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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다채롭다. 인도라는 땅 덩어리 안에는 너무나도 많고 다양한 문화와 자연이 공존한다. 그렇기에 인도를 한 단어로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인도'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그들의 말로는 성스럽다지만 우리의 눈에는 더럽기가 짝이 없는 갠지스강. 그 강에 화장한 시체를 뿌리는 동시에 목욕을 하는 인도인. 빡빡 머리에 야위었으며, 커다랗고 굴절도가 높은 안경을 쓴, 마치 마하트마 간디를 닮은 구멍가게의 할아버지. 도시의 길거리를 마치 제 집인 양 버젓이 돌아다니는 소와 개, 그리고 원숭이들. 그리고 그 소에게 먹을 걸 바치거나 절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우리는 그런 모습의 인도는 세상 어디와도 다른 독특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독특함의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 중 하나는 아마도 '동물'일 테다. 세상 어디에도 길거리에 그렇게 많고 다양한 동물이 마음껏 돌아다니는 데가 없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정말이지 사람과 동물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다.

'마하트마 간디'라고 한다면, 아무리 다채로운 인도라고 해도 통합의 인물이라고 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도의 모든 화폐에는 오직 간디만이 새겨져 있다. 사람들은 그를 인도의 국부(國父)라고 부른다. 아무래도 그는 인도의 많은 동물이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낀 듯 하다. 여기 간디가 했다는 '명언'을 보라.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의 국민들이 동물들을 어떻게 대하는 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낯설지만은 않다. 한국의 동물 보호 단체에서도 자주 인용하는 문구다. 인도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동물들이 거리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 나라의 국민들이 동물에 대해 '사람과 함께 살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테다. 그래서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인간사회라는 울타리 밖으로 동물들을 쫓아냈다.

혹은 동물들이 그 인간들의 사회에서 함께 사는 것이 너무나도 괴로워 알아서 도망갔다. 이렇게 보자면 간디의 말이 맞다. 그것은 그 나라 국민들의 도덕성을 보여준다. 당장 우리나라의 아파트단지만 해도 그렇다. 길고양이가 많이 찾아오는 아파트 단지와, 길고양이가 없는 아파트 단지는 그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억압 받는 이들은 모두 사회의 밖으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그런 인도의 거리에도 있어야 하지만 없는 이들이 없다. 아마 바라나시, 콜카타와 같은 북인도의 대표적인 도시를 여행한 사람들은 모두 이것을 느꼈을 것이다.

바로 여자들과 아이들이다. 거리에서 만나는 10개의 심장 중 3개가 동물이고 7개가 사람의 것이라고 한다면, 그 중에서도 성인 남자가 5개를 차지한다. 그리고 여자와 아이들은 각각 하나씩. 그만큼 인도의 길거리에는 여자들과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대표적 인도 영화 <세얼간이>로 우리에게 이름을 알린 란초 역(役)의 아미르칸이 주연한 인도 영화 <가지니(Ghajini, 2008)>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범죄자에 대한 여성 주인공의 대사다.

"당신 같은 짐승 때문에 여자들이 집 밖에 안 나오려 하는 거야. 얼마나 많은 짐승 같은 놈들을 우리가 경계해야 하죠? 신의 존재 조차 모르는 놈들이 수두룩 하고. 의사들도 절대 못 믿겠고, 가는 곳마다 왜 이렇게 못 된 놈들 투성이죠?"

이 대사에서도 보여주듯, 인도는 굉장히 가부장적인 사회다. 아마도 지구상 가장 가부장적인 사회가 아닐까 싶다. 인도의 거리에 여성과 아이들이 없는 것은 우리 나라 어느 아파트 단지에 길고양이들이 없는 이유와 같다. '여성을 혐오하거나 멸시하고 그들을 괴롭히는 사람들과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하트마 간디를 20세기 가장 도덕적인 사람의 반열에 올린다. 하지만 그렇게나 동물에 대한 도덕성을 강조했고 모두의 존경을 받는 마하트마 간디도 여성에 대해서는 굉장히 억압된 사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간디는 심지어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냈다. 간디는 많은 인도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른 장본인이었다. 때문에 '비폭력불복종'이라는 가치는 좋은 것이라 생각하지만, 간디라는 인물을 나는 더 이상 존경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 간디는 동물의 권리에 대해선 신경을 썼을지는 몰라도, 여성의 인권에 대한 문제는 외면했고 오히려 더 폭력적으로 굴었기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던가. 사회에서 누군가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흔히 문제도 없는 줄로 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보이지 않는다고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다. 누군가 부재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억압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그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동체 사회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다.

우리는 쉽게 대한민국은 치안이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불특정 여성을 타깃으로 한 범죄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여성인 한 친구가, "멀리에 있는 카페에 가고 싶지만 늦은 밤에는 위험해서 갈 수가 없다"라고 한 것.

남자인 나는 우리 동네는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남성들은 그런 여성들에게 말한다. "밤에는 혼자 다니지 말고 남자들이랑 같이 다녀"라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말이긴 하다. 그래도 문제 자체는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여성들은 그렇게 혼자서는 사회로 나오지 않게 되며, 밤거리에서 점차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면허를 취득해 차를 뽑아 거리로 나간 여성에게 사람들은 "김여사"라고 조롱하고, 노골적으로 "여자가 집안일을 해야지, 무슨 운전을 해"라고 말한다. 아이를 출산하고 홀로 육아를 하느라 힘든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카페에라도 가면 "맘충"이라며 조롱하고 비난한다. 여성들은 그래서 더 사라지게 된다. 여성에게 억압적이고 여성을 혐오하는 분위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느끼고 사라진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쉽게 자신의 주변에는 성소수자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미디어에서 나오는 성소수자 이야기를 오직 강 건너 남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한다. 그런데 여러 통계에 따르면 성소수자는 10% 정도의 비율로 있다고 한다.

그러니 당신의 주변에 없을 리가 없다. 당신의 주변에 성소수자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없을 거라고 처음부터 생각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 때문이다. 보는 데에 불편함이 있는 사람(a.k.a 시각장애인)이 없을 거라고 판단해 인도(人道)에 점자블럭을 설치하지 않기 때문이고, 걷는 데에 불편함이 있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판단해 도로 곳곳에 턱을 만들어 두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모두 잘못된 것. 우리는 우리 사회에 누가 부재한 지에 대해 생각하고 잘못된 것들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간디의 말은 틀렸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 국민들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아닌, "동물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는 것이다." 동물은 챙길지언정 여성과 아이들을 억압하는 인도 사회는 절대로 도덕적이라거나 위대하다고 말 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듯이 이것은 비단 인도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도덕적이며, 얼마나 위대한가? 도덕과 위대함을 향해 얼마나 열심히 움직이려 하는가? 우리 사회에는 누가 부재하며, 누가 고통 받고 있는가? 나는 그들을 다시 사회로 나오게 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할 것인가?

매일, 세상은 좀 더 모두에게 나은 방향으로 변해가야 한다. 그 누구도 집밖으로 나오기를 꺼리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한 사회는 정치인의 대단한 정책이 만드는 것이 아닌, 모든 우리, 각자 개인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인도#페미니즘#미투#간디#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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