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의 영부인을 꼽으라면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이었던 엘리너 루스벨트와 함께 늘 맨 앞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사람이 애비게일 아담스입니다

그는 우리나라의 신사임당 같이 미국에서 국민적인 추앙을 받는 인물입니다. 미국의 2대 대통령인 존 아담스의 부인이자 6대 대통령인 존 퀸시 아담스의 어머니였던 애비게일 아담스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Learning is not attained by chance, it must be sought for with ardor and attended to with diligence." (스스로 열정을 가지고 추구하고 부지런히 보살펴야 얻을 수 있는 게 배움이다.)

며칠 전 선거가 끝나고 사업하는 친구로부터 그 결과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밝히는 카톡 글을 받은 적 있습니다. 그는 우리는 더 이상 이 사회를 이끄는 주도 세력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친구의 보수 성향을 잘 알고있는 나는 언론에서 보수 참패라고 부르는 선거 결과에 대한 그의 짧은 글에서 묻어나는 회한과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역시 사업 하는 친구라 현실 감각이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루 하루 생사가 걸린 치열한 시장의 경쟁판에서 팽팽한 긴장감과 냉정한 현실 인식이 없다면 사업이 망하거나 쇠퇴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유권자라는 소비자들에게 정치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목인 장날에 들고나와 팔아야하는 선거에서 소비자가 자기 물건을 고르지 않는다면 현실 감각이 있는 장사꾼이라면 당장 상품을 바꾸고 내용을 채워서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으로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이 변화는 사업의 성패와 존망이 걸린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아주 이상한 장사꾼이 있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좋은 물건인데 그걸 몰라보고 사주지 않는다고 소비자를 원망하고 역병이 돌아 장사 망쳤다고 한탄합니다. 같은 장날인데 내 물건만 왜 안팔렸을까 하고 원인을 내 물건 안에서 찾는 게 아니고  습관적으로 밖에서 그럴 듯한 이유를 찾아 떠넘기고 한풀이 하듯 굿판 한 번 하는 걸로 위안을 삼고 넘어가려 합니다.

그러다보니 엉뚱하게 장사 안 되는 이유가 가게 주인 헤어 스타일 때문인가 해서 머리도 삭발해보고, 뚱뚱해서 그런가 하고 단식 다이어트도 해보고, 포장지 문제인가 해서 색깔도 바꿔보고, 가게 이름이 나쁜가 해서 간판을 바꿔 달아 신장 개업도 해보고 그래도 신통찮으니 점쟁이 불러 운세나 살펴보는 참으로 한심하고 해괴한 짓을 하게 됩니다.

문제의 본질은 외면하고 장날 야바위꾼처럼 눈속임과 보여주기식 쇼만 계속하는 굿판을 벌이는 거지요. 쇼는 화려하지만 남기는 유산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니 소비자들에게서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서양 경귀 중에 "Substance over Style"(스타일보다는 본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사물과 이치에서 그 본질이 중요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지 멋부리기 스타일로 본질을 대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스타일은 단지 본질의 효과를 조금 도와줄 뿐입니다.

보수의 본질은 그들이 지향하는 핵심 가치인 자유와 그 자유를 구현하고 지키기 위한 민주적인 법과 질서를 수호하고 지키려는 정신과 의지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자유의 가치는 영원하지만 그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인 법과 질서는 사회의 변화와 시대 정신을 담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래 지향적인 개척 정신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스스로 경계하고 항상 깨어있어야 함이 보수의 규범입니다. 이를 게을리 하면 수구가 되는 것입니다

이번 선거 실패 결과를 놓고도 코로나가 모든 걸 삼켜버렸다, 막말 때문이다, 탄핵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둥 별별 말들이 무성하지만 이건 다 본질에서 벗어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 영향은 미쳤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들은 다분히 운의 영역에 있거나 내 맘대로 콘트롤 할 수 없는 변수들입니다.

선거에 유불리 따져가며 코로나를 선거 때마다 불러올 수가 있겠습니까? 말 실수를 안 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의 일을 되돌릴 수 있겠습니까? 이건 장사꾼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그야말로 운의 영역이지요. 운은 지나가며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결 같이 형체가 없는 허깨비에 불과합니다. 운에 기대서 장사하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보수라는 정치 상품의 본질에 더욱 충실하고 내용을 알차게 보강해서 미래의 시장을 이끌어갈 더 좋은 상품을 시장에 내놓는 걸로 승부를 내야하는 이유입니다. 그 과정에서 운이 도와주면 좋은 것이고 안 도와줘도 당황하거나 흔들임이 없어야 합니다.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시시각각 스스로 변해서 저만치 멀리 앞서 가고 있는데 세상 물정 모르는 보수 가게 주인은 뭉개고 주저앉아 세월에 떠밀려 한참 뒤쳐진 줄도 모르고 늘 하던대로 굿거리 장단에 맞춰 옛날 부르던 각설이 타령이나 불러대며  손님 없다고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초라한 꼰대 행상이 됐습니다.

그런 주제에 아직도 시장 한 귀퉁이 차지하고 장날 주인 행세나 하려고 하니 어느 누가 그 가게를 좋아하고 그 상품을 좋아하겠습니까?

선거 참패에 겉으로는 반성과 회한을 내보이면서도 안으로는 더욱 큰 소리로 울분과 원망을 토로하며 공감할 만한 증거 하나 내놓지 못하면서 황당한 투표 조작설에 솔깃해 하는 늙은 보수 상회 주인의 태도와 심경을 접하면서 문득 앞에서 전했던 애비게일 아담스가 남긴 배움에 관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번 선거로 보수 가게는 네 번의 큰 장날에서 연속 사업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그것도 소신이라고 완강하고 고집스럽게 실패를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고 시장을 믿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몇 안 남은 단골 고객에 더욱 집착하며 장 밑바닥에서 흐르는 민심을 살피고 거기서 배우려하지 않고 떠나간 손님을 원망하고 증오합니다. 그러니 실패와 상처의 고통 속에서도 얻는 교훈이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낡은 옛날 방식으로는 간판 앞에 내건 이름처럼 보수 상회의 미래에 미래는 없습니다. 배움(Learning)은 운으로(by chance)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늙었다고 경험에 의해서 지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늘 찾고 배우며 깊이 생각하여 자신의 사유 체계를 가다듬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한심한 장사꾼이 되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찾아나서 열정과 부지런함으로 깨우칠 때까지 배우고, 배운대로 실천하고 그리고 본질적으로 변화해서 속이 꽉 찬 새상품을 내놓는다면 다음 장날에서 언제든 소비자들은 좋은 물건 사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보수는 여기서 위로를 얻고 해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정치평론#보수개혁#선거결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회계사(미국 캘리포니아) 전직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Los Angeles 주재기자 역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