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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카오톡에 온 친구의 문자와 답글
카카오톡에 온 친구의 문자와 답글 ⓒ 이경모

아침 8시 55분. 딩동댕~ 카카오톡 문자 알림 벨 소리가 울렸다. "누굴까, 9시도 안 됐는데." 혼잣말을 하며 핸드폰 창을 열었다. 초등학교 동창인 여자 친구다.

시골 윗동네에 살면서 초등학교는 함께 졸업했지만, 중학교는 1년 뒤에 입학해서 1년 후배가 된, 나에게 아내를 소개해준 고마운 친구다. 터치해서 문자 전체를 읽으려고 하는데 프로필 옆에 문자 두 줄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염치없지만 한 가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부업으로 ~"

몇 개월 연락이 없었지만 그 사이에 무슨 큰일이 있어서 염치없는 문자를 보냈을까. 떨리는 손가락으로 전체문자를 터치했다.

"화장품 장사를 시작했습니다.너무 형편이 어려워져서요. '꼭' 한 세트씩 주문해 주세요."

'화장품 장사' '너무 형편이 어려워져' '꼭 한 세트 주문'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남편은 현재 교직에 있고 아들딸들은 취업했는데 화장품 장사라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런 친구 문자에 머릿속은 하얗게

"그래, 지금 나도 무척 어렵지만, 화장품 한 세트는 주문해야지"라고 마음먹고 다음 내용을 읽어 갔다. "★제품 설명서★주름이 생긴 이마에는 '상냥함'이라는 크림을 사용해 보세요." 나는 긴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친구가 아침에 좋은 글을 보내준 것이다.

평상시라면 별생각 없이 글을 터치해서 읽었을 텐데 지난 연말 사업을 정리하면서 많이 위축되어있는 나를 되돌아봤다. 다음 내용은 이랬다.

"이 크림은 주름을 없애주고 기분까지 좋아지게 하니까요. 입술에는 '침묵'이라는 고운 빛의 립스틱을 발라 보세요. 이 립스틱은 험담하고 원망하는 입술을 예쁘게 바로 잡아주는 효과도 있답니다.

맑고 예쁜 눈을 가지려면 '정직과 진실'이라는 아이크림을 사용해 보세요. 최선의 효과를 얻으려면 어디를 가든지 그 안약을 소지해야 한답니다. 피부를 곱게 하고 싶으면 '미소'라는 로션을 바르면 피부가 촉촉하고 부드러워지며 거울을 보고 미소 지으며 하루를 시작하면 날마다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피부 영양제 화장품은 '성실'입니다. 아주 효능 좋은 피부 청결용 세안 비누는 '미안'이 최고라고 합니다. 아, 참~ 가장 향기로운 향수로는 '용서' 가 제일이랍니다. 마음에 드시면 한 세트...꼭 구매해 주세요.^^품질은 보장합니다!! 꼭 날마다 사용하셔서 예쁘고 멋진 2017년 되세요~~주문 주소: 당신도 예쁘군 사랑하면 좋으리. 9988번지"

5년 6개월 동안 운영했던 아웃도어 매장을 지난달 31일 폐점했다. 6년 전만 해도 권리금이 2억이었다. 그러나 '매장임대'라는 플래카드를 붙여 놓은 지 보름이 지났지만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권리금 2억도 물 건너갔다. 이것이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의 현실이다. 많은 돈을 사회에 환원(?)했다. 친구는 아직 폐점 소식을 모른다. 그래서 아마도 아침 일찍 응원 문자를 보낸 것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실감 났다.

친구에게 보낸 답 글이다. "좋은 글 보내주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어. 염치없는 부탁~화장품 장사~형편이 어려워져~한 세트 주문~제품 설명서~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과 짠한 맘이 들었네. 순간적으로 한 세트는 사줘야겠다고 맘먹고 아픈 맘으로 읽어가면서 금방 배시시 웃었네. 잘 있지?^^"

상냥함, 침묵, 정직과 진실, 미소, 성실, 용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카카오톡 문자가 어쩌면 다음 달 2월 1일부터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요식업에 맞는 사훈 같다. 예쁘고 멋진 화장품 몇 세트 꼭 주문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월간잡지 첨단정보라인 2월호에 게재합니다.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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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광주 첨단지구에서 첨단정보라인을 발행하는 발행인입니다. 첨단정보라인은 월간지(광주 라88)로 정보화 시대에 신속하고 알찬 보도논평, 여론 및 정보 등 주민생활의 편익을 제공하며 첨단지역 상가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만큼 생생한 소식을 전할 수는 없지만 이 지역의 관심 현안을 취재하고 대안을 제시해 주민들과 늘 함께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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