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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누군가에게는 아침이겠지만 나에게는 '새벽'이다) 6시 50분 알람이 울린다. 긴장하고 잔 탓에 알람이 울리기 전에 잠이 깼지만, 아직 이불 속. 알람을 서둘러 끄고 몸을 일으켰다. 춥다. 30년 노후주택의 추위는 3월이 돼 조금 누그러드는가 싶었지만 여전히 춥다.

7시가 되려면 몇 분 남아 조금이라도 더 등을 붙이고 싶은 강한 유혹에 시달리는데 마당에서 짜니(반려견)가 컹컹 짖는다. 닭도 아닌데 짜니는 아침이 밝으면 안방을 향해 짧고 굵게 여러 번 짖어댄다. 어서 일어나 자기를 보러 나오란 얘기다. 소음에 예민한 이웃에서 민원을 제기할까 신경이 쓰여 목수건을 두르고 침대에서 급히 내려간다.

알람이 울고 개가 짖는 새벽 6시 50분

장난치지 말고 든든히 먹자 얘들아~
▲ 오늘 아침은 샌드위치 장난치지 말고 든든히 먹자 얘들아~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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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니 한번 봐주고 주방으로 가 쌀을 씻는 것으로 아침 준비를 시작한다. 밥솥을 누른 후 남편과 아이들을 깨우기 시작한다. 7시 10분이 돼가는 시각. 8시 다 돼 일어나던 아이들이라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데도 가지 않는 막내 복댕이만 일어나 쫑알거린다. 복댕이에게 누나와 형아를 깨우라는 임무를 주고 다시 아침 준비를 서두른다.

아침으로 밥과 반찬 먹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아이들. 토스트, 스프, 주먹밥, 떡, 시리얼, 팬케이크, 만두 등 메뉴를 바꿔가며 아침을 준비한다. 동시에 남편의 점심 도시락을 마련한다. 밑반찬보다 그날 그날 새로 한 반찬만 먹는 습관이 있어 아침에도 한두 가지 반찬을 해 도시락을 싸려면 몸도 마음도 바쁘다.

7시 20분이 돼서야 까꿍이와 산들이가 거실로 나온다. 남편에게 아이들을 신경 써서 씻겨 달라 부탁하며 다섯 개의 접시에 빵과 과일, 소시지를 담고 따끈한 차나 우유를 곁들여 아침식탁을 차린다. 누나, 형보다 일찍 일어난 것이 뿌듯한 복댕이는 "오늘도 내가 일등이다!"라고 외치며 식탁에 제일 먼저 앉는다.

이젠 아빠보다 동네친구와 함께 하는 게 더 좋아요
▲ 까꿍이의 등교길 이젠 아빠보다 동네친구와 함께 하는 게 더 좋아요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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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잔소리를 탑재한 아침 식탁

세수를 하고 앉은 아이들은 아직도 잠에서 덜 깬 얼굴이다. 신경 써서 차린 아침인데 먹는 둥 마는 둥이다. 시계는 7시 50분을 향해간다. 나의 폭풍잔소리가 가동되고 만다. 물론 나도 안다. 방학 동안 여유롭게 늦잠을 자고 태엽이 늘어진 인형처럼 한참을 뒹굴거리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던 아이들에게 아무리 좋아하는 소시지가 있는 식탁이라도 잠에서 덜 깬 채 식탁에 앉아야 하는 아침 7시 30분은 너무 이르다는 걸. 그러나 어쩔 수 없다. 3월이다, 얘들아!

3월 2일 까꿍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3월 3일 산들이는 구립어린이집 6세반에 입소했다. 까꿍이의 8시 40분 등교, 산들이의 9시 등원을 맞추려면 8시 25분엔 모두가 집을 나서야 한다. 새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에 아이들이 건강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하는 학부모의 바쁜 아침이 시작되고야 말았다.

남편과 아이들이 아침을 먹는 동안 남편 도시락을 마무리하고 날씨를 살펴 아이들이 입을 옷을 내어놓는다. 고양이 세수일지라도 스스로 씻고 옷을 입을 수 있는 아이들이지만 새학기 초엔 청결과 위생에 특히 신경 쓰라는 전직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친정엄마의 충고에 따라 세수부터 옷매무새를 모두 만져줘야 마음이 편하다.

학기 초라 준비물부터 학부모가 써서 내야 하는 가정통신문들도 많다. 두 곳으로 나눠 보내는 준비물과 서류가 바뀌지 않게 한 번 더 점검하고 까꿍이 머리를 묶으면 부산한 아침이 얼추 정리된다.

누리과정 첫 과정으로 '세계여러나라'를 배우고 있는 산들이. 유치원 선배 까꿍이가 국기책을 펴놓고 설명해주고 있다. 복댕이는 깍두기!
▲ "누나도 국기 배웠어?" 누리과정 첫 과정으로 '세계여러나라'를 배우고 있는 산들이. 유치원 선배 까꿍이가 국기책을 펴놓고 설명해주고 있다. 복댕이는 깍두기!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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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있는 풍경

시계를 보니 8시 10분. 너무 서둘렀나 보다. 덕분에 덤으로 얹은 것 같은 15분의 여유가 생겼다. 잔소리를 조금 거두고 천천히 아침을 먹어도 될 것 같지만 행여 아이들이 늦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매일 아침 차비를 서둘러 많게는 15분, 적어도 10분은 여유가 생긴 3월의 아침이 이어지고 있다.

준비를 끝낸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마당에서 짜니와 함께 놀기도 하고, 오늘 하루의 일과를 서로 나누고 저녁에 다시 만나 뭐할지 계획도 세우며 '아침이 있는 풍경'을 연출한다.

마른 식빵을 입에 물고 외투를 껴입으며 엄마의 잔소리를 엔진삼아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야 하는 아침 대신 온가족이 함께 하루의 시작을 나누며 서로를 응원하는 아침 풍경. 그림처럼 상상만 했던 풍경이 우리집에서 이뤄지다니! 살짝 벅차기도 한다. 그러나 나만 아직도 잠옷 차림. 식구들의 아침풍경에 끼지 못하고 서둘러 외출준비를 한다. 10분 더 일찍 일어나 내 준비부터 했다면 완벽한 아침풍경이 만들어졌을 텐데.

지난해까지 까꿍이가 다니던 병설유치원이 남편 회사 근처에 있어 남편이 출근길에 등원을 시켰었다. 그러나 산들이의 구립어린이집은 반대 방향이라 막내를 데라고 내가 등원을 시켜야 한다. 덕분에 복댕이의 아침도 바쁘다. 다섯 식구 모두 집을 나서야 하는 아침이 되었다. 날이 좋으면 아이들과 함께 여유롭게 30분 정도 걸어가면 되는 거리라 아침 운동 삼아 좋은데, 아직 아침바람도 차갑고 얼마 전 남편이 다리를 다쳐 남편의 출근까지 도와야 해 당분간은 운전기사까지 겸해야 한다.

아이들이 모두 하원한 늦은 오후, 저녁밥이 될 때까지 신나게 놀자!
▲ 빨리 놀자! 아이들이 모두 하원한 늦은 오후, 저녁밥이 될 때까지 신나게 놀자!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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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혼자 있잖아, 내가 있어줄게

식구 셋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9시 20분께. 복댕이만 곁에 남았다. 형아따라 어린이집에 갈 거라고 한참동안 우겨대다 형아가 상상으로 만들어준 '게임팡팡유치원'에 가는 걸로 '나도 타령'을 끝낸 복댕이. 정신 없었던 아침을 보내고 잠시 혼자 쉬어볼 요량으로 복댕이에게 '게임팡팡유치원'에 가라고 했더니 안 간단다.

"많이 자고 많이 크면 갈 거야."
"왜?"
"다 가고 엄마 혼자 있잖아. 엄마 아프잖아. 내가 있어줄게."

한 달 넘게 계속 이어지고 있는 내 감기가 걱정인지 고사리 같은 손을 이마 위에 얹어주며 보약 같은 말을 건넨다.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를 독차지해본 적 없었던 막내. 만 3년 만에 처음으로 엄마와 단 둘이 있게 됐으니 얼마나 좋을까. 나 역시 셋 중에 제일 귀여운 (첫째와 둘째에겐 비밀이다) 막내의 애교가 좋지만 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같이 놀던 누나와 형이 없는 자리에 엄마를 들어앉히고 싶은 막내는 쉬지 않고 종알거리며 엄마를 부르고 '애교 10단 콤보'를 가동한다.

아침부터 틀어주고 싶진 않았지만 등에 매달린 복댕이를 떼어내기 위해 그동안 누나와 형의 수준에 맞추느라 3년 동안 제대로 본 적 없는 <뽀로로>를 틀었다. 그런데 짜니가 산책 나가자고 짖어댄다. 그래, 진짜 우리집 막내가 하나 더 있었지.

복댕이와 짜니를 데리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면 세탁기가 빨래 널라고 띠띠 거린다. 마당에 빨래를 널고 계단을 쓸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 한번 돌리고 나면 점심시간. 나는 점심 건너뛰고 10분이라도 엉덩이를 붙이고 싶은데 복댕이는 계란볶음밥, 짜장밥, 돈까스, 국수 등등 다양한 메뉴를 주문한다.

온가족이 함께 보드게임도 하고 재미있지요
▲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말 온가족이 함께 보드게임도 하고 재미있지요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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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기다리는 주말

낮 1시가 지나면 까꿍이가 학교에서 돌아온다. 학기 초라 매일 몇 장씩 쏟아지는 가정통신문을 확인하고 까꿍이의 내일 학교 수업을 챙긴다. 4시 산들이를 데리러 나선다. 적어놓고 보면 사이사이 빈틈이 많은데 새 학기 시작 3주째이지만 아직도 적응 중인 새내기 학부모인 나는 여전히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한다. 어떻게 사이사이 빈 시간을 지혜롭게 쪼개어 써야할지 계산이 되지 않는다. 그저 아이들의 시간이 나 때문에 늦을까 종일 긴장한 상태이다.

부지런한 다른 학부모들은 1학년을 맞아 방과 후 여러 학원과 프로그램을 계획하며 본격적인 교육 시장에 뛰어든다. 녹색어머니회, 안전지킴이, 도서관명예교사 등 여러 학부모회 활동을 기반으로 '엄마의 정보력'을 강화시킬 동네엄마네트워크도 강화한다고 한다.

주위에선 학교 수업만 따라가지 말고 기초 학습지부터 영어, 한자, 예체능 등도 늦지 않게 시작해야 한다고 야단이다. 그러나 난 아직은 새로운 곳에 적응하느라 입술이 부르트고 아침에 일어나면 몇 밤 더 자야 주말이 오는지 묻는 아이들의 체력이 더 신경 쓰인다.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자란다.
▲ 지난 3년간의 기록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자란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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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6년은 매일 아침 아이들을 건강하게 각자의 학교로 보내기 위해 종종거려야 하겠지. 이런 아침을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바쁘게 챙겨주신 친정 엄마의 정성 덕분에 내가 학교를 무사히 다니고 큰 거겠지. 자식들이 모두 출가하고, 교편에서 은퇴하신 후 한 달 넘게 매일 늦게까지 그동안 못잤던 잠을 주무셨다던 친정엄마의 고단함이 이제야 내 일처럼 느껴진다. 우린 모두 엄마들의 아침잠을 먹고 이만큼 자랐다. 

이제 시작이다. 아이들의 부르튼 입술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내가 알람 없이 새벽 6시 50분에 가뿐하게 일어날 때까진 당분간 이등병의 시계처럼 살아야겠다. 3월이 됐다고 바로 봄이 아니듯, 새롭게 시작된 육아 2기 학부모 엄마의 생활도 이제 겨우 초봄, 아직 연두빛 싹이 나려면 더 부지런히 아침을 일궈야한다. 당분간 밤 10시 '유 대위'(유시진 대위, 드라마 <태양의 후예> 남자 주인공)님은 못보고 일찍 자야 하는 거지 말입니다. 


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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