라가지만, 시골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나만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겠다는 걸 경험으로, 느낌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시골에 오고 싶어 하면서도 망설이는 청년들에게 이런 말을 들려준다.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지 말라고. 일단 저지르면 걱정했던 게 어느 정도는 다 해결이 된다고. 시골에 살다가 영 아니다 싶을 때 다시 도시로 돌아가면 되지 않느냐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시골 와서 알았어요. 구례잇티비나 구례잇톡만 봐도 그래요. 도시에서라면 생각도 못했을 걸 여기서는 시도하고 있잖아요. 시간을 자유롭게 쓰면서 내 생활의 패턴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거, 그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게 시골살이의 가장 큰 묘미 같아요." 
   
안락함과 낭만은 없어도 괜찮은 삶      
  
사람과 일에 치이며 사는 게 피곤해 도시를 떠나 시골로 왔는데, 요즘 그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 듣고 그걸 편집하는 '일'에 푹 빠져 있다. 스튜디오를 차린 이후로는 규칙적인 출퇴근을 반복하는 도시의 직장인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 하지만 내 걸 만들어가는 기쁨, 주변 이웃을 더 넓고 깊게 알아가는 즐거움, 일을 통해 점점이 흩어져 있는 청년들을 연결하는 재미가 있기에 당분간은 이렇게 살 예정이다. 

안락한 전원생활이나 낭만적인 리틀 포레스트와는 너무 거리가 먼 것 아니냐고? 맞다. 그래도 괜찮다. 도시에서는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몰랐던 진짜 나, 진짜 우리의 이야기를 발견할 기회와 행운이 지금 여기서 주어지니까. 안락함과 낭만보다는 진짜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아는 대용씨는 그래서 지금의 삶이 오히려 고마울 뿐이다.  
 

글 | 자야
사진 | 임현택
기획/진행 | 누리

Author 자야
새벽 요가, 산책길의 노래, 지치지 않을 정도의 텃밭일, 마음과 마음의 이어짐, 용기 있고 다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것을 좋아하는 함양 주민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홈페이지와 아름다운재단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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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권 지역에 필요한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과 공익활동을 지원합니다. 아름다운재단과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공동운영하며, 지리산을 둘러싼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의 시민사회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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