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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주의는 닫힌 세계를 선호합니다. 자기들의 사상, 자기들의 신앙만이 옳다고 확신하기에 그 단점을 보지 못하고 또 보려 하지도 않지요. 따라서 독선이 그들의 불가피한 특징이 됩니다. 자기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소통할 가치도 없다고 믿으며, 이견자들은 이단이나 적으로 통제와 배제의 대상이 됩니다."

전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이자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한 한완상의 회고록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에 나온 내용입니다. 극좌든 극우든, 한쪽에 치우친 근본주의자들을 경계해야 할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는 지적이죠. 진보주의자와는 달리, 근본주의자들은 자기 성찰이나 소통의 과정도 없고 창조적인 자기 파괴도 없기 때문에 끊임없는 마찰과 폭력, 전쟁을 일으켜 배타적인 세를 불리기에 급급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책겉표지 한완상의 회고록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책겉표지한완상의 회고록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 후마니타스
실로 그렇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겪은 '숙부의 고통과 이력'이 자신에게 색깔론 공격의 빌미가 된 것, 1970년 서울대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기교협)에 몸담고 일하면서 겪은 고충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조작한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돼 군사법정에서 3년 구형받은 일들, 그리고 해직 교수로 미국의 망명 생활을 겪었던 일들에서부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요직을 거치며 우리사회의 통일, 외교,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겪은 일들 속에서, 저자는 그런 극단주의 폐해를 뼈저리게 겪었던 것입니다.

"1992년 가을 부시 미국 대통령 밑에는 부시의 뜻과는 다른 이른바 네오콘 세력이 은밀하게 냉전 대결식의 정책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지요. 당시 미국 대통령 비서실장은 럼스펠드였고 그가 네오콘의 좌정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이 부시 대통령의 지극한 신임을 받고 있던 주한민국 대사를 무시하고, 남북 관계에 다시 찬물 끼얹은 결정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그 결정이 다음 해 출범하는 YS 정부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라는 사실을 당시 아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268쪽)

1991년 12월 13일 남북 고위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 서명이 이뤄졌고, 그해 31일에 남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요구와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허용한다고 선언했는데, 그 뒤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한다는 미국 펜타곤의 주동자들이 한반도 평화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지적입니다.

그런 네오콘 세력들 역시 남북한 대치국면 속에서 전쟁을 부추기고 군수물자를 팔아넘기려 혈안이 된 미국내 극단주의자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그것은 겉으로는 한미군사훈련을 벌이면서 안으로는 사드배치를 주도한 작금의 주동자들과 그 결이 다르다 할 수 있을까요?

"저는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을 내리기 30분 전, 그러니까 3월 10일 오전 10시 반경 문재인 후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헌재 심판은 저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문 후보도 동의하면서 8대 0으로 탄핵을 인용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제가 그때 그에게 전해 주고 싶은 메시지는 헌재 판결이 아니었습니다. 걸출한 두 카리스마적 지도자였던 YS와 DJ보다 지금 문 후보가 더 튼실한 지지를 받고 있고, 특히 촛불 명예시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음으로 값싼 통합의 유혹에 빠지지 말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330쪽)

이른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있기 전 문재인 후보와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그는 당시 문재인 후보의 외곽에서조차 적폐청산보다는 화해와 통합 쪽에 무게중심을 두라고, 그를 위해 연합과 연정을 해야 한다고 소리치지만, 광장 시민들이 밀어주는 힘을 빌어 새로운 역사의 선봉장에 당당하게 서라고 격려했던 것입니다. 그 역시 촛불 열망의 한 시민으로서 요청한 바였겠죠.

그가 이 책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청산 없는 통합은 꼼수요 정치공학적인 편법에 불과할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진실 규명과 청산이 함께 이뤄지면서 나타나는 화해와 통합이야말로 보다 건실하게 진일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제대로 된 환경평가도 없이 미국의 극우주의자들과 손잡고 추진한 우리나라의 '사드 열혈배치론자'들도 이 책과 함께 진정한 국익과 한반도 평화를 깊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4대강 사업에 대한 타당성과 그 절차까지도 철저하게 규명하여 그에 따른 적폐를 청산하는데 함께 지혜를 모았으면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는 최선의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회고록은 회고록 그 자체로만 끝나는 게 아니겠죠. 과거를 돌아보는 이유는 보다 나은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고 대비하기 위함이 그 목적일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본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친일파세력들, 군부독재자들, 막대한 이득을 탐하는 개발지상주의자들, 그리고 그들과 손잡고 있는 부역하는 '영혼없는 박제화된 종교지도자들'은 그야말로 극단주의자들이 아닐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활개친다면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어 먹는 '나라다운 나라'를 세울 수는 없겠죠. 그래서, 이 책의 제목과 같이, 진정한 나라를 꿈꾸고 함께 세우고자 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값싼 통합론자들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백성들 또한 극단주의에 치우친 극우론자들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극우론자들 스스로 이 책과 함께 자기 성찰과 창조적인 자기 파괴를 행한다면, 그 또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진정한 동역자들이자 참된 영혼의 소유자로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 한완상 회고록

한완상 지음, 후마니타스(2017)


#나라다운 나라#네오콘 사드배치#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머고#한완상#미국의 극우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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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억력보다 흐릿한 잉크가 오래 남는 법이죠. 일상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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