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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이나 워터파크처럼 순간의 즐거움이 아닌 오랜 기억을 담을 수 있는 곳. 그런 곳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우리 어디 가볼까? 역사공부도 하고, 엄마랑 여행하며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는 그런 곳, 어때?" "좋아요! 엄마"

역사적인 곳 하면 다들 경주를 떠올린다. 경주의 석굴암이나 안압지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는 경주만큼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으면서도 경주보다는 덜 알려진 옛 백제의 땅 충남 부여를 방문했다.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는 백제국의 흥망성쇠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찬란한 백제문화와 함께 패망의 아픔도 어린 곳이다. 백제 궁터의 인공 연못인 '궁남지'가 경주의 '안압지'보다 앞서 조성되었으며 '궁남지'의 아름다움을 보고 통일신라가 조성한 인공연못이 '안압지'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인공연못하면 떠오르는 것이 '안압지'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삼국의 흥망성쇠에서 패망국과 통일국으로 나뉘어진 운명때문이 아닐까.

충청남도 부여  궁남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궁남로 52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 백제 궁터의 남쪽에 지어졌다하여 궁남지라 부른다. 연못 중심의 작은 산에는 정자가 놓여있다.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를 사랑한 백제 무왕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충청남도 부여 궁남지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궁남로 52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 백제 궁터의 남쪽에 지어졌다하여 궁남지라 부른다. 연못 중심의 작은 산에는 정자가 놓여있다.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를 사랑한 백제 무왕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 이상명

서동공원입구 궁남지가 소재한 충남 부여 서동공원
서동공원입구궁남지가 소재한 충남 부여 서동공원 ⓒ 이상명

충청남도 부여는 옛 백제의 수도였던 만큼 왕궁지도 남아있고 수많은 불교의 유적들과 왕릉의 유적들도 남아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궁남지와 부소산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많은 유적들이 있다. 이렇게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백제이건만 화려함과 웅장함만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패망의 슬픔 또한 많은 곳에 흔적을 남겼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낙화암이다. 백제 여인들의 슬픔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충남 부여 성흥산 대조사 입구 돌계단을 올라가면 대조사가 나온다
충남 부여 성흥산 대조사 입구돌계단을 올라가면 대조사가 나온다 ⓒ 이상명

충청남도 성흥산 대조사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760
충남 부여 성흥산에 소재한 대조사. 
창건주에 대한 설이 둘로 나뉘어진 절로 겸익과 담혜가 그 주인공이다. 그러나 둘 모두 6세기 경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고려 원종 때 중창되었고 1989년과 1993년, 1994년에 명부전과 종각, 미륵전이 각각 신축되었다. 또 이 절에는 충남 문화재 90호인 삼층석탑 1기가 있다.
충청남도 성흥산 대조사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760 충남 부여 성흥산에 소재한 대조사. 창건주에 대한 설이 둘로 나뉘어진 절로 겸익과 담혜가 그 주인공이다. 그러나 둘 모두 6세기 경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고려 원종 때 중창되었고 1989년과 1993년, 1994년에 명부전과 종각, 미륵전이 각각 신축되었다. 또 이 절에는 충남 문화재 90호인 삼층석탑 1기가 있다. ⓒ 이상명

대조사 석탑 충남 부여 성흥산 대조사 삼층석탑
대조사 석탑충남 부여 성흥산 대조사 삼층석탑 ⓒ 이상명

충청남도 공주군으로 수도를 천도했던 백제가 불안한 왕실을 유지해오다 보다 강성한 왕실을 조성하기 위해 538년인 성왕 16년 드디어 부여로 수도를 천도했다. 백제역사 중에서도 수도를 부여로 천도한 이후의 백제역사를 문화 융성기로 칭한다. 삼국시대 중에서도 백제가 부여로 수도를 옮긴 후의 문화가 가장 예술적이며 이 때 조성된 백제문화는 일본 문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입혔다. 또한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백제문화 속에서 백제인들의 수준 높은 예술혼을 엿볼 수 있다.
국립부여박물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1번지 국립부여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1번지 국립부여박물관 ⓒ 이상명

아이들과 가 본 부여의 백제 유적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궁남지'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깊히 각인될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백제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은 일본의 정원 문화가 이 '궁남지'를 보고 형성되기 시작됐다는 것을 아는 이가 혹 있을까 싶다.

오늘 날 일본으로 향하는 수많은 해외 관광객을 보며 일본 문화를 이끌어 준 백제문화의 흥망성쇠가 가슴 아프게 다가온 시간이였다. 123년 동안 한 국가의 수도였던 부여. 아이들과 함께 느껴 본 부여시대의 찬란함과 패망의 아쉬움. 이제 역사 책 속에서 백제의 수도 부여를 만난다면 당당하면서도 기품있는 왕도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충청남도 부여#백제수도 부여#부여궁남지#부여성흥산 대조사#대조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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