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이 되고, 산모의 자궁에서 수정란의 세포가 분열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마치 포도알과도 같은 세포 하나하나의 '운명'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장차 이들 중 어떤 세포는 눈이 되고 귀로 변한다. 또 어떤 세포는 심장이 되고 간을 구성하는 등 각각 제 갈 길을 간다.
세포의 이른바 '명운'은 생물학계를 넘어서 과학 전반에 걸쳐서도 가장 신비한 현상 중의 하나이다.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세포의 명운과 관련해서는 규명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
미국 하버드 의대, 오스트리아의 빈 의대, 스웨덴 칼로린스카 연구소 등 7개국의 공동연구팀이 최근 세포의 명운이 결정되는 기전 가운데 일부를 밝혀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연구에 참여한 학자만도 30명에 육박한다. 소속 기관은 17개다. 그리고 과학 학술지로써 영향력이 큰 '사이언스' 7일 자에 그 논문이 실려 더욱 주목을 받는다.
공동연구팀은 '뉴럴 크레스트'라 불리는 생쥐의 신경세포를 통해 미분화된 하나의 세포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생체 조직 혹은 기관으로 변하는지를 관찰했다. 사람이 엄마 뱃속에서 막 나왔을 때는 비슷비슷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다른 모습에 다른 직업을 갖는 등 각자의 인생 여정을 거치듯, 세포 또한 배아 세포 상태에서는 서로 차이가 거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역할이나 기능, 생김새 등이 다른 세포로 바뀌는 것을 추적했다.
연구팀의 이번 관찰과 실험은 세포 하나하나가 어떻게 변하는지에 주목하고 그 변화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핵산(DNA와 RNA) 등의 발현을 정밀하게 살펴봤다는 점이 특징이다. 연구팀이 이런 과정을 통해 알아낸 것은 세포가 일종의 '경쟁'과 '선택'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예를 들어 뉴럴 크레스트 세포가 심장 근육 세포가 될 수도 있고 얼굴 근육 세포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즉 경쟁 상태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고, 일단 어느 한쪽으로 선택이 이뤄지면 그쪽으로 속칭 '몰방'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컴퓨터나 수학의 알고리즘에서 '예' 혹은 '아니오'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방식과 유사하게 세포의 분화 경로가 정해진다는 얘기다.
연구팀을 이끈 하버드 대학의 피터 카첸코 교수는 "우리의 이번 연구가 세포의 운명 그리고 세포가 분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잘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세포의 분화 과정에서 뭔가 잘못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암세포의 증식을 꼽을 수 있다.
경쟁과 선택을 통해 세포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결론을 끌어낸 이번 연구는 그러나 그러한 경쟁과 선택을 이끄는 외부 환경 규명을 여전히 숙제로 남겨 뒀다. 세포가 처한 상황, 즉 어떤 외부 여건이 세포가 특정한 운명을 선택하도록 하는 거로 짐작되지만 그 같은 여건 혹은 조건들에 대한 탐색은 이번 연구에서 이뤄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