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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이 비등하고 있다. 하기야 우리 사회에서 국회는 언제나 국민들의 불신 대상 1위를 점해왔다. 도대체 우리 국회에서 무엇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것인가?

우선 우리 국회의 모습을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의 눈에는 항상 정쟁으로 지새는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실제 우리의 정당들은 항상 상대당을 적으로 규정하고 잘못은 상대에게 전가하면서 사시사철 대치하고 당 소속의원들은 일사불란하게 행동을 같이 한다.

국회의 본업이 '정쟁'인가?

현재 'party'라는 영어 단어는 모두 '정당'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정당의 '당(黨)'이라는 한자어는 예로부터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논어』에도 "君子, 群而不黨"이라 하였다. 즉, "군자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만, 무리를 이뤄 사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자(朱子)는『사서집주(四書集注)』에서 '당(黨)'에 대하여 "相助匿非曰黨", 즉, "서로 잘못을 감추는 것을 黨이라 한다."라 해석하고 있다. 이렇듯 '당(黨)'이라는 글자는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함께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정당'들은 이렇듯 좋지 못한 의미를 담고 있는 '당(黨)'이라는 용어의 명칭을 사용하면서 '당(黨)'의 본래 의미를 너무도 충실하게 '실천'하기 위하여 '모두 모여서 잘못을 감추고',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고', '싸우고' 있는 셈이다.

국회 본업에 대한 '직무유기'

몇 달 전에 한 국회의원을 만나 여러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내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들었다. 국회의 여러 문제를 얘기하던 중 국회 전문위원 제도에 대한 대화도 나눴는데,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제도 개혁에 국회의원들이 소극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예를 들어, 상임위에서 법률안을 낭독하는 그런 일까지 국회의원이 해야 하느냐라는 "짜증"도 나온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제까지 유신과 국보위 시절 박정희와 전두환이 국회를 권력의 들러리로 만들고 거수기로 전락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제를 의원들이 왜 고치지 않고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저 이 제도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잘 몰라서이겠거니라는 생각이 많았다. 그리고 이미 수십 년 동안 워낙 관행화되어서 그런가도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알고 보니 국회의원들이 직접 법률을 세세하게 검토하고 성실하게 토론하는 것이 귀찮아서였다니!

입법 과정이 부실해서는 국회의 정상화 기대하기 어렵다

기본을 무시하고 본업에 충실하지 않은 그 어떤 것도 부실화며 왜곡이다. 예를 들어, 집을 지을 때 기초와 기둥이 부실하게 되면, 그 위에 아무리 호화찬란하게 장식을 해본들 항상 위태위태하고 언젠가 반드시 붕괴될 사상누각일 뿐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지금 국회는 여러 문제가 존재한다. 필자는 그 많은 문제 중에도 국회가 국민이 부여한 본업인 입법 활동을 충실하게 수행하지 않고 있는 이러한 행태가 가장 핵심적인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국회의원에 부여한 본업이 왜곡되니 모든 것이 주객전도될 수밖에 없다. 1년 사시사철 매일 같이 서로 싸우고, 혹은 '지역표밭다지기'가 마치 핵심 본업인양 본말전도되며 또 앞을 다투어 주목 받는 '연예인'이 되고자 한다. 이러한 현실은 국민이 명령한 입법 활동에 대한 직무유기다.

이러한 국회 시스템 하에서 아무리 높은 사명감으로 무장한 유능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된들 그것이 발휘되기 어렵다. 이를테면, 노회찬 의원이 많은 좋은 입법을 추진하지만, 그것들은 상임위에서 의원들의 토론과정이 아니라 대부분 '검토보고서'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우리와 같은 '비정상적' 입법 시스템을 가진 나라는 없다

지금 세계 어느 나라 의회도 우리 국회와 같은 입법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나라는 없다.
미국의회에서 각 상임위원회에 회부된 법안은 상임위원장에 의하여 소위원회에 넘겨지는데, 소위원회는 꼼꼼히 조문 하나하나를 심사하는 축조(逐條)심사를 수행한다. 물론 이 모든 활동은 의원들 자신들이 직접 수행한다.

독일 의회는 각 정당 내 상임위원회마다 소그룹이 운영되고 여기에 각 정당에 소속된 정책연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서 짧게는 6주에서 길게는 6개월에 걸쳐 상임위 의제를 사전에 토론하고 조율한다. 따라서 당연히 의원 개개인의 전문성도 향상되고 각 정당의 전문성도 당연히 증대되며 이는 의회의 전문성 제고로 이어진다.

소그룹에서 채택된 사항은 대부분 그대로 정당 전체의 견해로 채택된다. 프랑스 의회 역시 본회의든 상임위원회든 발언을 포함한 모든 진행이 의원들에 의하여 직접 수행된다. 의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법안의 각 조문에 대한 조문 투표를 실시한 뒤 법안 전체에 대한 전체 투표를 실시한다.

흔히 우리보다 정치발전 수준이 한 단계 '낮춰 보는' 타이완의 의회, 입법원의 입법과정도 우리 국회보다 훨씬 성실하고 꼼꼼하게 수행된다. 예를 들어, 타이완의회인 입법원은 「식량관리법(糧食管理法)」라는 단 하나의 법안 심사를 위하여 2013년부터 무려 27차례의 1독회와 위원회 심사, 대체 토론 및 축조 심사의 2독회를 거쳐 최종적으로 2014년 5월 30일의 3독회에 의하여 수정되었다.   

협치? 입법의 '정상화'에서 비로소 가능하다

지금 많은 사람이 '협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필자는 협치도 국회가 현재와 같은 부실하고 왜곡된 입법 과정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우선 산더미와 같이 쌓인 입법 활동 수행하느라 물리적으로 싸울 시간 자체가 없고, 또 아무리 우리 의원들이 뛰어난 '전투성'을 타고 났다고 해도 실제 같은 자리에서 입법 내용을 치열하고 구체적으로 토론하는 과정에서 서로 이해하고 타협하고 협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면 공통점이 많아지게 되고, 자연히 협치가 가능해진다. 반면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구체적인 공동토론 과정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정쟁 차원의 추상적인 '이념' 대결로 치닫기 쉽다. 국회의 정상화 없이, 촛불이 명령한 바의 민주주의의 전진은 없다. 그리고 국회의 정상화는 국회의 본업인 입법의 정상화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국회#입법#국회 정상화#촛불#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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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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