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에 아직도 '올해의 인물'(아래 올인)을 뽑는 회사가 있다. 저널리즘 역사로는 올인을 뽑은 게 채 100년이 안 된다. 미국 타임지가 뽑은 올인 1호는 1927년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했던 찰스 린드버그인데, 타임지는 아직도 뽑고 있다.
타임지 올해의 인물은 '진실을 밝히다 표적이 된 수호자들(guardians)'이 선정됐다.
<오마이뉴스>는 2000년 창간 첫해부터 올인을 뽑았다. 올인을 뽑는다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다. 누구나 '그 사람'하고 떠올릴 사람이면 좋겠으나 그런 사람은 많지 않고, 설령 선정한다고 해도 진부하다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아직 올인의 전통이 많이 남아있었던 2002년 다수의 미디어가 네덜란드인 축구감독 거스 히딩크를 호명했다).
지난 10일 부서에서 올인 얘기가 나오기에, 내 의견이 채택 안 될 것을 감수하고, '고통받는 나'가 어떠냐고 제안했다. 물론 채택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이 '철학적인' 제안을 하는데는 올해 벌어진 몇 가지 사건들이 작용했다.
[택시기사의 죽음] 어느 절박한 자가 떠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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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최우기 씨 장례 거행하는 택시 기사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전국택시운송조합연합회 소속 택시 기사들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에 참석해 지난 10일 카풀영업에 반대하며 분신한 고 최우기 씨의 장례식을 거행하고 있다. |
ⓒ 유성호 | 관련사진보기 |
모든 죽음은 슬프고 안타깝다. 복잡하게 상술하지는 않겠지만, 그분의 절박한 처지와 상관없이 차량공유서비스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언젠가는 택시를 대체할 것 같다. 택시를 대체하기 전에 130년 역사의 자동차 문화 자체가 바뀔 지도 모르겠다.
마침 이날 연말 모임이 있었는데 밴을 이용한 공유서비스를 써 봤다. 택시기사들에게는 안 됐지만, 밴을 모는 기사에게는 차량 공유가 새로운 기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전 기무사령관의 죽음] 광화문과 동화면세점 사이
가치 판단을 하기 힘든 문제다. 다만 1990년 이름을 바꾼 이래로 기무사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재수 전 사령관은 죽는 순간까지 박정희 아들과 우연찮게 육사를 다니고, 그의 누나가 대통령을 재임하는 시기에 우연찮게 정보탐지를 주 업무로 하는 기관의 수장이 된 죄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물론, 그의 반대편에는 고등학생 자녀들을 가슴에 묻은 수백 명의 부모들이 있다. 그러나 어느 죽음은 고귀하고 어느 죽음은 비루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출근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 대각선 방향인 동화면세점 앞에 차려진 기무사령관의 분향소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의혹] 모두가 불행하고, 불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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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8일 오후 서울시청 후문에서 서울교통공사 특혜입사 논란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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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엄청난 반전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 나온 단서는 미미하다. 그럼에도 사건이 이리 커진 것은, 취직이 어려운 시대에 내부자들끼리 작당해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놓지 않았을까 하는 외부자의 불신이 바닥에 깔려있지 않나 싶다.
이 정부는 전 정부와 전혀 다른 기조로 국정을 운영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이 정부가 나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얼마나 유능함을 보일까에 대해 의구심을 품다가 언젠가는 마음이 많이 돌아설 것이다. 채용비리 사건이 설령 맹탕으로 결론 나더라도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을 것이다. 취업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에는 아무 의미 없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사이 서울교통공사 의혹을 정치쟁점으로 만드는 데 앞장섰던 야당 원내대표 출신 의원이 딸의 채용 비리 의혹에 휘말렸다는 뉴스가 화제로 떠올랐다. 대중의 의심에 기대서 모처럼 정치력을 과시한 정치인이 이제는 그 의심의 제단 위에서 고통받아야 하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숙명여고 답안지 유출 사건] 그들도 억울할까
수험생 학부모가 아니라서 문제의 심각성을 덜 느꼈는데 고2·3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마치 자기 학교에서 있었던 일처럼 공분을 샀다고 한다. 행여 검경 수사가 쌍둥이들이 좋은 점수를 유지한 채 대입으로 가게 되면 그만큼 피해 받는다, 우리 학교라고 이런 일 없었겠는가,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할까? 쌍둥이와 그의 부친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서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자초지종을 알 수는 없으나, 마음 한켠에는 뭔가 더 큰 일을 덮기 위해 자신이 희생양으로 몰렸다는 생각은 있지 않을까?
[광주형 일자리] 기업 대 노동자, 이 오랜 싸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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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연합뉴스) 김근주 기자 = 현대자동차 노조가 5일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 앞에서 "광주형 일자리"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2018.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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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야 이 프로젝트가 울산에서 광주로 일자리 몇 개 떼어다 붙이는 게 아니라 완성차와 부품협력 업체들 사이의 봉급 차이를 줄이려는 원대한 함의가 있었음을 알게 됐다. 그런데 물 건너갔다. 물론 가장 많은 것을 쥔 현대차 오너 일가에게 모든 비난을 퍼부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원칙'을 지키고 '현상 유지'도 지킨 노조를 정의롭다고만 봐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이 밖에도 한유총, 남북관계, 페미니즘(미투) 등등 열거하려니 끝이 없다.
다들 내 고통이 제일 크다고 악을 쓰지만, 우리가 모르거나 또는 이해할 생각조차 없는 현상의 이면은 항상 존재한다. 이른바 가짜뉴스의 발흥이라는 것도 '나의 고통'을 가장 잘, 극대화해서 표현해줄 수 있는 매체에 대한 대중의 기대심리가 작동한 게 아닐까 싶다.
이 끝에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