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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학이나 취직을 하지 않으면서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청년층을 '니트족'(NEET)이라 한다. 그들은 세상 기준에 맞추기보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하지 않을 일 리스트>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니트족 철학자라는 파(Pha)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의 편한 일상'이 어떤 것인지 들려주는 책이다.

 <하지 않을 일 리스트> 파(Pha)지음, 이연승 옮김. 박하
<하지 않을 일 리스트> 파(Pha)지음, 이연승 옮김. 박하 ⓒ 박하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저자가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일 거라는 것과 함께, 불온서적은 아닌데 아들 녀석한테는 절대 권해선 안 될 것 같다는 것이다.

저자가 자유로운 영혼일 거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이 일은 딱히 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을 서른여섯 가지로 분류해서 이 세상에 넘쳐나는 속박을 풀어나가고 있어서다. 한 마디로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저자는 다른 사람과 세상의 평가로 내 행동을 정하는 것이 아닌 나만의 가치관을 찾는다. 또한, 다른 사람과 세상의 속도를 무리하게 쫓지 않고 나만의 속도를 파악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실타래를 풀어간다. 그런 면에서 영혼이 자유롭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제 막 중학교를 졸업한 아들 녀석한테 권하면 안 될 것 같다고 한 것도 이유가 있다. 공부보다는 놀기에 바쁘고, 시험을 앞두고도 천하태평인 아들 녀석이 '게으름은 미덕이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너무 열심히 하면 일찍 죽는다' 등을 다룬 '노력하지 않을 것 리스트'를 본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밖에도 '내 탓으로 하지 않을 것 리스트', '기대하지 않을 것 리스트' 등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아빠가 보기에 불온하기 짝이 없다. 그 리스트 목록을 잠깐 들여다보자. '내 책임은 50%로 충분하다', '모든 성공은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 '포기하면 삶이 편해진다', '타인은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이다', '죽은 사람처럼 살면 뭐든 즐겁다' 등등 행여 그 목록에 아들 녀석이 고개를 끄덕여 버린다면 아빠로서는 생각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 닥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99퍼센트는 딱히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일

아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사실 이 책은 은근 매력이 있다. 저자는 세상의 99퍼센트는 딱히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하나하나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지우다 보면 인생이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든다.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불안감을 부추기는 세상은 성공을 강요한다. 그러나 성공이란 녀석이 누구나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을 것처럼 바동거리지 않는가? 그런 면에서 소수의 성공을 지나치게 일반화 하려는 오류를 지적하는 저자의 말은 위로가 된다.

"우연히 잘 풀린 소수의 성공 사례를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인지의 왜곡 중 하나인 '극도의 일반화'이다." - p.139

일본 명문대를 나오고 안정적인 대기업에 취직해서 아무런 꿈도 열정도 없이 3년을 월급 루팡으로 근근이 버텼던 저자는 '미친 듯이 일하기 싫다'라며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퇴사를 후회한 적 없단다. 오히려 매일 어슬렁대며 빈둥빈둥 지내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지내며 게으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셰어하우스를 만들었고, 이 콘셉트가 일본 각지에 퍼져나가 의외로 게으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어떻게 보면 구제불능인 사람들과 어울리며 저렴한 물건들로 적당히 살아가다가, 가끔 '작은 사치'를 누리는 삶에 만족해하고 있다. 즉, 저자는 자존감을 회복시키며 적은 투자로 만족을 느낄 줄 아는 가성비 높은 삶을 지향한다.

"삶이란 원래 힘든 일투성이이지만, 구제불능끼리라도 모여 있으면 그래도 살 의지가 조금이나마 생긴다." -p.144

'하지 않을 일 리스트'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내용은 인간관계와 스마트폰에 대한 내용이다. 저자는 인터넷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적정선의 인간관계를 권한다. SNS에서 많은 친구 맺기를 통해 자존감을 확인하려는 이가 있다면 새겨 볼 만한 구절이다.

"인터넷과 도시라는 공간적 이점을 활용해 인간관계를 넓히는 것도 좋지만 소화도 못 할 만큼 쓸데없이 넓히는 데 집착할 필요는 없다. 자기 주변의 대략 150명 남짓 되는 사람들과의 인연부터 소중하게 여기고 착실히 맺어가는 것이 좋다." -p.151

또한,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는 세태를 삐딱하게 보는 시선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그런 것을 허락하는 것이야말로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하는 것이요, 자유를 주는 것이라며 스마트폰을 끼고 대화하는 것을 적극 권한다. 스마트폰을 대하는 저자의 너그러운 시선은 이렇다.

"나는 맞은편에 있는 상대가 스마트폰을 보는 것은 대환영이다. 외려 더 열심히 봐줬으면 좋겠다. 그러는 편이 '눈앞의 상대와 반드시 대화를 나눠야 한다'라는 압박감이 줄기 때문이다. 굳이 억지 수다를 떨지 않더라도 무방한 분위기가 형성되기에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p.185 

저자가 추구하는 인간관계는 누군가와 지나치게 밀착된 닫힌 인간관계가 아니다.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다양하게 열린 인간관계다. 가장 힘 있는 자가 주도권을 쥐지 않는 느슨한 관계이다. 그래서 저자는 필요 이상으로 자기 의견을 강요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평한다.

"필요 이상 자기 의견을 강요하는 사람은 단순히 토론이라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자기 의견에 자신감이 없는 사람, 혹은 스트레스가 쌓인 사람이다." -p.211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세상 목소리를 거부하는 저자의 태도는 무한경쟁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무위의 상태에 싫증을 느끼는 게 인간임을 인정한다.

인간은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생물이라는 것이다. 다만, '체력과 정신력이 충분할 때'라는 전제조건이 있다. 힘에 부치게 일하기보다 능력에 맞게, 지나친 욕심을 지양하자는 것이다.

저자가 추구하는 삶은 결국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하는 것이다. '뭘 하고 싶은지'를 찾는 게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하지 않을 일 리스트'는 거꾸로 하면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스스로 만들어 가자고 역설하고 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적당히 포기하고 요령껏 느긋하게 살아도 된다고 스스로 위로해 보자. 세상이 한결 여유로워질 것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나니 아들에게 이 책을 굳이 감출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의 장점은 딱히 순서에 상관없이 궁금한 부분부터 읽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하나씩 지워나가고자 한다면, 원하는 부분만 먼저 찾아 읽어도 된다.

"오늘 밤에도 일이 바람에 스치운다…  일하다 하다 남은 일은 때려치우는 일뿐이다."


하지 않을 일 리스트

파(pha) 지음, 이연승 옮김, 박하(2017)


#파#PHA#니트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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