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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서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 신발을 벗기도 전에 괴성을 지르며 울음이 터졌다. 녀석이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이불, 수건, 블록 등으로 만들어 두었던 자신만의 공사장이 망가져 버렸다는 이유다. 심기가 불편한 정도가 아니었다.

아이의 두 눈에 분노와 절망이 뒤섞여 굵은 눈물이 뚝뚝, 쉴새없이 내려왔다.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동생이 건드린 게 분명하다는 나름의 추론. 급기야 그 후 저녁시간 내내 동생이 갖고 있는 모든 물건을 자기가 가지고 놀던 것이라며 건건이 트집을 잡기에 이르렀다. 그쯤되니 가만 두고 볼 수가 없어서 한 마디 했다.

"이 녀석! 자꾸 그럴 거야?"

<괴물들이 사는 나라>
 <괴물들이 사는 나라>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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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같은 외침에도 고집스런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내 높은 목소리도 가라앉질 않았다. 평소에는 들을 수 없는 기괴한 육성으로 울고 마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괴물일까. 저 아이가 괴물일까. 아니면 지금 둘 다 괴물이 되어 버린 건가.

엄마가 소리쳤어.
"이 괴물딱지 같은 녀석!"
맥스도 소리쳤지.
"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
그래서 엄마는 저녁밥도 안 주고 맥스를 방에 가둬 버렸대.

마음을 가다듬고 차근차근 대화를 시도하다 다행스레 훈육과 반성의 시간이 잘 지나갔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놀던 중에 또 비슷한 다툼이 생겼다. 확연하게 드러난 큰 아이의 욕심 가득 찬 말과 행동. 조용하게 또 한 마디 했더니 이번에는 진짜 괴물이 될 거라는 식으로 선언하듯 협박조로 말을 했다.

"엄마 활로 쏴서 확 잡아먹어 버릴 거야!"

저런 우습고도 구체적이며 무시무시한 말은 어디서 배웠을까. 뇌는 순식간에 기억의 데이터를 훑지만 찾을 수가 있나. 나중에 남편과 얘기하면서 알게 된 건, 요즘 자주 읽어달라고 가져오는 전래동화가 전적으로 그 역할을 했을 거라는 사실.

어쨌거나 아이 딴에는 어마어마한 협박이라 여겨졌을 그 한 마디가 공중에 흩어진 순간은 좀 충격이긴 했다. 키가 크고 몸집도 커지더니 책에서 본 대사를 그대로 읊는 듯한 능력으로 대사를 치는 아이가 생경하게 느껴졌다. 사랑스럽기만 하던 아들이 무시무시한 괴물이 된 순간이었다.

"너 잠깐 방에 들어가서 혼자 생각하고 나와."

단호히 엄마 입장을 표명했건만, 아이도 자기 입장이 있다는 식으로 입을 쭉 내밀며 미동도 하지 않고 가지고 놀던 물건만 만지작거렸다. 아이가 조용한 곳에서 혼자 앉아 화도 좀 쓸어내렸으면 했다.

억울하고 화날 정도로 꼬이고 꼬인 벌어진 일에 대하여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주고 싶었다. 괴물처럼 흥분한 아이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대화가 아닌 묵언의 시간과 공간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아이의 생각은 달랐다.

"싫어! 안 들어 갈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엄마의 엄한 눈초리에 꼬리를 내리고 울먹이며 방으로 들어가던 아이. 그 방 안에서 날섰던 발톱을 조금 깎아내며 생각을 가라 앉혔을지, 엄마를 원망했을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엄마나 아들이나 스스로의 흥분한 괴물 얼굴을 다시 감추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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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나라 왕이 된 맥스
 괴물나라 왕이 된 맥스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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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하이라이트는 온갖 괴물들끼리의 만남이다. 그 와중에 맥스는 능력을 발휘하여 괴물들을 제압하고 괴물들의 왕이 되어 버린다.

괴물들은 맥스를 괴물 나라 왕으로 삼았어. 맥스는 큰 소리로 외쳤어. 
"이제 괴물 소동을 벌이자!"

내부에 숨겨져 있는 괴물본능이 여과 없이 표현되어도 괜찮다고 생각되는 상대를 만나자마자 아이는 모든 것을 내보이며 함께 괴물이 된다. 괴물나라에 도착한 맥스에게 괴물들은 어떠했는가. 맥스를 왕으로까지 추대를 해주며 함께 했다.

돌아갈 곳이 있는 아이 맥스는 괴물나라에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잠깐의 괴물생활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이 큰 물결처럼 더 출렁였다. 비록 괴물딱지 같은 녀석이라고 소리치며 저녁밥도 안주고 맥스를 방에 가둬 버린 엄마일지라도 말이다. 맥스를 괴물나라로 보내버린 맥스의 엄마도 그 순간엔 괴물이었다는 것은 궁극적인 사실이다. 왜 엄마도 괴물이 되면서 아이의 괴물을 나무라게 되는 건지.

괴물들은 울부짖었어.
"제발 가지마. 가면 잡아먹어 버릴 테야. 우린 네가 너무 좋단 말이야!"
맥스가 말했어.
"싫어!"

그 날 밤에 맥스는 제 방으로 돌아왔어. 저녁밥이 맥스를 기다리고 있었지.
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어.

괴물나라에서 실컷 놀다가 지겨우니 따뜻한 음식과 사랑하는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집을 그리워하는 맥스의 행동은, 그가 아이여서만은 아니다. 어쩌면 이 작품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괴물적인 한 성향에 대한 해결지점이 '사랑'이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괴물나라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맥스
 괴물나라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맥스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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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처럼 자식에게 밥도 안 주고 방에 가둔 맥스의 엄마에게도 맥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며 되돌리고 싶은 사랑이 있었다. 계속 괴물로만 머물러 있고 싶지 않은 맥스를 돌아오게 한 것도 엄마를 향한 그리움의 사랑이다.

꼭꼭 숨겨둔 괴물의 발톱을 누구나 불현듯 쑥 꺼내고 마는 순간이 온다는 것. 괴물 아이와 괴물 어른의 날선 틈은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메울 수 있다는 것. 맥스의 엄마가 자신이 괴물이었던 순간을 각성하고 뒤늦게나마 따뜻한 저녁상을 차려놓고 괴물나라에서 깨어날 맥스를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오늘도 내 아이는 스스로를 괴물이라 지칭하며 괴물나라에 갔다 돌아왔다.

"엄마가 뽀뽀 안 해주니까 도깨비괴물처럼 때린 거야."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rnjstnswl3 중복게재



괴물들이 사는 나라 - 1964년 칼데콧 상 수상작

모리스 샌닥 지음, 강무홍 옮김, 시공주니어(2002)


태그:#괴물들이, #사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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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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