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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재개봉 된 <인생은 아름다워>(1997)를 다시 보았다. 2차대전이 종전을 향해 내달리던 1940년대 초, 불과 5년 후에 있을 패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유럽을 지배하던 광기는 극에 달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유쾌한' 영화의 분위기가 더욱 더 비극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끔찍했던 아우슈비츠의 실제 상황과 선명하게 대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개봉했던 <귀향>과 <동주>가 주목했던 시간 역시 1940년대이지 않은가?

 <누구나 홀로 죽는다> 한스 팔라다 장편소설
 <누구나 홀로 죽는다> 한스 팔라다 장편소설
ⓒ 씨네21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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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2주기의 폭우는 잊었다는 듯 햇살 가득한 일요일 오후, 책장을 뒤져 <누구나 홀로 죽는다>를 집어 들었다(놀랍게도 책장에는 같은 책이 두 권이나 꽂혀 있었다. 이유는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을 보니, 분명 실수다).

이 책은 나치 독일 치하의 독일에서, 1940년부터 1942년까지 2년 동안의 '저항'에 대한 기록이다. 놀랍게도 주인공은 베를린에 살고 있던 평범한 노부부이다. 나치 독일에 '저항'하기로 결심한 그들은 이를 행동에 옮긴다.

하지만 그들의 저항은 수많은 2차대전의 기록에서 보이는 저항군의 전투가 아니라, 엽서에 '반 히틀러'라는 구호를 작게 적어 넣은 후, 다양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그들이 '히틀러'의 폭정에 반대하고 있음을 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저항을 옮기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1943년에 나치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그들의 '소극적인 저항'이 세상에 드러난 계기도 비밀경찰의 수사기록에 의해서였다.

나치 독일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에 대한 비인간적인 만행을 저지르고, 전 세계를 향한 '명분없는' 확전에 날뛰는 동안, 그 안의 사람들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 것인가에 대한 연구도 많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솔직하게 나는 이 책의 이 '은밀하지만 두려운 투쟁'의 기록을 읽기 전까지는, 나치 독일을 살고 있던 모든 민중을 '싸잡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나쁜 나라의 '나쁜 국민'이라는 게으른 결론으로 말이다.

책의 주인공은 안나 크방엘과 오토 크방엘이라는 노부부이다. 그들은 2차대전이 시작된 이후부터 계속되는 대국민 선전활동과 집단 내의 일상화된 감시로 인한 숨막히는 일상을 '저항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전쟁의 열세가 드러나고 있음에도 계속되는 확전으로, 자신의 아들을 '별 의미없이' 잃지만 않았다면 이대로 살아가는 게 당연했을 만큼 평범한 시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들의 죽음 이후 '저항'할 것을 결심한다(우리의 현 상황과도 자연스레 연결되는 부분이다. 이 나라는 평범한 부모를 '투사'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자신이 떨고 있음을 느낀 안나 크방엘은 얼른 다시 남편을 바라봤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하고자 하는 행위가 약하건 강하건, 작건 크건 누구나 자신 목숨보다 더 큰 것을 걸 수는 없다. 누구나 자기가 가진 힘과 능력만큼 행동할 뿐이다. 중요한 건 바로 저항한다는 사실 자체이다.' - p.198

하지만, 비밀 경찰에 의한 억압이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그들이 '저항'을 결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다. 그들 이외의 어느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는 비밀스러운 행동이어야만 했고, 주변의 사람들이 서로를 일상적으로 감시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히틀러에 반대한다'는 문구가 쓰여진 엽서를 주변에 전달하는 은밀한 작전을 실행한다. 누가 보게 될지, 그렇게 조금씩 두드리는 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인지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저항을 위해 '행동'한다.

이런 일을 벌이는 동안, 크방엘 부부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쉽게 짐작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저항에 대해 어떤 것을 기대했는지도 알 수가 없다.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저항 단체를 조직하는 것도 아니고, 행위에 의한 주변의 변화를 확인할 수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용기를 통해 저항을 계속한다. 무엇이 이들을 이끌었던 것일까? 개인의 일탈이나 '영웅심'만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다. 게다가, 그들은 그들의 저항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할 수도 없었고, 그 상태로 비밀경찰에 의해 체포된다.

"하지만 엽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박사님! 내가 쓴 엽서 285통 중 267통이 자기 손에 들어왔다고 말하는 순간 놀라 쓰러지는 줄 알았습니다. 딱 열여덟 통만 찾지 못한 겁니다! 그리고 그 열여덟 통도 별 효과는 없었어요!"

"그걸 누가 알아요? 그리고 크방엘 씨는 최소한 악에 저항했습니다. 같이 악해지지 않았단 말입니다. 이 감옥과 강제수용소에 있는 수만 명의 사람들, 그들 모두가 여전히 저항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래요. 그리고 곧 목숨을 잃겠죠. 그렇다면 우리의 저항이 누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 겁니까?"

"우리 자신에게요. 우리에게 많은 소용이 있죠. 죽을 때까지 우리는 의로운 인간이었다고 느끼게 될 거니까요. 우리는 모두 각자 행동해야 했고, 모두 따로따로 잡혀 들어왔고, 모두 혼자 죽게 될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모두 혼자인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괜히, 헛되이 일어나는 일은 없어요. 그리고 우리가 야만적인 폭력에 대항해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우리가 승자가 될 겁니다." - 640~641p.

당장 눈 앞에 결과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여, 의문을 쉽게 접거나 비판을 거두거나, 권력에 대한 감시와 저항을 포기한 채 목소리를 내는 것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 개개인의 목소리는 아주 작아서 알아챌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작은 행위는 결국 진실을 은폐하고자 하는 권력의 폭력에 균열을 일으킨다.

크방엘 부부는 처형되었으나 나치는 결국 패배했고, 그 후로 또 다시 그들을 광기로 이끌지 못하도록 하는 독일 사회의 계속된 조치는, 이와 같은 개인의 작은 저항을 받아들인 결과일 것이다.

광화문에 다녀왔다. 광장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내 작은 목소리는 들어주지 않는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여전히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은 세월호의 진실은 완고한 권력의 비호를 받은 채 꼭꼭 숨어 있다. 그러니, 우리 포기하지 말자. 지난 총선 결과를 받아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더 이상 힘없는 개인이 아니다. 계속 저항하자!

<누구나 홀로 죽는다> 한스 팔라다 장편소설/이수연 옮김, 씨네21북스


누구나 홀로 죽는다

한스 팔라다 지음, 이수연 옮김, 씨네21북스(2013)


#오늘날의 책읽기#누구나 홀로 죽는다#포기하지 않는 저항#진실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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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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