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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주도한 혐의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월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피의자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주도한 혐의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월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피의자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그는 누구보다 법에 능통하다. 고등고시에 합격한 뒤 검찰은 물론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을 거쳤고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12년간 입법자인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다. '초원복집사건'으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을 때와 '블랙리스트사건'으로 특별검사팀 수사를 받을 때, 자신의 법률 지식을 동원해 법망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별명은 법꾸라지(법률+미꾸라지)다.

하지만 그도 특검의 수사그물을 통과하진 못했다. 특검은 지난 2월 7일 김 전 비서실장을 구속상태로 법정에 세우기까지 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인물이 아니다.

'피고인 김기춘'은 자신의 혐의, 직권남용권리방해행사죄(아래 직권남용죄)를 잘 안다. 서울대 박사논문으로 <형법개정시론(1984)>까지 썼던 그다. 직권남용죄 성립여부를 두고 권한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다툴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잘 안다. 그래서 김 전 실장 변호인단은 그가 블랙리스트를 작성, 진보성향 문화·예술인을 배제하도록 지시한 일이 "문화·예술정책"이었다고 항변한다.

법꾸라지의 반격

"이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의 반대세력이 직권남용이라는 잘못된 논리로 접근하는 정치적 사건이다. 대통령의 문화·예술정책이 범죄가 될 리 없다. 진보세력에 편향된 정부 지원을,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려는 것은 범죄가 되지 않는다(2월 28일 1차 공판준비기일, 김경종 변호사)."

"국립대학교에서 장학금 지급 기준을 성적이 아닌 가정형편으로 바꾼다는 것은 좋은 판단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빈곤층이 정부의 주요 지지층이니 혜택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블랙리스트 작성이 직권남용이라면, 교육감이 일선 학교의 국정교과서 보조교재 사용 신청을 반려한 것도 직권남용이냐(3월 15일 2차 공판준비기일, 이상원 변호사)."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직권의 남용'이란 공무원이 일반적 권한에 속하는 사항을 불법하게 행사하는 것으로, 겉으로는 정당한 직무집행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아닌 경우를 뜻한다. 법원은 직무행위의 목적과 그 필요성, 상당성, 법령상 요건 충족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직권남용죄를 판단한다. 다만 '권한을 남용했다'는 부분이 폭넓게 해석될 수 있는 만큼 그 개념을 엄격하게 따져왔다. 법조계에 '직권남용죄는 잘 인정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져있는 배경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권한의 범위다. 블랙리스트사건처럼 그 정점에 막대한 재량권을 가진 대통령이 자리잡고 있다면 그의 권한이 어디까지인가를 따지는 일은 쉽지 않다. 김 전 실장과 변호인단의 전략은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사건을 대통령의 통치행위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헌법이 대통령에 부여한 막대한 권한이 '무소불위'를 뜻하진 않는다.

수도권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대통령이라도 할 수 있는 행위와 없는 것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를 들어 기업이 문화융성을 위해 미르재단 등에 자발적으로 돈을 냈다고 해도, 한국에서 대통령이 얘기하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도 관련 있을 수 있다"며 "아무리 대통령 권한의 범위가 넓어도 명령이 정당한지, 과정이 위법한지 등을 따져본다면 (유죄가) 인정될 수 있다"고 했다. 또 "김기춘 전 실장 같은 사람들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공무원이라고 해도 부당한 명령을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고 덧붙였다.

블랙리스트사건은 헌법에도 어긋난다. 정부 고위층과 다른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국가지원 대상에서 차별할 권한은 그 어느 공무원에게도 없다.

특검은 김기춘 전 실장의 공소장에 이번 사건이 단순히 형법을 어긴 것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받지 않고 문화를 누릴 권리와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11조 1항과 22조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15일 재판에서도 "블랙리스트는 오직 정파적 편 가르기에 불과했다"며 "본건 공소사실은 자유민주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편 가르기에 의한 검열 지시가 있었는지, 검열이 국가 최고권력기관에 의해 자행됐는지다"라고 했다.

헌법 앞에 무소불위란 없다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등 문화계 시민단체 회원들이 3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정원 정문 앞에서 블랙리스트작성 국가정보원 고발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등 문화계 시민단체 회원들이 3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국정원 정문 앞에서 블랙리스트작성 국가정보원 고발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형사법)도 "블랙리스트사건은 일체 재량을 얘기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이용해 반대인사들에게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불이익을 준 점에 주목했다. "박근혜 정부는 문화·예술인들의 사상을 검열한데다 국가권력을 동원해 그들이 원래 누렸을 활동의 자유나 이익을 박탈시켰다"는 얘기였다.

이 사건은 박근혜 정부 차원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 김 전 실장 변호인단은 법정에서 "다음 정부가 박근혜 정부가 새로 지원한 문화·예술인들에게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고, 자신들 생각에 더 건전한 예술인들을 지원한다면 위법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문화계 지원 또한 이념적으로 편향됐다는 게 알려진 사실"이라며 "그런 것도 범죄라고 봤는지, 박근혜 정부만 그렇다는 것인지 답해달라"고 특검 쪽에 요청하기도 했다.

조 교수 역시 "이 문제는 모든 정부와 관련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보수성향인) 자유총연맹도 돈을 받아갔다,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식으로 하진 않았다"며 김기춘 전 실장쪽 주장을 비판했다. 이어 "지금처럼 한 쪽은 엄청난 재원을, 다른 쪽은 마이너스 또는 제로를 주는 식으로 하면 직권남용이다, 정부가 반대파 국민을 끊임없이 피해자로 만들 권한은 애초부터 없다"며 "(법원이) 기준을 아주 잘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춘#법꾸라지#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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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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