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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2월 21일 울산 태화다리에서 바라본 비둘기공원. 곽용씨가 30년 넘게 가꾼 곳이다.
2017년 2월 21일 울산 태화다리에서 바라본 비둘기공원. 곽용씨가 30년 넘게 가꾼 곳이다. ⓒ 박석철

1박 2일간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워크숍을 위해 울산을 출발해 서울역에 도착한 직후인 지난 17일 오후 5시 30분쯤, 기자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왔다. 발신자는 '곽용'.

'곽용'이라는 이름을 본 순간 겁이 났다. "또 압박이 시작되는가"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1초도 지나지 않아 슬픔으로 바뀌었다.

"아빠가 오늘 운명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세요."
"저는 딸입니다. 제 연락처는 000입니다. 울산영락원 000호 곽용입니다."

1분 사이에 도착한 2개의 문자메시지는 곽용씨의 전화기로 그의 딸이 보낸 것으로, 곽용씨의 별세 사실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곽용씨는 울산 태화강에서 30년 넘게 꽃과 나무를, 20년 넘게 비둘기와 갈매기에게 모이를 주며 보살피는 비둘기 아저씨다.

기자는 지난 몇 년 간 비둘기 아저씨와 연락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최근 그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는 취재를 부탁했다.

지난 10일 태화강 비둘기 공원에서 취재를 하고 13일 <오마이뉴스>에 기사가 나갔다. "30년 넘게 태화강에서 꽃과 새와 나무를 돌보는 비둘기 아저씨가 현재 건강이 좋지 않지만, 그는 끝까지 이 일을 하겠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관련 기사 : 대통령이 7번 바뀔 동안 꽃과 나무 가꾼 이 사람)

이렇게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났던 비둘기 아저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비록 몇 년 사이에 건강이 나빠졌다지만 그는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취재 당시에도 그는 거의 반나절을 태화강변에서 꽃씨를 심기 위해 밭을 가꾸고 있었다.

고발정신 강했던 비둘기 아저씨, 부조리 목격하면 그냥 못 넘겨

기자는 지난 몇 년간 비둘기 아저씨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17일 그의 부고를 받고 전화목록을 확인해 보니 그와의 마지막 전화 연결은 2014년 9월 26일이었다. 그것도 기자가 전화를 받지 않자 비둘기 아저씨가 소리샘으로 다급하게 음성으로 남긴 내용이었다.

비둘기 아저씨가 남긴 음성은 "박 기자, 왜 전화를 받지 않소, 전화 부탁하오"였다. 하지만 기자는 무심하게도 2년이 넘도록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즈음 기자가 비둘기 아저씨의 전화를 거절하기 시작한 사정이 있었다. 기자는 지난 2005년부터 비둘기 아저씨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를 통해 알려왔고, 그 기사를 본 방송사 등으로부터 비둘기 아저씨의 연락처를 묻는 전화를 많이 받기도 했다.

이후 비둘기 아저씨 이야기는 SBS <세상에 이런 일이> 등에서 방영됐다. 비둘기 수천 마리가 그의 호루라기 소리에 모이는 모습을 신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2017년 2월 10일 울산 태화강변에서 비둘기 아저씨가 호루라기를 분 후 모이를 뿌리자 어디선가 갈매기들이 몰려오고 있다
2017년 2월 10일 울산 태화강변에서 비둘기 아저씨가 호루라기를 분 후 모이를 뿌리자 어디선가 갈매기들이 몰려오고 있다 ⓒ 박석철

 2월 21일 울산 태화강 비둘기공원. 비둘기집 위에 앉아 있는 비둘기들은 비둘기아저씨가 돌아가신 것을 알고 있을까?
2월 21일 울산 태화강 비둘기공원. 비둘기집 위에 앉아 있는 비둘기들은 비둘기아저씨가 돌아가신 것을 알고 있을까? ⓒ 박석철

하지만 비둘기 아저씨는 새와 꽃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고발정신이 강했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하고 비정상적인 일들을 바로잡아보려는 의지가 강했다.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그는 울산 중구 비둘기 공원 인근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일들을 비롯해 심지어 과거 자신이 근무했던 동구의 울산 대왕암공원 내 울산교육청 산하 교육연수원 부지에 정주영 박물관이 추진되는 일까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그런 많은 것들을 기자에게 제보했다.(관련 기사 : MJ계 구청장 '정주영박물관' 추진에 교육계 반발)

비둘기 아저씨의 제보는 거의 공익성이 강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상대성이 있기 마련, 비둘기 아저씨가 문제 삼는 일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비둘기 아저씨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기자에게 항의도 왔다.

앞서 기자는 울산지역 일간지에 근무하던 지난 2004년 처음으로 비둘기 아저씨에 대한 기사를 썼다. 태화강에 꽃을 가꾸고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그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기 때문. 그는 교육청을 정년퇴직한 뒤에도 매달 받는 연금 중 일부를 비둘기 모이와 꽃씨를 구입하는데 사용했다. 한때는 새벽부터 태화강변으로 달려와 밭일을 했다.

"어느 누가 아저씨처럼 자기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새벽부터 나와 봉사활동을 하겠나"라는 생각이 들 즈음, "그의 집착이 너무 강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기자에게 제보한 문제에 대한 답이 없으면 그는 끊임없이 전화를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아예 기자는 전화를 받지 않기에 이르렀다. 너무 부담되고 압박감이 왔던 것.

몇 년 만에 다시 비둘기 아저씨를 만난 지난 2월 10일, 아저씨는 "누가 나 대신 이 일을 할 사람이 없는지 한번 알아봐 달라"고 했다. 기자는 "선생님 말고 누가 있겠습니까, 대한민국에 없을 겁니다"라면서 웃어넘겼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비둘기 아저씨는 일주일 뒤 자신의 운명을 미리 감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21일, 비둘기 아저씨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울산 태화강 비둘기 공원을 찾았다. 아저씨 없는 비둘기 공원은 왠지 허전해 보였다. 그동안 아저씨의 이야기에 좀 더 귀 기울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비둘기 아저씨가 없는 울산 태화강 비둘기 공원, 이제 이곳의 비둘기와 갈매기는 어찌 될 것인가. 봄이 오고 있는데, 꽃씨는 누가 뿌릴 것인가.


#울산 비둘기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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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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