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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에서 바라본 중국 동북삼성인 만주벌판
 백두산에서 바라본 중국 동북삼성인 만주벌판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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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전사의 노래

눈 쌓인 대지 위 유격전쟁은 여름날과 견줄 수 없네
삭풍은 불어 큰 눈발 날리니 눈 덮인 대지는 다시 얼음하늘이네
바람은 뼈를 에이고 눈보라는 얼굴을 때리며 손발은 얼어 찢어지네
애국남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어찌 다시 간난을 두려워하랴

(雪地遊擊 不此夏日間 / 朔風吹大雪飛 雪地又氷天 /
風刺骨雪打面 手足凍開裂 / 愛國男兒不怕死 哪怕再艱難)

이 노래는 엄동설한 일제강점기 만주벌판에서 일제와 맞서 동북항일연군들이 일제관동군이나 위만군(僞滿軍, 괴뢰 만주군) 토벌대와 신출귀몰한 유격전을 벌이면서 전사들의 사기를 드높이고자 불렀던 노래였다.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전사들은 영하 30~40도의 북풍한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만주의 대설원을 누비며 일제 토벌대들을 깊은 삼림으로 유인하여 섬멸하는 개가를 올리곤 했다. 일제는 1930년대 후반부터는 이들 항일세력을 잠재우고자 '만주국 치안숙정계획'을 세워 관동군을 40만에서 76만으로 대폭 증강, 빗질 토벌을 감행했다.

그러자 동북항일연군 상부에서는 예하 부대원의 희생을 줄이고자 소련으로 월경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 허형식 군장은 끝까지 만주의 전구(戰區, 전투지구)와 백성들을 지키다가 1942년 8월 3일 이른 새벽 경안현 청봉령 소릉하 계곡에서 만주군 토벌대와 1대 30의 전투를 벌이다가 장렬히 전사했다.

'허형식 장군'

『허형식 장군』표지
 『허형식 장군』표지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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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사실을 1999년 여름 항일전적지 답사 도중 알게 된 뒤 16년간 내공을 쌓아 지난해 초겨울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이라는 한 권의 실록소설로 세상에 내놓았다.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허형식 군장은 1909년 경북 선산군 구미면 임은동에서 태어났다. 박정희 대통령이 태어난 상모동과 임은동은 공교롭게도 철길 하나 사이로 부르면 대답할 수 있는 지호지간이다.

허형식 군장은 1908년 경성감옥(서대문교도소) 개설 후 곧장 교수형으로 순국한 13도 창의군 군사장 왕산(旺山) 허위(許蔿)의 집안 조카였다.

1908년 허위의 순국으로 임은동 허씨들은 일제 등쌀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1915년 봄, 만주로 집단 망명했다.

그들은 길림성 통화현 다황거우, 진두허, 유하현 삼원포, 요녕성 개원현 이가태자 등지를 유리표박하다가 헤이룽장성 빈현 가판점으로 이주했다.

허형식은 거기서 더욱 투철한 항일전사가 되고자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 당원으로 입당하여 군사부장 최용건(崔庸健)의 지도를 받았다.

1930년 5월 1일 허형식은 하얼빈 일본총영사관 습격을 주도, 심양감옥에 수감되어 그곳에서 조상지(趙尙志)와 평생 동지 김책(金策)을 만났다. 이들 셋은 삼국지 도원결의(桃園結義)처럼 혈맹을 맺은 뒤 각자 항일전사로 용맹을 크게 떨쳤다.

나는 허형식 군장이 33세 젊은 나이로 위만군과 교전 중 불꽃처럼 산화한 그 희생에 크게 감복하여 1999년부터 내 글방 서가에 그분의 사진을 걸어두고 내내 내공을 쌓은 끝에 이번에 한 권의 실록소설로 그분을 세상에 부활시켰다.

솔직히 해방 후 지금까지 우리 백성들은 줄곧 오만 잡스러움과 가짜들의 추악한 행태로 매우 지치고, 정의와 양심에 허기져 있다.

나는 이 작품에서 조선의 무명옷처럼 순결한 한 항일 파르티잔의 올곧은 생애를 오롯이 그려 보았다.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이 그동안 가짜들에게 지치고 정의에 허기진 백성들에게 한 줄기 빛으로, 한 모금 생명수로 앞날에 대한 '희망'을 주고 삶의 활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추운 겨울밤 나라와 겨레를 구원하려다가 불꽃처럼 산화한 정의와 양심의 투사 <동북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을 읽자. 그리하여 흐려진 우리 마음속의 양심과 정의감을 거울처럼 닦고 또 닦자.

마치 윤동주의 '참회록'에서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처럼.

그리하여 이 땅에 다시는 사이비 애국자들이 감히 범접치 못하게 하자.

중국 헤이룽장성 경안현 청봉령 어귀 '허형식 희생지' 기념비
 중국 헤이룽장성 경안현 청봉령 어귀 '허형식 희생지' 기념비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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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명장의 서사시

동북아역사재단의 장세윤 교수실장은 이 책 '부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작가는 20세기 전반기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 우리 민족에게 절실히 필요로 했던 독립과 자유, 평등, 공동선과 그 실현을 위해 희생한 한 항일명장의 장대한 서사시이자 영웅적 드라마를 멋들어지게 그렸다.


이 작품의 주인공 허형식은 당대의 여러 가지 모순을 척결하고, 억압과 폭력, 차별이 없는 사회, 불평등과 탐욕, 약자에 대한 수탈이 없는 사회,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풍요로운 사회,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의 이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맹렬히 투쟁하다가 끝내 33세의 나이로 만주국 토벌대의 총탄에 장렬히 산화했다.


허 장군은 자신과 가문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 희생한 게 아니라, 오로지 조국과 민족을 위해 당신 모두를 제물로 바쳤다. 이 작품의 일부 픽션 부분은 사실 전개에 무리가 없는 내용으로 최소화한 것으로 판단된다.

작가는 먼 북만주에서 만주국 토벌대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한 허형식 장군 희생지를 현지 답사한 뒤, 16년간의 각고 끝에 완성한 이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은 분명 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너새니얼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을 떠올렸다. 아무튼 한 위대한 항일 파르티잔의 생애를 그린 이 소설에서 많은 감동과 기쁨, 그리고 작품의 행간에 담긴 귀중한 의미와 교훈도 찾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우당기념관 이종찬 이사장(전 국정원장)은 다음과 같은 독후감을 보내왔다.

"박도 선생의 역작 <허형식 장군>을 밤새 다 읽었습니다. 누구도 거명치 않았던 우리의 영웅을 밝혀주신데 대하여 찬사를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 박도 지음 / 실록소설 <허형식 장군> / 눈빛출판사 / 1만3000원.



허형식 장군 -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박도 지음, 눈빛(2016)


태그:#허형식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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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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