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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9일 오전 서울 건국대병원 장례식장. 지난달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안전문)를 수리하다 목숨을 잃은 김아무개(19)씨의 발인을 앞두고, 가족들의 오열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여러 사람들이 쭈뼛쭈뼛 서성였다. 이들 중 한 남자가 유가족을 돕고 있는 권영국 변호사에게 말을 걸었다. 서울메트로 간부였다. 그는 "다시 한 번 사죄드린다는 말씀을 유가족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말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발인 직전, 빈소에서 김씨 어머니를 만났다. 권 변호사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김씨 어머니의 손을 잡으면서 "힘을 내셔서 (김씨를) 잘 보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메트로 간부가 전한 사죄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한은 너무 컸다.

"자식은 이미 죽고 없는데, 사죄한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요."

권영국 변호사는 이날 오후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그 얘기를 듣고 가슴이 참 아팠다"면서 "유가족이 이미 사과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보상에 합의를 하고 장례 절차를 진행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유가족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추모 열기가 없었다면...

.서울 지하철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 안전문(스크린도어)을 수리하다 사고로 숨진 김아무개군의 영결식이 9일 오전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려 김군의  영정과 운구가 장례식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서울 지하철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 안전문(스크린도어)을 수리하다 사고로 숨진 김아무개군의 영결식이 9일 오전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려 김군의 영정과 운구가 장례식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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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은 사고의 책임을 고인에게 떠넘긴 서울메트로에 큰 상처를 받았다. 또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소극적인 태도도 유가족들을 실망시켰다. 김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죽은 후, 먹을 것을 입에 가져다 대지 않았다.

박원순 시장과 서울메트로의 사과를 이끌어낸 것은 시민들의 추모 열기 때문이었다. 고인의 이모는 언젠가 권영국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시민들이 조카의 죽음에 공분하고 힘을 모아주지 않았다면, 조카가 누명을 뒤집어썼을 것이다. 그게 두려웠다. 같이 슬퍼해준 시민들이 참 고맙다."

실제 사고 발생 첫날, 서울메트로는 고인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김씨가 '점검하러 왔다'고 말하고 역무실을 나섰다. 작업일지도 쓰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서울메트로는 시민들의 추모 분위기를 방해해, 유가족의 상처를 깊게 만들었다(관련기사 : 추모 쪽지 떼어지는 사고 현장 "박원순 시장님 꼭 와주세요"). 사고 이후 김씨가 목숨을 잃은 구의역 승강장에 시민들이 추모메시지를 붙이고 국화를 놓았다. 하지만 서울메트로는 지하철 운행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서, 국화와 추모메시지를 치웠다.

사고가 일어난 지 사흘째였던 지난달 30일 고인의 작은 아버지가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미안해! 너무 힘들었지? 이제 편히 잠들어. 나중에 우리 다시 만나자!'라는 추모메시지를 붙였다. 서울메트로 쪽은 곧 이를 떼어냈다.

결국 김군의 어머니가 31일 아들이 죽은 구의역에서 눈물의 호소문을 읽어야 했다(관련기사 : "산산조각 난 아이에게 죄 뒤집어 씌웠다"). 유가족의 호소로 여론이 뒤집히자, 서울메트로는 그제야 사과문을 냈다. 유가족이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발인이 이뤄진 것은 사고 발생 12일만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서울 지하철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 안전문(스크린도어)을 수리하다 사고로 숨진 김아무개군의 영결식이 9일 오전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려 김군의 운구차량이 장지로 떠나고 있다.
 .서울 지하철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 안전문(스크린도어)을 수리하다 사고로 숨진 김아무개군의 영결식이 9일 오전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려 김군의 운구차량이 장지로 떠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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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추모 열기에 떠밀려,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메트로는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박 시장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시민안전을 위협하는 특권과 관행을 반드시 뿌리 뽑겠다"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13년 성수역과 2015년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작업자가 목숨을 잃은 뒤 재발방지대책을 내놓았지만, 김씨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당시 서울메트로가 '2인 1조' 규정처럼 실제로는 지켜질 수 없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박원순 시장이 큰 관심을 두고 살펴보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정치권 쪽에서는 박 시장이 대권 행보에 나섰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만약 박 시장이 이번에도 시민 안전 약속을 소홀히 여긴다면, 대권은 불가능한 꿈이 아닐까. 1000만 서울시민이 지켜보고 있다.


태그:#서울메트로, #박원순 서울시장,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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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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