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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바닥에 놓인 카메라와 렌즈들 하나 둘 씩 사모은 카메라와 렌즈들. 필름카메라는 단종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중고로 거래한다. 끼어있는 디지털 카메라 하나는 꼭 필요할 때만 스냅용으로 사용한다. ⓒ 안사을
사람들은 내게 왜 디지털 시대에 굳이 필름을 고집하느냐고 묻는다.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는 사람마다 거의 이러한 물음을 던져왔으니 '가끔'이라는 표현 보다는 '종종', 혹은 '자주'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나 자신 또한 스스로에게 마찬가지 질문을 던지곤 했다. 사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야 디지털 카메라의 성능이 필름을 앞서지 않았기 때문에(보급화된 수준을 기준으로)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도, 남들에게 받지도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화질이나 기능의 측면으로만 보면 굳이 필름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디지털의 기술이 월등히 발전했다. 또 그 기술이 적용된 최신의 카메라들이 일반인들에게도 크게 부담되지 않을 만한 가격으로 보급되면서 이 질문이 어느새 적절한 질문이 되어버렸다.
진안 용담호와 카메라 요즘 나오는 디지털 카메라와는 사뭇 다르게 생겼다. 특성상 장노출이 많아서 항상 삼각대를 휴대해야 한다. 날씨가 매우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정 셔터속도가 8분의 1초라서 역시 삼각대가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 안사을
나의 대답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첫 번째 이유를 꼽으라면 단연코 '질감의 차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이것이 정답이지 않을까 싶다. '기다림의 미학', '불편의 철학' 등 또한 디지털에 대비되는 아날로그만의 특성일테지만 명확하고 객관적인 측면에서 차이점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나는 이를 종종 그림과 비교하곤 한다. 요즘 태블릿 입력기구를 통해 컴퓨터로 그리는 그림들을 보면 사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교하다. 더 이상 실제 연필이나 붓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디지털 기술이 여러 모로 아날로그의 그림을 능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제 캔버스에 그리는 그림이 컴퓨터로 그리는 그림에 비해서 질이 떨어진다고 평가받지는 않는다. 정교함만이 평가의 기준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필름이 주는 질감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연출할 수 있다. 실제 필름으로 찍은 사진과, 컴퓨터로 그레인이나 색감 등을 아날로그 식으로 바꾸어 수정한 그림을 비교하여 진위를 가려보라고 하면 절대 가려내지 못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
진안 용담호의 반영 Horseman612 / Rodenstock45mm / Ektar100 / Opticfilm120 자가스캔 / F16 - 8분의1초 / 센터필터사용 / +2stop 노출보정 ⓒ 안사을
적상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Horseman612 / Rodenstock45mm / Ektar100 / Opticfilm120 자가스캔 / F8 - 30분의1초 / 센터필터사용 / +2stop 노출보정 ⓒ 안사을
필름 회사와 종류별로 이미 여러 프리셋들이 존재할 정도이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왜 당신은 붓으로 그림을 그리나요? 컴퓨터로 그린 다음에 캔버스 효과를 주면 될 텐데요"라고 질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름에 사진을 담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는 불편함이나 느림을 추구하는 철학적인 행위이기도 하지만 가장 본질적으로는 재료를 달리 고르는 선택의 일종인 것이다. 재료가 달라지면 그 재료에서 오는 질감이 달라지는데 이 질감은 시각예술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특히 필름은 생산한 회사나 그 종류에 따라 생성되는 이미지의 특징(또렷함, 명암차 등)과 입자감(그레인의 굵기, 느낌 등)이 달라지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이의 의도대로 다양한 연출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디지털 센서의 해상력이 이 필름의 그것을 훨씬 능가했다 해도 아직 필름카메라의 영역을 넘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대형카메라와 파노라마 카메라가 그렇다. 이는 센서의 크기 때문인데, 디지털 센서가 아무리 크다 해도 대형카메라나 중형 파노라마 카메라의 필름면의 크기보다는 한없이 작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공간감의 차이나 화질의 차이는 디지털 센서들 중 크롭 센서와 중형 센서의 차이로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기술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센서의 대형화로 인한 생산비용의 엄청난 상승 때문에 넘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넘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연습이라고 해봤자 기껏 필름 한 롤 소진해본 것이 다인지라 다루는 데에 서툴러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컷이 꽤 많이 나왔다. 렌즈를 실수로 다 열어버렸거나 렌즈 뒷면을 막아놓은 채 찍어버린 경우이다. 파인더로 보이는 것과 실제 렌즈에 잡히는 화면이 다르기 때문에 초점이 맞지 않은 상태인지도 모른 채 찍어버린 컷도 있었고 와인딩을 하지 않아서 의도치 않은 다중노출을 찍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출시된 지 20년은 족히 된 카메라이기 때문에 요즘 카메라가 가진 친절한 기능들을 찾고자 하면 안 된다. 모든 조작을 컴퓨터의 간섭 없이 사람이 직접 해야한다. 심지어 노출계도 없다. 이러한 무뚝뚝함 또한 오래된 카메라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7일 다녀온 무주와 진안 여행에서 열두 번의 개방을 통해 여섯 장의 사진을 건졌고 중복된 장소를 찍은 사진들 중 가장 나은 구도를 택해서 두 장으로 압축했다. 이만하면 대단히 만족스럽다. 도자기 장인이 된 기분으로 나머지 사진들은 과감히 지웠다. 네거티브 필름으로 이정도의 해상력이니 슬라이드 필름을 사용하면 어떻지 정말 상상만 해도 두근거린다.

사진은 어느덧 나에게 첫 번째 취미가 되었다.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종종 취미를 가지라고 말하곤 한다. 내가 생각하는 취미란 단순히 무료한 시간을 때우는 행위가 아니라 공부를 통해 이론적인 부분을 스스로 보강해나가고 실제적인 활동을 통해 나날이 실력이 늘어가는 진취적인 활동이라고 말이다. 나를 담임으로, 혹은 교과 담당 교사로 만난 아이들의 삶에 건전한 취미가 가득하기를 항상 바란다.
#필름카메라#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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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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