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화) 오후 4시, 여수경호초등학교에서 학예회가 열렸다. 파란 가을 하늘, 금잔디가 깔린 운동장 야외무대에서였다. 그동안 갈고 닦은 기예를 발표하는 재학생(42명)과 학부모들은 들떠 있었다. 3년 전 통폐합 대상이었던 학교가 되살아나 주민과 함께 즐거운 잔치를 벌이게 됐기 때문이다.
폐교 직전보다 학생이 4배나 증가해
역사와 전통이 있는 경호초등학교는 여수에서 뱃길로 5분쯤 떨어진 경도에 있다. 개교(1968.4.19.) 이래 49회 졸업생을 포함해 1953명을 배출했다. 많을 때는 435명의 학생이 다녔다고 한다.
그랬던 학교가 3년 전 학생이 11명밖에 안 돼 문 닫아야 할 판이었다. 기자가 5년 전 학교를 방문했을 때는 낡은 건물과 관리되지 않은 운동장으로 생기를 잃고 있었다.
경도는 지금 변화하는 중이다. 27홀 골프 코스가 생기고 대기업에서 리조트를 건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일조량, 청정한 남해와 갯벌에서 나오는 해산물, 관광 1번지로 떠오르는 여수가 관광객을 부르는 동력이 되고 있다.
호사다마일까? 취학 학생 수가 줄기도 했지만 골프장 건설로 주민들이 도시로 떠나 학교는 통폐합 대상이 됐다. 이때 구원 투수가 등장했다. 3년 전 새로 부임한 신제성 교장과 교사, 학생, 학부모는 연찬회를 개최해 학교를 바로 세우기로 했다. 교장과 교감이 손수 페인트칠을 하자 교사들도 동참해 교실 환경을 개선했다. 학교는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야외무대 공연 '늘품경호예술한마당'
교실과 운동장 환경 개선을 마친 학교는 내실있는 프로그램을 짜기 위해 노력했다. 아래는 학교의 역점 사업이다.
▲4계절 제 빛깔 행복학교 ▲에코스쿨(동식물 기르기, 텃밭 가꾸기, 친환경체험학습, 요리체험) ▲동아리 및 방과 후 학교활동(댄스, 축구, 그리기, 골프, 영어, 중국어, 현악, 국악, 도예 등)
학교 역점 사업을 통해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뽐내는 기회가 가을 학예회다. 100여 명이 참석한 가을 학예회 이름은 '늘품경호예술한마당'. 신제성 교장이 '늘품'에 대해 뜻풀이해줬다.
"'늘품'은 나날이 품성이 좋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어려운 아이들도 있어서 조금씩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붙인 이름입니다. 지금은 작고 소박한 모습이지만 작은 소리들이 모여 하나의 큰 울림이 되듯 우리 아이들이 이 자리를 통해 더 큰 날개 짓으로 날아오르길 기대해봅니다."개회식에 이어 공연이 시작됐다. 뿌리패 풍물놀이에 이어 전교생이 참여하는 국악 공연이 진행됐다. 이어서 유치원생들의 깜찍한 '레크댄스'를 본 관중석에서는 "귀엽다!"는 탄성이 나왔다.
전교생이 참여한 세계적 명작 '배고픈 애벌레'는 학부모인 홍현정씨가 연출했다. 중국어로 구연된 '배고픈 애벌레'는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기까지의 과정을 동심으로 그려냈다.
8년 전 서울에서 여수로 이사온 홍현정씨는 1학년 김형우 학생의 학부모다. 형우가 등교하려면 여수 신월동에서 경도행 배를 타야만 한다. 신월동에 새로 지은 학교가 있는데도 형우를 경호초등학교로 보낸 이유를 들어보았다.
"학교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까지 보내요.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배려해 주는 모습이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또 작은 학교의 자연 속에서 아이를 교육하고 싶어요."2~3학년이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동안 화음이 맞지 않아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틀려도 괜찮다!"며 흐뭇해하는 학부모들이 박수를 보내는 사이에 한 학생이 "망했다!"고 말하자 관중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주하성(1년) 학생의 가족의 연주시간이다. 아빠가 기타, 엄마가 피아노, 하성이가 드럼, 하성이의 여동생은 노래를 부르고 남동생은 실로폰을 들었다. 하성이 엄마가 마이크를 잡았다.
"집에서 가끔 노래를 부르며 연주를 하는 오합지졸입니다."오후 늦게 시작한 학예회에선 선배들도 기량을 뽐냈다. 학교를 마친 중학생 선배 5명이 찾아와 후배들의 공연을 구경했다. 그 중에는 골프 국가대표를 꿈꾸는 이우현(종고중2) 학생도 있었다. 골프장에서는 경호초등학생들이 골프를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학교 가까운 곳에 있는 골프장에서 기량을 연마한 이우현 군은 전국에서 열린 중등부 골프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잠깐 쉬는 사이 무대 앞에선 이우현군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제가 다닐때는 학생이 너무 적어서 좀 그랬어요. 학생수가 많아진 지금 후배들이 예쁘게 공연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이지영 학부모회장이 야외에서 열린 학예회의 의미를 말했다.
"그동안은 리조트를 빌려 학예회를 했어요. 운동장에서 학예회를 했다는 건 학생수가 많아졌다는 걸 의미하죠. 2014년 제 아이가 전학올 때는 11명이었거든요."
드디어 모든 행사가 끝났다. 폐회를 알리려 무대에 오른 신제성 교장이 마이크를 잡는 순간 전교생이 "노래해! 노래해!"를 외쳤다. "노래 못해요"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성화가 빗발쳤다.
하는 수 없었던 신제성 교장이 마이크를 들고 "여행을 떠나요~!"를 부르자 운동장은 환호의 도가니가 됐다. 교감과 학부모들은 어깨를 맞잡고 열차놀이를 했다. 무대에 올랐던 학생들도 흥겨워 춤을 췄다. 여수 바다처럼 아이들의 푸른 꿈이 익어갔다.
덧붙이는 글 | 전남교육소식지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