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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어이없는 경험을 공유하는 '어이리스'입니다. 제가 겪은 일도 써보고요. 가끔 남이 겪은 일도 소개합니다. 이 칼럼이 지향하는 유이한 라이벌은 <중앙일보> '권석천의 시시각각'과 <조선일보> '한현우의 팝 컬쳐'밖에 없습니다. - 기자 말

살다 보면 배신감을 느낄 때가 있다. 대통령까지 '배신의 정치'를 경계할 만큼 전 국가적 불신이 조장될 정도이니, 나 같은 소시민에게는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물론 대통령 자신조차 '박근혜의 말은 박근혜의 말로 반박 가능하다'라는 법칙을 발견하게 하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유체이탈형 하이퍼리얼리즘 지도자'이지만, 그것도 일단 '개인 일탈'이라 치자.

어쨌든 불신이 사회를 붕괴시킨다는 진실은 외면할 수 없다. 그럼 불신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고? 여기에 쉽게 답할 수 있으면 내가 왜 이런 글을 쓰고 있겠나. 나는 1800자 이내로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글을 써낼 능력이 없다. 설사 답할 수 있다고 해도 각 잡고 길게 쓰면 또 길다고 잘 안 읽을 거잖나.

그러니까 심각한 이야기는 이쯤하고 이 글의 주제인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해보자. 아무리 이 땅이 배신의 왕국일지라도 아이스크림 나부랭이들에게까지 배신당하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니까.

헬조선스러운 아이스크림 파국의 흑역사

 내가 좋아하는 죠스바... 이건 얼마나 오르려나.
 내가 좋아하는 죠스바... 이건 얼마나 오르려나.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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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부터 아이스크림 가격 정찰제가 시행됐다. 롯데제과, 롯데푸드, 빙그레, 해태제과 4대 빙과업체가 일선 판매처에 상시 할인체제가 도입된 이후 폭염에도 매출이 줄었다며 권장소비자가격을 포장지에 표기하기로 전면 결정한 것이다. 그러자 점주들은 반발하고 인터넷에는 '몇백 원이던 아이스크림이 뜬금없이 1000원 이상으로 가격이 올랐다'는 글들이 올라온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려면 아이스크림 가격의 흑역사를 좀 알 필요가 있다. 발단은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에 들어선 대형마트들이 손님을 흡수하고자 동네 슈퍼들과 경쟁을 하던 200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종의 미끼상품으로 아이스크림을 택했다. 동네 슈퍼들은 점점 할인율을 높이다 아예 마진을 없애더니, 결국 빙과업체에 공급가를 올릴 때 동네 슈퍼의 공급가는 적게 올려달라 했다.

가령 권장소비자가격 1000원짜리 아이스크림이라도 공급가가 450원이면 슈퍼는 '50% 할인'이라 홍보하며 500원에 팔아 50원의 마진이라도 남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일단 시작된 가격 경쟁은 멈추지 않았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점점 권장(?)소비자가격에 거품이 끼었다. 그러자 2010년 이명박 정부는 아주 이명박 정부다운 아이디어를 낸다.

'오픈 프라이스'라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권장소비자가격을 아예 표기하지 않으면 가격 경쟁이 치열해져 거품이 빠지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체급이 안 맞는 상대들끼리의 경쟁으로 인해 촉발된 문제를 경쟁으로 해결하려고 했으니 결과는 대실패. 아이스크림 가격만 오른 게 아니라 과자, 라면 가격도 올랐다. 소비자의 불만이 커지자 롯데제과는 2012년 2월 말부터 다시 정찰제로 돌아오려고 시도했다.

시간이 흘러 2012년 여름을 앞두고 권장소비자가격을 낮췄다. 그런데 정작 공급가는 더 올리는 경우가 생겼다. 가령 롯데제과의 설레임은 2000원에서 1000원으로 권장소비자가격이 낮아졌지만 공급가는 740원에서 782원으로 오르는 경우가 생겼다(☞관련 기사).

일선 판매처들은 50% 할인도 못 하고 마진율도 떨어지니 죽을 맛이었다. 그러자 빙과업체 측에서는 정상판매가와 50% 할인가를 적용하는 판매처에 각각 마진이 남게 공급가를 맞춰줬는데, '그럼 제조업체는 이렇게 팔아도 원래 남았다는 거잖아?'라는 의심(?)을 사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의 반발이 이어졌고, 빙과업체들의 매출이 감소했다. 결국 2013년 4월 정찰제가 후퇴했다. 정찰제가 공격 전술이라면 오픈 프라이스는 연막전술 아니었냐는 불신만 부추기게 된 이유다. 그러나 이후에도 '빙과류' 성수기인 여름만 다가오면 할인율을 낮추고 가격을 올리려는 빙과업체 측과 생존 마진을 사수하려는 영세 상인들의 줄다리기는 계속됐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빙과업체 측이 실적 부진을 명분으로 이번에 정찰제 카드를 다시 뽑아든 것이다. 분명 매출이 줄어든 건 맞다. 가령 롯데제과의 지난달 매출은 1년 전보다 7%P, 빙그레와 해태제과는 각각 6%P, 2%P씩 하락했다. 그렇다고 소비자들의 체감 가격이 올라가는 건 과연 합리적일까. 지난 8일 <스브스뉴스>에 따르면 가령 해태제과의 폴라포 가격은 800원이 된다(☞관련 기사). 기자의 집 근처 슈퍼에서는 550~600원이면 살 수 있던 제품이다.

생각해보면 대기업끼리 뭔가 해보겠다고 하는 것치고 제대로 된 일이 없었다. 기업이 잘 돼야 다 잘 된다느니 낙수효과니 하며 법인세 깎아줬을 때부터 알아봤다. 부담은 소비자나 영세 상인에게 돌리면 돌렸지 자기들 마진에서는 깎지 않으려 한다.

심지어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들은 엄밀히 말하면 '아이스크림'도 아닌 '빙과류'다. 진정한 아이스크림은 우유 성분에서 추출한 유고형분, 유지방분 등의 함량이 일정 기준 이상인 고급 제품이다. 현재 시중의 빙과업체 제품은 '아이스밀크' '빙과류' '샤베트' 등으로 분류된다. 못 믿겠으면 포장지를 잘 봐라. 나도 27년 만에 알게 된 사실이다.

아이스크림도 아닌 얼음 덩어리 갖고 쫀쫀하게 굴지 말고 진짜 어렵다면 제조 원가부터 투명하게 공개하고 소비자를 설득하는 게 보다 신뢰감이 있지 않을까. 그러지 못하면 매출이 떨어지는 건 인과응보다.


#롯대제과#롯데푸드#빙그레#해태제과#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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